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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수련회 소감문- 조민기

운영자 2021.10.08 13:46 조회 수 :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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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기

(서울대/위영남/안항공/보성)

 

나는 비록 장흥 위씨는 아니지만 엄마의 성씨인 장흥 위씨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 이번 장흥 위씨 수련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의 성씨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위씨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수련회를 통해 많은 내용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먼저 장흥 위씨의 역사를 배웠다. 장흥 위씨는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성씨이다. 신라 시대 때 우리나라로 들어온 성씨로, 굉장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씨였다. 장흥 위씨의 시조공이 입국한 시기는 선덕여왕이 왕위에 있던 시기로 예측되고 있다. 이 시기는 신라가 중국과의 교역을 활발히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장흥 위씨의 시조공도 이 시기에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신라 시대 때 중국과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 많은 교류를 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배웠었는데 이때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인물 중 한 명이 장흥 위씨의 시조공이라는 것을 듣고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역사가 정말로 실재했던 일이라는 것이 실감되어 신기했다.

다음으로는 장흥 위씨의 인구에 대해서 배웠다.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장흥 위씨는 약 3만명 정도이다. 이 인구수는 남한에 사는 장흥 위씨만 집계된 인구이고 북한에 사는 인구까지 합하면 5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인구와 관련해서 흥미로웠던 내용은 장흥 위씨이지만 위씨 사람들이 장흥에만 모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장흥 위씨가 흩어져서 살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간에 장흥 위씨가 여러 번 분파되었기 때문에 전국에 흩어져서 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는 수도권에 가장 많은 장흥 위씨가 살고 있다.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장흥 위씨를 빛낸 인물들에 대한 강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충렬공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 때 무려 여섯 명의 임금을 모시며 가장 높은 벼슬을 지낸 인물이었다. 문장가로 이름을 떨칠 만큼 글솜씨도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충렬공을 비롯하여 장흥 위씨에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에 공을 세웠던 많은 인물들이 존재했다. 또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장흥 위씨의 위상을 드높이는 분들이 계셨다. 강의를 기억해보면 국회의원을 하고 계신 분도 계셨고,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깊이 연구하여 큰 성과를 내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장흥 위씨 인물들은 사회 곳곳에서 우리나라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문중 예절과 장흥 위씨 족보에 대해서 배웠다. 강사님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예절은 성씨의 구분이다. ‘는 성씨를 낮춰 부르는 말이기 때문에 를 사용할 때와 성씨를 사용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했다. 또한 장흥 위씨의 족보에 대해서 배웠는데 장흥 위씨 족보는 액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 족보 강의를 해주신 강사님께서 직접 모든 위씨 인물들을 손수 프로그램에 넣어서 족보를 만드셨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강사님의 장흥 위씨에 대한 애정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의 성씨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고 역사를 이어가려는 노력은 나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나의 성씨인 조씨보다도 장흥 위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수련회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장흥 위씨 인물 중에는 학자로 이름을 떨친 분들이 많이 계셨다는 것이다. 나도 내 전공 분야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는 학자의 꿈을 갖고 있는데, 뛰어난 학자를 많이 배출한 장흥 위씨의 피를 절반 물려받은 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나 또한 학자로 이름을 떨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느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씨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장흥 위씨 수련회가 계속되어서 후대의 학생들도 성씨에 대해서 공부하는 경험을 꼭 한 번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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