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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씨 성의 유래 / 圓山 위정철

2016.01.19 19:52

碧泉 조회 수:699

위씨 성의 유래

 

1. 기묘초보(1759), 기묘대동보 서문(1999)

(전략) 우리나라에 옛날에는 위씨가 없었는데, 신라시대에 대아찬공 휘 경이 중국에서 왔으니 이분이 회주군이 되었고 회주는 곧 장흥으로(지장록 28)

기묘대동보(1999)는 위씨의 선조는 중국(中國)에서 살았으며 희성(姬姓)에서 나왔고, 필공고(畢公高)에서 비롯하였으니 주()나라 문왕(文王)이상은 모두 희성으로부터 나왔음으로 대개 성현(聖賢)의 후예(後裔)이다.(지장록p.54)

대당관서홍농인(大唐關西弘農人)으로 신라 선덕여왕 7戊戌 638년 즉, 당정관(唐貞觀) 12년에 출래본국(出來本國)하여 이 아찬에 이르고, 여조(麗朝) 충선왕(忠宣王) 때 회주군에 봉하여지니(대동보 11)

이상과 같이 기존에 발행된 족보는 위씨의 창성과정에 대한 기록이 아주 빈약하다. 아마도 관련, 역사자료가 부실해서 비롯된 결과를 보인다. 좀 더 확실한 기록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 주)

2. 사기(史記) 위씨 세가(司馬遷 著)

주나라는 BC 1140 무왕(武王)이 세웠다. 그의 아버지는 은()나라 서백(西伯)이었으며, 성은 희(). 이름은 창()이다. 무왕 발()은 문왕(文王)의 맏아들인데 은나라 주왕(紂王)이 주색을 즐기며 백성을 못살게 하자 혁명을 일으켜 천자가 됐다. 당시 무왕의 동생이자 문왕(文王)15째 아들 희고(姬高)는 형을 도와 주나라를 창업한 공으로 필지(畢地)를 봉토 받아 대부가 되면서 성이 희씨에서 畢氏로 바꿔졌다.

필고(畢高)의 후예 필만(畢萬)은 춘추시대 진()나라 헌공(獻公)이 이웃나라를 정복할 때 참승(驂乘)으로 참전한다. 그 공으로 BC 661년 위지(魏地)를 봉토 받아 대부(大夫)가 되면서 畢氏에서 위씨(魏氏) 성의 시조가 된다. 이후 제후국인 위나라는 BC 453년 한()()()와 함께 삼가분진(三家分晉)한 후 BC 403년 주나라 위열왕(威烈王)으로부터 왕호를 받아 178년간

위나라를 유지한 전국칠웅이다.

위씨의 창성(創姓) 과정 : 姬氏畢氏(BC 1140)魏氏(BC 661)

따라서 위씨가 생긴 BC 661년부터 AD 2015년을 기준으로 합하면 위씨의 역사는 2676(89)에 이른다. 이처럼 창성의 역사가 확실한 성씨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위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당()나라 태종(太宗) 연간인 AD 638년이라 한다. 위씨가 창성된지 1300년에 이른 시기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면 43대 후손쯤 된다. 그래서 한국 위씨의 시조인 휘 경()은 당나라의 명재상 위징(魏徵)과 형제간이란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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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국 위씨의 유적지

魏地 : 산서성 예성현(芮城縣) 魏畢萬의 봉토지

魏國 : 산서성 안읍(安邑) 위국 최초의 도읍지(安邑古城遺祉)

魏國 : 산서성 남부 운성(雲城) 2遷都地

大梁 : 하남성 개봉현(開封縣) 3遷都地(BC 225년 멸망)

 

4. 고사성어 結草報恩

춘추전국시대 나라에는 위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병으로 눕게 되었고 그는 아들 위과를 불러 자신이 죽게 되면 자기 첩을 자유롭게 놓아주라고 하였다. 그 뒤 병이 너무 심해져 기력을 거의 잃어갈 무렵 위무는 다시 아들을 불러서 자기 첩을 자신과 함께 순장시키라고 했다. 위무가 죽고 위과는 아버지의 첩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아버지가 정신이 맑았을 때의 말씀을 듣기로 하고 첩을 놓아주었다. 그 후 이웃나라와 전쟁이 일어나 위과는 전쟁에 나가게 되었다. 위과는 두회라는 장수와 결투하다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지자 그를 사로잡아 전공을 올렸다. 그날 밤에 어느 노인이 나타나 위과에게 말했다. 자신은 위과가 살려준 첩의 아버지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풀을 묶어놓아 당신을 도왔다고 했다.

 

圓山 위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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