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리고 노래와 시
원산 위정철(전기편찬위원장)
사람의 삶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우선 먹어야 살기에 밥은 필수다. 다음에는 옷을 입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한다. 그래서 의·식·주를 필수불가결의 3요소라고 한다. 그러나 인생에 의·식·주만 필요한 게 아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 외에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정신적 요소도 있다. 그 첫째가 노래다. 미개시대부터 사람은 노래를 불러 삶의 위안을 삼고자 했다. 그 노래가 문학에서 다른 분야보다 빨리 발전됐던 것으로 사료된다.
옛날에는 노래와 시가 분리되지 않았다. 민요인 ‘아리랑 타령’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가사와 곡이 분리되겠는가. 도라지 타령도 마찬가지이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천의 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로 반실만 되누나/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이여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저기 저 산밑에 도라지가 한들한들. 고전 시가(詩歌)라는 말에서 보듯이 시와 노래는 붙어 있었다. 고려가요의 경우도 악보가 있다.
현대의 시와 노래는 왜 멀어졌을까. 대부분의 현대시가 시의 형식적인 면, 운문에서, 행을 이루는 단어의 배열과 글자의 발음에 일정한 리듬감을 자아내게 하는 운(韻)이나 율(律)을 너무 등한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대시조에서 4음보격의 음보율이 지켜질 뿐이다. 운율이 거의 없는 시에 곡을 붙이기란 쉽지 않다. 시가 노래 가사로 쓰인 경우도 있다. 운율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고, 내용도 그렇게 어렵지 않은 시들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부모’,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엄마야 누나야’, ‘못 잊어’ 등이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2음보, 3음보의 율격을 지니고 있다. 의미나 정서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고은의 시에 곡을 붙인 ‘가을 편지’라는 노래이다. 3음보의 율격이 있고, 내용 또한 쉽다. 정지용의 시 ‘향수’의 5절 중 1절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운율이 있고 내용 또한, 어렵지 않다.
유행가사의 운율과 내용을 보자.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내 생애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이었어’ ‘동반자’라는 노래다. 2음보격이고 글자수도 거의 3자 5자, 3(4)자 4자가 반복된다. 나훈아의 ‘공’이란 가사를 보자. ‘살다보면 알게 돼 일러 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4음보(2음보 중첩)격이다. 글자 수도 4·3이고 2·4(5~7)로 고루 맞춰있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가장 오래가 됐다는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의 내용이다. 얼마나 담백한가. 하지만 담고 있는 정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 강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기다리는 임은 오시지 않고 그립기가 아침을 굶은 듯 간절하구나. 시경(詩經)의 저 강둑을 뜻한 ‘여분(汝墳)’이란 시의 내용이다. 너무나 쉬우면서 간절한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가.
현대시는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런 시가 평론가의 좋은 비평을 받고 문학상을 받기도 한다.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기 쉽지 않다. “2016년 밥 딜런(Bob Dylan, 1944~)의 노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음악으로만 볼 수 없다. 이는 대중음악의 혁명이다. 그의 음악은 20세기 모더니즘(Modernism)의 강렬한 분출이다. 이런 사실을 빼놓고서는 왜 그의 음악과 앨범이 명작인지 알 수 없다.”
대표곡은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다. “흰 비둘기가 모래밭에 잠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하나.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날아가야 영원히 쏠 수 없게 될 수 있을까”라며 독백처럼 읊조렸다. 곧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서정시로 전한 것이다. 딜런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과 베트남전쟁 등 혼란기에 빠진 미국 사회를 웅얼거리듯 읊조리는 창법으로 고발했다. 사람들이 공감했다.
딜런은 스티브 잡스가 존경한 인물의 한 명이다.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말했다. 딜런이 녹음한 773곡 전곡이 담긴 디지털 패키지 세트를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판매하기로 했는데 상품의 출시를 알리면서 "딜런은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시인이자 뮤지션이다. 또 제 영웅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영화 ‘스티브 잡스’의 대니 보일 감독은 “그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반골로 부르며 우상화했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잡스의 전기에 따르면 “딜런의 방 앞 테라스에 앉아 두 시간을 대화를 나눴다.” 잡스는 긴장했지만 우상은 “내가 바라던 그대로였다. 정말로 허심탄회하고 솔직했다.” 잡스는 긴장해서 말이 잘 안 나온 적은 오직 밥 딜런을 만났을 때(2004년 10월)뿐이었다'라고 했다. 1984년 매킨토시를 공식 발표할 때 스티브 잡스는 연설에서 딜런의 ‘세상이 변하고 있네(The Times They Are a-Changin’)’ 중 둘째 행을 인용한 바 있다.
시는 노래 같아야 한다. 노래는 시 같아야 한다. 그러나 일부 작가들은 무슨 의도인지 모르나 어려운 시를 고집한다. 물론 자신은 알고 썼지만 읽은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읽은 사람이 감명을 받아야 하는데 너무도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딜론의 노래는 보고 들으면 바로 공감을 준다. 시나 노래는 감명을 주기 위해 쓴다. 그러기에 쉬어야 한다. 어떤 시를 써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는가.
시는 노래 같아야 한다. 노래는 시 같아야 한다. 그러나 일부 작가들은 무슨 의도인지 모르나 어려운 시를 고집한다. 물론 자신은 알고 썼지만 읽은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시의 뜻을 자신만 알려면 과연 읊을 필요가 있을까. 읽은 사람이 감명을 받아야 하는데 너무도 난해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딜론의 노래는 보고 들으면 바로 공감을 준다. 시나 노래는 감명을 주기 위해 쓴다.
그러기에 쉬워야 한다.
(2024.02.08. 원산 위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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