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황은 사이비 국화?
圓山 위정철(전기편찬위원장)
존재선생께서 정원에 여러 종류의 국화를 길렀다. 그중 소주황(蘇州黃)이란 품종이 단연 무성했다. 빛깔도 노랗고 꽃술은 빽빽했다. 가지는 무성하고 잎사귀는 촘촘했다. 정원을 둘러보던 선생이 갑자기 사람을 불러 소주황을 모두 뽑아 버리라 했다. 곁에 있던 객이 어찌 저 고운 꽃을 미워하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이랬다.
빛깔과 모양이 좋은 국화의 품종과 비슷하고 개화시기도 같다. 요염하고 오밀조밀한 모습이 사람들의 눈을 기쁘게 한다. 한번 심어놓으면 거름을 주지 않아도 무성히 퍼진다. 나눠 심지 않아도 저절로 덩굴이 뻗어나 잘도 자란다. 바위틈이나 담장의 모서리도 억척같이 뿌리를 교묘히 내려 토양을 썩게 하고 담장을 망가뜨린다.
안 되겠다 싶어 뽑으려면 뿌리가 얼키설키 서로 엉겨있어 제거가 어렵다. 밑동과 잔뿌리가 조금만 남아도 장마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무성해진다. 인근 둑까지 번져 좋은 식물을 몰아내고 고운 화초를 시기해 쫓아낸다. 함께 무성해지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마침내 온 동산을 차지해 어여쁨을 뽐내며 사람의 눈을 현혹한다.
어쩌다 뜨락에서 쫓겨나 제방 밖에 버려도 낮고 더럽고 음습한 곳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등나무넝쿨이나 가시나무와 뿌리를 서로 얽고 양보해가며 아주 겸손하던 태도로 돌변한다. 꽃을 피우면 작은 방울같이 둥근 꽃봉오리가 제법 약초밭의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시골사람들이 중추절 모임에서 좋아하는 감상의 대상이 된다.
내가 이 꽃을 뽑아라 한 것은 그 난진방선(亂眞妨善) 즉 “참된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선으로 나아가려는 것을 방해하는 태도 때문이다.” 공자가 말한 사이비(似而非)이다. 벼논의 피는 벼와 구분하기 어렵다. 콩밭에도 비슷하면서 콩에 피해를 주는 놈이 있다. 겉은 멀쩡해도 가짜다. 뽑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국화품종은 금문황(錦紋黃)과 황학령(黃鶴鈴)이 귀하다. 두 종류는 잘 번식하지도 않고, 쉽게 부러져 키우기가 매우 어렵다. 아마 귀한 사물이라 하늘이 아끼는가! 소주황은 가장 잘 번식한다. 하늘이 버린 사물이라 그런가. 어찌 하늘의 인이 만물을 덮는데도 버릴 사물이 많은 것인가. 하늘‧인간‧식물계도 가짜들이 판을 친다.
마귀는 성경에서 악마로 지목되는 대명사이다. 히브리어로 '적대자'라는 일반 명사며 원수(enemy), 음해자(accuser), 적대자(adversary)의 뜻을 가진 보통명사다. 모습은 명확하지 않으나, 보통 무섭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창세기에서 하와를 꼬드긴 뱀과 요한묵시록에서 미카엘과 싸우던 붉은 용을 사탄이라 한다.
인간의 세상에도 가짜는 천계의 마귀와 다르지 않다. 공존하지만 진짜를 괴롭힌다. 요즘은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고 한다. 가짜들의 공통점은 소이장도(笑裏藏刀)의 언변이다. 비수를 감추고 웃는다. 선량한 사람은 그걸 구별하지 못하니 가짜를 진짜로 알고 속아 넘어간다. 전세사기범의 수법도 가짜 본색이다.
어디 그뿐이랴! 식물의 세계에도 가짜가 있다. 사람들은 가짜 풀이 진짜와 흡사하게 보여 진짜로 알고 정성을 들여 가꾸기도 한다. 그러다가 열매가 영그는 시기에 이르면 그 때서야 가짜 본색이 나타난다. 이미 때가 지났는지라 손 쓸 틈이 없다. 후회해보지만 어쩌랴. 오곡이 무르익은 벼논에 자란 ‘피’란 식물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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