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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양현감(彦陽縣監)
위덕화(魏德和)의 충의기록!

◇선조실록 56권, 선조 27년 10월 1일 을사 5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경상도 병마 절도사 고언백이 올린 적정에 대한 치계

~상략
언양 현감(彦陽縣監) 위덕화(魏德和)가 치보하기를 ‘기장(機張)의 두모포(豆毛浦)에 주둔하고 있는 적병 5백여 명이 현의 석남촌(石南村)을 갑자기 포위하여 모두 분탕(焚蕩)하고 남녀 5명을 붙잡아 갔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원문>
且彦陽縣監魏德和馳報曰: ‘機張 豆毛浦屯賊五百餘名, 縣境石南村, 不意圍抱, 盡爲焚蕩, 男女五名擄去’ 云矣。" 啓下備邊司。

【태백산사고본】 33책 56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357면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위득화 관련>
선조실록 선조 27년.
선조 27년 10월 선조 27년 10월 10일

선조실록 56권, 선조 27년 10월 10일 갑인 8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요동 도지휘사사가 왜정에 관하여 보낸 자문

중략

또 본월 21일 배신(陪臣) 경상도 방어사 김응서의 치계에는 ‘해 언양 현감(該彦陽縣監) 위득화(魏得和)가 「5월 28일 도망쳐온 군인 황필금(黃必金)이, 만력 21년339) 2월 중에 적에게 잡혀가 일본국 무응구(無應仇) 지방에 보내졌다가 본년 3월 중에 다시 낭고야(郞古耶) 지방으로 보내졌는데, 그곳에서 대상간(大上間)이라 부르는 대고사마(大告司馬)가 본도(本島)에 와 있으면서 모든 병무(兵務)를 전담하여 관리하였는데, 각추(各酋)가 평양(平壤)과 전라(全羅)에서 실패한 것을 깊이 부끄럽고 한스럽게 여겨 배를 모아 식량을 운반하고 강병(强兵)을 더 조발(調發)해서 본년 7월 중으로 2기(起)로 나누어 1기는 제주(濟州)로부터 곧바로 전라도로 침범해가고, 1기는 경상도로부터 곧바로 경기도로 들어가 동서(東西)에서 분탕질하며 이내 합세하여 서쪽으로 침략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공칭하였다. 」는 내용으로 비보하였다.’고 하였으며,

중략



【태백산사고본】 33책 5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366면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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