2015.11.07 10:44
(3) 첨정공파 (僉正公派)
계보 : 자량(自良)─종복(宗復)─유정(由貞)─원충(元忠)─억무(億武)
대의(大義)─홍신(弘信)─석보(碩寶)─천영(天英)─갑만(甲萬)─상징(相徵)
●세거지 : ① 순천시 낙안읍 (대동보 4권p.693∼747)
② 보성군 벌교읍
③ 고흥군 포두면
첨정공 대의(大義·1539∼1601)는 괴봉공과 사촌형제간이다. 무예가 출중해서 어린 나이에 무과에 급제, 수문장(守門將)·훈련주부(訓鍊主簿)·첨정(僉正)을 지냈고 임진왜란에도 참전했다. 그의 아들 홍신(弘信·1559∼1636)도 왜란에 참전했다. 그는 웅치·이현전투에 공을 세워 덕원부사(德源府使)를 제수 받았다고 한다.
부자는 35년의 시차를 두고 사별하지만 유택이 모두 평화에 있다. 그런데 홍신(弘信)의 큰아들 성보(成寶)의 후손은 내륙인 무주와 장수 쪽에서, 작은아들 석보(碩寶)는 지금 순천 낙안읍과 보성군 벌교읍 고흥군 남면과 포두면 등에서 살았다. 후손들의 삶의 무대가 왜 이렇게 극대 극으로 달라졌는지는 모른다. 더구나 종손의 후손은 31세에 손이 끊기고 마니 더욱 알 길이 없다.
대의파 후손들의 세거지는 바다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아마 선조들이 여자만과 고흥반도를 중심으로 활동해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가 짐작된다. 후손들은 파조의 고손까지는 번성하나 현손대에 이르러 손이 끊긴 데다 대동보에 수단도 내지 않아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