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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절후 관장하는 위징(魏徵) 제5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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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지치(無爲之治)는「덕(德) 신(信) 의(義) 예(禮)」를 세울 때 이룩돼
치세(治世)의 요(要)는 백성을 자식처럼 보살피고 군자(君子)를 가까이 하는 것

옛날에 제환공(濟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묻기를「나는 술잔에서 술이 썩게 하고 그릇에서 고기가 썩게 하고자 하니, 패자(覇者)가 되기에 방해되지 않겠는가?」 관중이 답하기를「이러한 행동들은 정녕 최선책은 아니지만, 그러나 패자가 되기에 해되지는 않습니다.」공이 묻기를「어떠해야 패자가 되기에 해되리요?」
관중이 대답했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면 패자가 되기에 해가 됩니다.
등용해도 그에 맡는 임무를 맡기지 못하면 패자 되기에 해가 됩니다.
임무를 맡겨도 믿지 못하시면 해가 됩니다.
믿었다 해도 그 후에 소인으로 하여금 조사케 하시면 해가 됩니다.」

진(晋)나라의 중행목백(中行穆伯)이 고(鼓)땅을 공략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하자, 궤한륜이 말하였습니다.「고땅의 소인배들을 저 한륜이 알고 있습니다.
청컨대 사대부들을 괴롭히지 않고서도 고땅을 획득할 수가 있습니다.」
중행목백이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좌우의 신하들이 말하길「창 하나 꺽지 않고 병졸하나 다치지 않고서도 고땅을 얻을 수 있다는데, 군(君)께서는 어찌 아니 하십니까?」
중행목백이 답하기를「궤한륜의 사람됨은 아첨을 잘하고 어질지 못하다. 만약 궤한륜으로 하여금 고땅을 함락케 하면 나는 불가불 그에게 상을 내려야 하는데, 만일 상을 내린다면 이는 아첨 잘하는 이를 상주는 꼴이 된다.
아첨하는 이로 하여금 득의(得意)하게 하는 것은, 이는 진나라로 하여금 인(仁)을 버리고 아첨하게 하는 것이니, 아무리 고땅을 얻을 수 있다손 어찌 그를 등용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중행목백은 제후국의 대부였고 관중은 패왕(覇王)을 보좌하는 신하였음에도 오히려 신임(信任)을 신중히 하고 아첨하는 이를 멀리할 수 있었거늘, 하물며 폐하의 현명하심으로써랴?
만일 폐하께서 군자와 소인으로 하여금 시시비비를 섞이게 하지 않고자 하셔서, 반드시 그들을 덕으로 품으시고 믿음으로 대하시며 의로움으로 독려하시고 예의로 절제하시고, 그런 연후에 선을 선하다 하고 악을 악하다 하시고 상벌을 잘 판별하여 내리시면, 무위지치(無爲之治)의 교화가 어찌 멀리 있는 것이겠습니까?
선을 선하다 하시면서도 등용치 못하시고, 악을 악하다 하시면서도 물리치지 못하시며, 벌이 죄지은 자에게 미치지 못하고, 상이 공로 있는 이에게 내려지지 않으면, 위태로워지고 망하게 될 때가 없다고 장담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임금이 친히 조서를 내려 위징의 말을 칭찬했다.
이때에 명덕궁(明德宮) 현포원(玄圃院)을 없애어 물난리를 당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다른 날 뭇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면서, 임금이 말하기를 『정관(貞觀) 이전에 나를 좇아 천하를 평정하게 온갖 험난하고 어두운 길을 헤쳐 나온 것은 방현령(房玄領)의 공로이다. 정관 이후에 충성스런 간언을 하여 짐의 잘못을 바로잡고 국가의 위대한 이익을 도모한 자는 위징 일 따름이다. 아무리 옛날의 명신이라 할지라도 또한 어찌 이들보다 훌륭했으리!』라고 하며, 친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풀어 두 사람에게 하사했다.

임금이 일찍이 뭇 신하들에게 물었다.『위징과 제갈량 중 누가 더 현명한가?』
잠문본이 대답하길『제갈량 장군과 재상을 겸비했으니 위징이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자 임금이 말하기를『위징은 인의(仁義)의 길을 가면서 짐을 보좌하여 짐을 요임금 순임금의 위치에 올려놓고자 하였으니, 아무리 제갈량이라 해도 위징에게는 필적할 수 없다.』 라고 했다.

이때에 편지를 올려 계책을 피력하는 자가 많았는데, 간혹 일에 걸맞지 않으니 임금이 이들을 미워하여, 꾸짖어 내쫓으려 하였다. 위징이 말하기를『옛날에 성문 밖에 비방의 말을 적는 나무를 설치했던 것은 자기의 과실을 듣고자 해서였습니다.
편지로 일을 논하는 것은 예전에 비방을 적는 나무의 유풍이 아니겠습니까? 폐하께서 폐하의 잘잘못을 듣고자 하신다면 마땅히 그들이 제멋대로 말할 수 있도록 놓아두십시오. 그들의 말이 옳다면 조정의 이익이 될 것이요 그릇되어도 정사에 손해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기뻐하며 그들을 모두 위로하여 돌려보냈다.

정관 13년에 아사나결사솔(阿史那結社率)이 난리를 일으켰는데, 운양(雲陽)땅이 돌덩이처럼 되어 겨울로부터 오월 달에 이르도록 비가 내리지 않으니, 위징이 상소를 올려 극단적으로 말했다.
『소신이 폐하를 막부에서부터 받들어 모신지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폐하께서는 소신이 인의지도(仁義之道)를 지켜 잃지 아니하고, 검약 소박하여 시종 분수를 넘지 않는다고 칭찬해 주셨으니, 그 덕스러운 음성이 귓가에 맴돌아 감히 잊지를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근래로는 차츰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으니 삼가 조목조목 말씀드리어 만 분의 일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폐하께서는 정관 초에는 청정하고 욕심이 적으셔서, 폐하의 덕화가 오랑캐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만리 바깥으로 사신을 보내어 준마를 찾아 사들이고 아울러 진귀한 물건들을 수소문하십니다.
옛날에 한문제(漢文帝)는 천리마를 거절하셨고, 진무제(晋武帝)는 꿩의 목털로 만든 갑옷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폐하께서 평상시에 말씀하시는 것은 멀리 요(堯)?순(舜)을 짝하시면서 지금 행동하시는 것은 오히려 한문제·진무제 보다도 못하게 하고자 하십니까? 이것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는 첫 번째 조짐입니다.

자공(子貢)이 사람 다스리는 법을 묻자 공자(孔子)께서「썩은 동아줄로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몰 듯 조심할 지어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자공이 묻기를「무엇을 그리 두려워합니까?」라고 하자,「도(道)로써 인도하지 않으면 나의 원수가 되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정관 초에는 백성의 수고로움을 도우시고 그들을 자식처럼 보살피셔서, 가벼이 일을 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근자에는 이미 사치하시고 욕심대로 하셔서, 백성의 힘을 쓰고자 하시면 이내 말씀하시기를「백성이 일이 없으면 교만해지기 쉽고, 수고롭혀 일을 시키면 부리기가 쉬워진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자고로 백성이 편안히 즐겨 나라를 망하는데 까지 이르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미리 그들이 교만해 질까 염려하여 수고롭혀 일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시는 두 번째 조짐입니다.

폐하께서는 정관 초에는 당신을 수고롭혀 다른 사물을 이롭게 하셨었는데, 근래에는 폐하의 욕심을 좇아 남을 수고롭게 하십니다. 비록 백성을 염려하시는 말씀이 입에서 끊이지 않는다 해도, 폐하 한 몸을 즐겁게 하는 일들이 실제로는 마음에 더 절실하십니다. 일을 벌리려고 생각지 않는데, 매번 말씀하시기를「이것을 하지 않으면 내가 불편하다.」라고 하시니, 인정상 미루어 누가 감히 다시 논쟁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는 세 번째 조짐입니다.

정관 초에는 군자를 가까이 하시고 소인을 배척하시더니, 근래에는 소인을 가벼이 업신여기시고 군자를 예로써 중시하시는데, 군자를 중시하신다하여 공경하여 멀리 하시고 소인을 경시하신다 하여 친압하여 가까이 하십니다. 가까이 지내시므로 그들의 잘못을 보지 못하시고, 멀리 하시므로 이들의 옳음을 보지 못하십니다. 이들의 옳음을 보지 못하시니 기다릴 새도 없이 소원하여 지고, 그들의 잘못을 보지 못하시니 시간만 있으면 친히 지내십니다. 소인을 가까이 하고 군자를 멀리 하면서 치세(治世)에 이르고자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시는 네 번째 조짐입니다.

정관 초에는 특이한 물건을 귀히 여기지 않으시고 무익한 사업도 벌리지 않으셨었는데, 오늘날은 얻기 어려운 보물들이 이것저것 폐하께 상납되고 즐김이 될 뿐인 공사들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윗사람이 사치스러우면서 아랫사람이 소박할 것을 바라고 부역을 넓힘에 힘쓰면서 농업이 흥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 될 말입니다.
이것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시는 다섯 번째 조짐입니다.』
번호 제목 조회 수
공지 장흥위씨 2600년 그 뿌리를 찾아서(영상) 1191
공지 성씨표기 통일화 추진 결과 보고서(2015년 11월 21일 작성) 976
38 天冠山과 邊山에서 東征艦 建造 / 圓山 위정철 161
37 천재 실학자 존재 위백규의 학문세계(박석무)/ 위신복 제공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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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입춘(立春) 절후 관장하는 위징(魏徵) 제4부 / 梧堂 위운량 file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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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存齋集과 四君子(존재집과 사군자) / 벽천 위윤기 407
29 위씨 성의 유래 / 圓山 위정철 766
28 聽溪公의 續傷往賦幷序(속상왕부병서) / 圓山 위정철 273
27 圓山 위정철 所長의 12권의 著書를 종합해 보았습니다/벽천 위윤기 file 499
26 『존재집(存齋集)』대장부의 운명값 file 220
25 존재 위백규 선생의 생일잔치 의미 274
24 새로 발굴된 문중사료 2008/03/05 원산 222
23 圓山 위정철 소장의 [艮庵公의 生涯와 思想] [1] 838
22 圓山 위정철 소장의 [忠烈公, 淸廉의 化身] 336
21 圓山 위정철 소장의 [存齋公의 生涯 및 著述 年譜3-3(59세~72세)] 915
20 圓山 위정철 소장의 [存齋公의 生涯 및 著述 年譜3-2(35세~58세)] [1] 982
19 소설 원감국사 file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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