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4 20:22
■圓山 위정철 所長의 12권의 著書를 종합해 보았습니다.
“필자(圓山)가 위씨의 족보 등 문중현안에 눈을 뜬 것은 수단(收單) 때문이다. 1997년 문중에서는 기묘대동보에 올릴 내용을 접수하도록 통보했다. 행와종종의 경우는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이무렵까지도 위씨의 상계는 물론 족보를 보는 법도 제대로 몰랐다. 한마디로 너무 몰랐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지 못하면 조상과 문중을 위해 이바지 한 것도 보람이라 생각했다”(魏門 備忘錄에서 발췌).
1997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18년 동안 위문의 중흥을 위해 노심초사하셨다. 圓山의 글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는 기차전법이다. 짤막한 문장을 여러 개로 나누어 지속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마치 기차가 기관차를 앞세우고 수많은 화차를 달고 가는 격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느끼는 결과를 낳았다. 둘째는 주관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객관성을 존중한다. 이는 아마도 신문기자와 논설위원 출신으로 몸에 밴 습관으로 보여 진다. “책 한권을 내는 데는 해산의 苦痛보다 더하다”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圓山 所長께서는 벌써 십여 권 이상을 執筆하셨으니 해산을 하는 고통을 십여회를 經驗했다. 틈을 내어 圓山 所長의 著書를 綜合해 보았다. 圓山의 대표저서인 장흥위씨요람(5-1), 장흥위씨천년세고선집(5-2), 장흥위씨 수련회교재(5-3), 위대한 조상 똑똑한 후손(5-4), 존재 위백규와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연구(5-5) 순으로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장흥위씨요람(長興魏氏要覽)](5-1)
2005년 장흥위씨 대종회가 발행하고 圓山께서 편저한 560페이지에 달하는 그야말로 장흥위씨 根幹을 기록한 저서이다. 대종회장(汎谷 위찬호), 도문회장(위계천), 성균관장(최근덕), 씨족문화연구소장(松潭 위자형)께서 발간사와 격려사 및 축간사를 맡았다. 序는 圓山께서 작성했다. 10部로 나뉘는데 1부(신지제지), 2부(위씨의 유래), 3부(유적순례), 4부(족보공부), 5부(세거지 유래), 6부(모선의 주역), 7부(재단법인 장흥위씨 장학회), 8부(대동보 색인표), 9부(도문중 및 대종회 임원록), 10부(성씨 한문 및 영문표기)로 구분했다.
1部에서는 천관산과 위씨, 산명, 지제지의 유래, 천관산과 동천, 종봉을 비롯한 36개의 봉우리, 천석, 수정암을 비롯한 17개 암실, 지제지발, 방촌팔경을 비롯한 5개의 관산의 유적, 천관산의 전설이다.
2部에서는 8학사에 대한 위씨의 연원, 시승세계, 16세분파, 21세분파, 고려시대의 충렬공, 원감국사, 판사공을 자세히 기록했다. 조선시대는 성균관 생원공을 시작으로 만암공까지 35선현을, 일제시대는 독립투사인 덕암공과 해인공을 조명하고 있다.
3部에서는 하산사, 장천재, 죽천사, 석천사, 다산사, 사월재, 계양재, 이필재, 경모재, 저존각, 운곡재, 운산재, 화운재, 홍문재, 영귀정과 봉독재, 경호정, 관산재를 현장성을 중시하여 기록했다. 또한 조상의 문화유산 에서는 사당, 무형의 민속, 조상들의 유품을 담았고 제표에서도 세계도를 비롯한 여러 사료를 함축했다.
4部에서는 족보의 기원과 유래, 보첩의 종류, 보첩의 상식, 족보 보는 법, 장흥위씨 족보의 역사에서는 역대 남북족보의 발행연도, 연도별 보첩의 서문과 특징, 남북대동보를 실었다.
5部에서는 시조공의 동래와 구거지(입국기록, 동래장소, 세거지, 장원봉 정착, 평화촌 개막), 분파와 이거에서는 자온의 능주파, 자량의 관산 및 행원파, 자공의 사월 및 관북파이다. 이주 1세대로 자공의 용산이거, 자공의 함흥정착, 용의 율촌정착 등 평화촌 200년의 성쇠를 담았다. 장흥위씨 세거지에서는 존재공의 세거지 기록, 장흥군 마을 유래지, 2000년도 전화번호, 능주파는 청양현감천우파, 유사공천보파로, 관산파는 곡성현감공파, 양곡공파, 훈도공파, 오덕파로, 행원파는 8개파인 괴봉공, 직장공, 첨정공, 참판공, 영장공, 수사공, 부장공파와 인행파로 세분화했다. 종사랑파는 덕수,정행, 흥인으로, 성균생원공파는 경천파, 사월파, 관북파는 극명파를 시초로 18개파로 나누었다.
6部는 모선의 주역편인데 족보를 세운 영의재공을 필두로 하여 존재공, 관암공, 만안공, 다암공, 농포공, 성재공부자, 회은공, 계은공, 의재공, 성재공, 백당공, 천관공, 춘사공, 송당공, 계사공, 덕운공, 범곡공까지 총 19선현을 기록했다. 특이하게 타성인 이인숙 여사도 기록으로 남았다. 7部~10部는 재단법인 위씨장학회의 설립과정, 일지, 운영규정, 헌성자 및 장학금배가운동의 필요성을 담았다. 대동보 색인표에서는 대동보서, 유물 유적사진 편, 파별 권별 게재편, 편제록, 유물편, 유시편, 열성조 사문 및 소장편, 사우기, 제문, 축문편, 행장 및 가장편, 묘갈명편, 세덕유비편 등이다. 하산 도문중과 대종회 및 장학재단 임원명단, 위씨성자 한문표기, 성씨표기에 대한 의견, 성위자를 되찾은 사례, 영문표기 통일안을 다루었다.
장흥위씨요람(長興魏氏要覽)의 특징을 살펴 보자.
우선, 위문 1,300여년을 集大成한 종합 역사서이다. 천관산을 중심한 본관 장흥, 21세를 기준한 분파별로 전국에 흩어진 세거지, 하산사를 비롯한 재각과 각종 유물, 족보, 시조공부터 근, 현대의 인물까지 수많은 선현들의 足跡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위씨문중 역사에 이렇게 집대성한 종합서가 어디에 있는가? 아마 존재공께서 부활하신다 해도 칭찬이 자자하리라.
다음으로, 現場性을 기초한 寶庫이다.
松潭께서는 발행비용으로 당시 오백만원 이상을 사비로 충당했다. 圓山께서는 광주에서 장흥까지 60회를 넘게 왕복하면서 재각과 유물 및 천관산을 찾았다. 또한 전국 에 흩어진 세거지를 수차례에 걸쳐 수십일을 탐방했다. 위문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현장방문만이 최선책이었기 때문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간과 금전을 아낌없이 투자했고 사명감이 충만했다. 위문의 젊은이들은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배웠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신요람(新要覽)으로 거듭나야 한다. 요람이 발간된 지도 벌써 십여년이 흘렀다. 새로운 역사 기록도 많이 나왔고 여러 젊은이들이 위문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등재되어야 할 모선의 주역도 많이 계시다. 한번 발간한 책자의 여유분도 전혀 없다. 이번 기회에 씨족문화연구소에서 나서서 신요람(新要覽)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長興魏氏 千年世稿選集)](5-2)
씨족문화연구소에서 2008년 발행한 400페이지 분량의 저서이다. 도문회, 대종회, 장천문중에서 비용을 부담했고 圓山 위정철 所長께서 편저했다. 대종회장(汎谷 위찬호), 도문회장(위성열), 씨족문화연구소장(松潭 위자형) 및 한국씨족총연합회장(황상득)께서 발간사와 축간사를, 序와 後記를 圓山께서 작성했다. 제1부(국역편 300페이지), 제2부(해제편 70페이지), 제3부(충렬공 관련 고려사 기록편 30페이지)로 나뉘어 진다.
제1부에서는 1037년 충렬공부터 원감국사를 비롯 간암공, 존재공, 판사공, 습독공, 괴봉공, 운암공, 잉여옹공, 학촌공, 시정공, 춘파공, 복재공 등 1999년 만취공까지 1,000년간 60선현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학촌공, 남북종친 7인의 반촌시서, 관북종중과 남종간의 글, 원감국사 3형제의 글은 독특하다. 편저자는 수록기준을 국서, 표문, 상소문, 가사, 유서와 계자서, 서찰, 기행문, 시문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는 가능한 많은 선조의 글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가능한 주관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객관성에 기초한 산뜻한 저서이다. 객관성과 위문전체를 화합시키기 위한 측면에서 같은 시기에 발간된 방촌학(1)에 비해 확연히 우월성을 보이고 있다.
제2부 해제편에서는 30선현의 서적, 구체적인 제목, 소장자 등을 기록한 보고이다. 한마디로 위문의 文의 보물창고이고 정보의 바다이다. 위문의 선현을 연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3부에서는 위문이 낳은 역사상 최고인물 [충렬공 관련 고려사 기록편]을 담았다.
한마디로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의 특징을 살펴보자.
우선, [魏門 知性史의 體系를 세운 名作이다].
일반인이 읽기 여려운 지장록을 보기 쉽도록 종합하고 분석했다. 또한 60선현들의 글 중 대표작을 한글로 번역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가능한 걸출한 분의 글에 치중하기보다 여러 선현들의 작품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화합과 단결만이 위문의 융성을 앞당기는 지름길임을 후세에 전하려는 깊은 배려정신의 발로이다.
둘째로, [大宗會 道門會 長川門中의 合作品이다].
본관 장흥을 대표하는 도문회와 전국 종친회를 아우르는 대종회에다 위문에서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장천문중의 합작품이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깊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된 위문의 쾌거이다.
마지막으로, 제2,3,4의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長興魏氏 千年世稿選集)]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위문 지성사의 체계를 세운 저서로만 끝난다면 위문의 앞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젊은이들은 위문의 훌륭한 선현들을 연구하여야 한다. 한 예로, 간암공의 연구도 너무나 미진하다. 존재공께서는 호남을 대표한 대표적인 실학자이지만 후손들은 손 놓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 종교, 문중, 사회, 국가 모두 그 저변에 사상과 철학이 없다면 砂上樓閣에 불과하다.
■[장흥위씨 수련회교재](5-3)
선조들께서는 위문의 장래를 걱정하시다가 수련회로 구체화시킨 것으로 사료된다. 더구나 20년간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이어온 것에 대해 중심의 찬사를 보낸다. 사실 2박3일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다. 가족의 눈치도 있고 생업도 잠시 미루어야 한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핏줄이니 어찌하랴!! 이것을 기회로 수련회 교재를 소개해 본다. 장흥위씨를 名門의 주역으로 양성하기 위해 2009년 7월 大宗會에서 발간한 것으로 圓山 위정철 소장께서 著者이다.
120여쪽으로 장흥위씨 유래편에서는 사성(賜姓)과 수관(受寬), 중시조와 세계, 분파와 항렬을 소개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충렬공, 원감국사, 문개공, 군수공, 판사공 다섯분을, 조선시대 때는 덕원부사공과 괴봉공부터 학촌공, 존재공, 만암공까지 총 33분의 문중을 빛낸 선조를 소개하고 있다.
유물, 유적 순례편에서는 하산사와 장천재 등 17개소와 방촌의 문화유적 뿐만 아니라 조상의 유품과 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모선의 주역에서는 영이재공, 존재공, 관암공, 만암공, 다암공, 회은공, 계은공, 의재공, 송당공, 계사공, 덕운공, 범곡공 등 12분을 조선시대부터 오늘날 대종회와 도문회에서 활동중인 분까지 포함되어 있다.
족보(족보보는 법, 위씨의 보첩역사, 한문 영문표기 등)와 조상들의 거주지(시조입국기록, 분파와 이거 등), 위씨와 천관산(다도해와 어울린 전경, 전설), 제사교양 및 문중소식 8가지(대전뿌리공원 유래비 등)를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단법인 장흥위씨 장학회의 역사와 운영 규정을 싣고 있다.
■[위대한 조상 똑똑한 후손](5-4)
[위대한 조상 똑똑한 후손]라는 제목으로 근 1년에 걸친 씨족문화연구소 소장께서 게재하신 글은 그 명성과 연륜에 비례하여 잘 정돈되고 오랫동안 연구하신 결과물로 보여 진다. 특히 [위문의 현안과 청사진]은 위씨문중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한 방향과 틀을 제시한 문중 어르신으로서의 결단과 용기이다.
우선 게재내용은 1)차축시대 제안서, 2)위씨 성의 유래, 3) 보의론 연구 활동과 결과, 4) 청렴의 화신, 충렬공, 5) 원감국사의 생애와 사상, 6) 청계공의 수난사, 7) 병조참판공의 심양방문외교 일지, 8) 수우옹공의 금당별곡, 9) 간암공의 생애와 사상, 10) 학촌공의 북도 능전지, 11) 존재공의 생애 및 저술년보, 12) 충의록 보정의 필요성, 13)명문을 위한 청사진등 약 350쪽에 달한다.
[명문을 위한 청사진]이란 제목으로 [장흥위씨 청장년 밴드]에 공개적으로 부탁하는 글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 이것은 마치 圓山소장의 유언으로 비춰지고 있다. 왜냐하면 위문사랑의 애절함과 안타까움이 곳곳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장기계획으로 1) 충렬사 건립의 당위성, 2) 하산사 신실 확장과 이축문제, 3) 위씨 문학공원 조성, 4) 유산 및 계산풍류 전시, 5) 충렬공 묘소 입로 안전이다. 중기계획으로는 6) 존재학회 설립과 연구, 7) 존재학 논문수집과 발행, 8) 장천재 인문활동사 연구이다. 단기계획으로는 9) 도문회와 대종회 통합, 10) 성씨표기의 통일, 11) 행렬표기의 통일, 12) 홈페이지 족보운영, 13) 유적 안내 책자발행, 14) 역대족보와 계책 등 보관, 15) 도문회 예산편성 관행정립이다.
■[존재 위백규와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연구](5-5)
존재집을 성서(聖書)로 가정하면 본 저는 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天路歷程)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존재사상을 연구하는 방향과 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먼저 본 저의 넓이를 측정해 보자.
존재와 다산의 비교 자체만으로도 주변사상으로 맴돌고 있는 존재의 지평을 확대하여 향후 중심사상으로 발돋음 하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선(conservative & progressive ideal spectrogram line)을 기준으로 본다면, 다산의 사대부적 형태(Young literati style)에서 존재는 한 단계 뛰어넘어 실제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의 애환을 글로 그려낸 실천론적 형태(practical style)로 나아가게 된다. 바로 이점에서 중농주의적 실학관(practical science viewpoint of physiocratism)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저자는 격물설에 대해 <벌레 같은 미미한 동물에 대한 관찰과 논설을 남겼다. 이는 양적으로 보나, 질적~(중략)~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자료이자 지적성과>로 규정하여 존재사상의 다양성을 중시하고 있다. 또한 간암공의 임계탄을 존재의 연연행, 합강정선유가와 비교를 통해 간암공의 사상이 존재에게 전수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여 사상의 지평을 위씨문중(魏氏門中)으로 넓히고 있다. 철학에서는 성리학(Sung Confucianism)이 지배하는 조선시대를 살아간 존재를 <모순과 부조리를 개혁하고자 ~(중략)~만언봉사와 정현신보와 같은 저술을 통해 증폭된 사회의 각종 폐단을 개혁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라고 서두에 밝혀 실천록적 실학자인 존재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개선론을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폭넓은 사상과 철학에 과반을 할애하였다.
또한 저자는 다산의 사상배경을 비롯하여 문학, 성리학,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를 중심한 국가개선을 다루고 있다. 존재와 다산사상 비교에 100여쪽을 할애하여 총 400여쪽에 달하는 광범위한 대작으로 존재사상 연구의 틀(category)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본 저의 깊이를 헤아려 보자.
단언하건 데, 양적인 저술실적으로만 본다면 다산과 존재를 비교함에 다소 무리가 있으나 실질적인 내용의 질과 사상의 깊이에서 존재에게 다산이 결코 앞설 수 없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존재사상중 가장 천재적인 면이 돋보이는 분야는 문학으로 존재의 생애를 기준으로 자수면업기, 덕산수학기, 궁경독서기, 강학저술기, 사환와변기(5단계)로 나누어 존재문학의 특징과 변화모습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존재문학의 대표적인 한시나 연시조 가사 및 시나리오를 원문으로 제시하고 나서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설명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세세하게 나열하여 깊이를 더하고 있다. 궁경독서기에 씌여진 농가구장 등 다수의 작품은 순수문학(pure literature)으로 분류되는 반면 대부분의 작품에서 존재는 대안적 비판자로서 사회적 모순과 갈등(an critic who proposed alternative situation about Social contradiction & conflict)을 글을 통해 승화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두 번의 전쟁으로 참혹하고 피폐한 시대를 바라보는 지식인으로서 이성과 감정의 혼란에서 야기되었다. 노론(老論)이었던 병계선생의 제자로서 <마음따로 머리따로> 이중성이 엿보이는데 궁경독서기에 씌여진 불후의 명작인 오언장편 연작인 죄맥 ,맥대 ,청맥행에서 보리는 싫지만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 백성에 대해서는 뜨거운 용광로이나 머리는 얼음같이 냉철해야 하는 현실, 즉, 존재의 야누스(Janus)는 마음은 중심인으로, 머리는 주변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조선이 낳은 참지식인의 슬픔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다산이 한자만을 고집한 것과 달리 존재의 국문. 국한문(Korean and Chinese alphabet )혼용으로 과감하게 작품을 저술했다. 한자를 배우기 힘들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일반 농민의 입장을 배려하려는 존재의 진정성의 표현으로, 이것 또한 존재가 재평가 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사회개선론에 대해 저자는 <법이나 제도 자체 또는 경제적 양상들보다도 정치적 해이와 기강의 문란~(중략)~개혁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하여 급진사상가(Radical thinker)로서의 통치체제를 부정하는 존재를 배격하고 성리학에 바탕을 둔 국가 및 사회유지를 위한 점진적이고 온건한 개혁자(progressive & moderate reformer)로서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경국론에서 토지, 세제, 군역, 공물과 상공업 심지어 도량형까지 대안 제시자로, 관리 선발과 민생안정론 및 향촌 방위론은 오늘날의 지방자치와 흡사한 분권화(decentralism like today local autonomy)에 이르기까지 깊이를 더하고 있다. 특히 향촌 사회론 사상에 역사적 발전단계를 적용하면 다산의 중앙집권적인 국가질서로의 개혁(renovation of state policy order forwards centralism)보다 지방자치적인 향촌사회로의 개혁(renovation of rural social system forwards local autonomy)을 주장한 존재의 사상이 더 진일보한 것으로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본 저의 높이를 올려다 보자.
존재보다 34세나 연하인 다산은 조선후기 여러 실학자중 역사적인 핵심인물로 이미 연구되었고 그의 사상이 현실정치(real politics)에 반영되어 결과를 도출한 성공한 인물로 추앙받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비해 존재는 미미한 후배양성, 천주교 및 타실학자와의 교류미비 및 중국방문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사상의 가치에 대해 저자는 [존재의 문학세계, 우주론을 비롯한 철학, 국부민안을 위한 경국관 등 어느 건도 실상만큼 대접 받지 못했다]라고 한탄하는 저면에는 지속적이고 [종합에의 의지]를 지닌 존재사상의 연구자가 속히 나오길 내심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마지막 장에서 저자인 원산은 김석희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18세기 향촌사회, 향촌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재 선생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저서의 말미를 장식하여 조선후기 실학연구를 위해 반드시 존재사상은 연구되어져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중심사상으로 높이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1798년 72세로 소천한 존재에 대해 후배학자 매산 홍직필은 묘비명에서 [천관산 높고 높아 天冠峨峨/ 전라도 전체에서 우러러 보네 一路仰止/ 울창한 다산이여 有鬱茶山/ 가을 동백도 시들지 않네 秋栢不死]라고 찬사를 보내는 것을 보면 존재사상은 가히 천관산과 호남을 넘어 조선전체에서 우러러 볼만큼 높다고 하겠다. 현재 주변사상(the outside idea)으로만 여겨지고 있는 존재사상은 빙산의 일각[一角]만 나타났을 뿐 바다 속에 숨겨져 있는 구각[九角]을 찾는다면 중심사상(the central idea)으로 높이를 점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에 차있다. 한마디로, 존재사상은 갑작스럽고 우연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먼저 존재사상은 스승인 윤봉구를 비롯한 임계탄의 작자인 간암공, 잉여옹, 조부인 삼족당, 부친인 영이재, 금당별곡의 작자 수우옹 등에게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간과할 수 없다. 여기에다 존재의 천재성과 시대적 요구인 애민(love of the people)정신이 결합되어 태어난 필연적 산물(inevitable result)로 높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향후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위문의 젊은이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왜 장흥입구에 존재공의 동상이 있을까? 왜 존재를 [삼벽에서 피어난 호남지성사의 꽃]이라고 지칭하는가? 18세기 향촌사회, 향촌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재 선생에게 물어 보라고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본 저의 저자를 [존재공전도사 원산 위정철]로 별명을 붙인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전인미답(pathless)의 존재사상에 먼저 뛰어 들어가서가 아니라 존재공을 우뚝 솟게 하는 제2, 제3, 제4의 존재공전도사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원산의 뜻을 간파해서이다.
■圓山의 12권의 저서를 내용을 기준하여 분류해 보자. 장흥위씨홈페이지(2004년), 위씨요람(2004년), 수련회교재(2009년), 위문비망록(2013년)은 魏門의 文의 礎石을 놓았다. 長興魏氏 千年世稿集(2008년), 存齋 위백규와 茶山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연구(2012년), 위대한 조상 똑똑한 후손(2015년)은 魏門의 知性史의 체계를 세웠다. 보의총론(2010년)은 잘못된 族譜를 바로 잡아 위문의 역사를 바로 잡는 譜疑型正의 과정이었고, 행와공 후손세록(2001년)은 행와공 후손의 유고와 가승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실록 광주사태(2000년), 종교의 절망을 말하다(2006년), [DJ와 전라도]는 行動하는 改革者요, 양심을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아픔을 昇華시킨 作品으로 특징지어 본다.
향후 발간예정인 [장천재 인문활동기}, [천관산 유산문학], [남도의 유배객], [전라도의 학맥과 예맥], [제국의 몰락] 등의 저서도 조속히 발간되길 기대를 해본다. 앞으로도 魏門의 미래, 특히 魏門의 젊은이들을 위해 한알의 밀알이 되어 주시길 간절히 요청 드린다. (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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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입춘(立春) 절후 관장하는 위징(魏徵) 제2부 / 梧堂 위운량 | 206 |
31 | 입춘(立春) 절후 관장하는 위징(魏徵) 제1부 / 梧堂 위운량 | 115 |
30 | 存齋集과 四君子(존재집과 사군자) / 벽천 위윤기 | 407 |
29 | 위씨 성의 유래 / 圓山 위정철 | 766 |
28 | 聽溪公의 續傷往賦幷序(속상왕부병서) / 圓山 위정철 | 273 |
» | 圓山 위정철 所長의 12권의 著書를 종합해 보았습니다/벽천 위윤기 | 499 |
26 | 『존재집(存齋集)』대장부의 운명값 | 220 |
25 | 존재 위백규 선생의 생일잔치 의미 | 274 |
24 | 새로 발굴된 문중사료 2008/03/05 원산 | 222 |
23 | 圓山 위정철 소장의 [艮庵公의 生涯와 思想] [1] | 838 |
22 | 圓山 위정철 소장의 [忠烈公, 淸廉의 化身] | 336 |
21 | 圓山 위정철 소장의 [存齋公의 生涯 및 著述 年譜3-3(59세~72세)] | 915 |
20 | 圓山 위정철 소장의 [存齋公의 生涯 및 著述 年譜3-2(35세~58세)] [1] | 982 |
19 | 소설 원감국사 | 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