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저는 대종회 모임에만 나오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은 기라성같은 젊은 종친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 문중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고 장래가 밝기 때문입니다. 모두 공감하시죠.
저는 오늘 작년에 세운 충렬공 신도비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도문회 총회 석상에서 德雲 魏滉良 씨가 충렬공 신도비를 근수 헌성하겠다고 제의함에 이를 수용하면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도문회장을 위원장으로 6명의 위원을 두었습니다.
원래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관원 묘소 근처 도로변에 세웁니다. 두부에는 螭首 장식을 하고 碑身은 龜趺 위에 설치합니다. 비신 상단에는 해당 직함을 篆字로 횡서 하는데 이를 篆額이라 칭합니다. 충렬공은 15개 직함이 이에 해당됩니다.
공은 문종조에 문과급제하시어 여섯 임금을 내리 섬겼습니다. 문장이 뛰어나 국서를 초안하고 宋나라에까지 알려진 청백리였으며 임금 말씀이라도 도리에 어긋나면 不可함을 諫爭하시니 不可尙書라는 별호에 淸白吏가 더해졌습니다.
君臣 間에 신임이 두터웠고 특히 숙종의 총애를 받아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문무백관의 제1인자가 되었습니다. 卒後에는 예종묘정에 배향되었는데 고려조를 통틀어 종묘에 배향된 신하가 겨우 72명이니 후손 된 입장에서 긍지를 느낍니다.
이렇듯 훌륭한 선조의 신도비를 세우려니 조심스럽고 책임이 무거웠습니다. 비의 규모는
현지 답사와 인터넷으로 얻어진 많은 자료를 참고했고 매사를 추진위의 중의를 모아 도문회 운영위의 승인을 받아서 처리했습니다. 문중 일답게 추진하는 위원장의 사려가 깊었습니다.
위치는 회주사 경내 도로변으로 정하고 撰은 대종회의 협조를 받아 魏炯允 교수 주선으로 고려대학교 17대총장 李基秀 박사에게 의뢰했으며 공사는 동광석재 宣銅權 사장에게 맡기면서 德雲의 말씀대로 '돈은 생각 말고' 천년이 간다는 金石文字 조형물답게 시공되도록 뜻을 함께 했습니다.
비문은 후손이 제시하는 관련 자료에 의하여 작성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루었습니다. 언론인 출신으로 문중 일에 관심이 높고 사학에 조예가 깊은 雲河 족형과 圓山 족제와 함께 많은 역사 기록을 발췌하여 시간을 두고 꼼꼼히 다듬었습니다.
기존의 비문들은 글 쓰는 이가 자료를 참고하며 자기 생각대로 美辭麗句를 동원하니 때로는 과장되어 빈축을 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충렬공 비문은 공신력 있는 역사기록을 인용했기 때문에 객관성이 뚜렷합니다. 다시 한번 탐독하시고 흠모의 정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德雲께서는 60여년 한결같이 문중을 위하여 헌신해 오셨습니다. 회주사 신실도 지으시고 존재선생을 장흥 대표 인물로 지정받아 동상을 세우시더니 또 충렬공 신도비를 세워 문중의 숙원을 풀어 주셨습니다.
한없이 부럽고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큰 박수를 보냅시다. 종친 여러분 우리도 문중 발전에 뜻을 함께 합시다.
2019.3.1 魏禎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