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1 10:03
■위국량(魏國良) (32세, 종사랑파, 1954년생, 여수 산수출신, 前경찰공무원, 재경종친회 부회장)
■인자무적(仁者無敵)은 국량종친의 신조(信條)다.
남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이에 개의치 않고 이해하고 다독거려서 친하게 지내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신자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유래 또한 즐겨 생각하곤 한다. 양(梁)혜왕이 맹자에게 조언을 구하자, 맹자는 인자한 정치를 해서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줄이며,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게 하고, 장정들에게는 효성과 우애와 충성과 신용을 가르쳐 부형과 윗사람을 섬기게 한다. ‘인자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仁者無敵)’고 하는 것이다. 또한 욕심을 버리고 대덕(大德)을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 국량종친의 얼굴에서 항상 기쁨과 포근함이 넘치는 비결이라고 보여 진다.
◇국량(國良)종친은 앵무산 기슭 여수 산수리 출신이다.
앵무산은 위문의 산이라고 일컬어도 과언은 아니다. 왜냐하면 17세 종사랑공 종로(휘) 할아버지께서 터전을 잡으신 곳이기도 하고, 주변임야의 대부분이 우리 종친의 소유로 되어있다. 또한 종사랑파의 성지인 숭조원(崇祖園)과 용모재(庸慕齋)가 있기 때문이다. 앵무산, 곡고산, 양미산을 알아보자면, “해룡면에서는 앵무산, 순천지역에서는 양미산으로 부르고 있다. 양미산(糧米山)은 고려시대에 순천에서 생산된 쌀을 백성들의 양식으로 삼기 위해 세금으로 거둬서 쌓아놓은 창고가 있던 해창(海倉)의 뒷산이라는 의미이며, 곡고산(穀庫山•343m)은 정유재란(1897년) 때 순천 외성에 진을 친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적과 대적하기 위해 이순신과 권율 장군의 휘하 장병들이 먹을 군량미를 산 중턱에 쌓아놓아 곡식 곡(穀), 창고 고(庫)를 쓴다고 했다. 그리고 앵무산은 꾀꼬리의 고어(古語)인 곡고리를 한자화해서 꾀꼬리 앵(鶯)을 쓰는 앵무산으로 변했다고 유추했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앵무산 주변을 장롱 등을 쌓아 노적가리로 위장해서 왜적을 물리쳤다”.
◇숭조원(崇祖園)과 용모재(庸慕齋)는 종사랑파의 聖地이다.
용모재(庸慕齋) : 여수시 율촌면 산수 리에 위치한다. 17세 종사랑공(휘 종로) 이하 선조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 계우(1933~ ), 계작(1942~ ), 중량 (1935~ ), 우량(1946~ )등의 주도와 후손들의 단합으로 2008(戊子)년에 재각 을 건립했다. 상량문(上樑文)은 정하 (계전)께서 썼다. 특히 재각 건립시 자연장지(自然葬地)와 봉안당(납골 묘)을 함께 하는 공간인 숭조원(崇祖園)을 조성하여 종사랑문중 후손 중 사전(事前)에 고인(故人)이 원하 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하여 후손들의 단합과 변화되어 가는 장례문화에 대처하는 선진 모델이라고 찬사를 받고 있다. 매년 11월 첫째 주 토요일 17세 종사랑공 부터 28세손까지 80位에 대해 제향한다. 재각 액호(額號) 편액 글씨는 후손 정하 (계전, 1933~ )께서 썼다. 종사랑문중 소유다(栢江 위성록 편액 글에서 발췌). 문중의 토지가 여수~순천간 도로에 수용되어 보상비로 건축되었고 잔여금으로 순천에 건물을 매입하여 임대료로 문중의 大小事를 치르고 있다.
■32년간 경찰공무원으로 재직했다.
1982년 경찰공무원시험인 공채에 합격하여 2014년까지 평생을 경찰로 봉직했다. 주로 수사업무인 교통사고와 뺑소니사고를 전담했다. 처리과정과 결과 등에 대해 전문가로서 우리 종친들에게 자문을 많이 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형사업무, 파출소 근무를 했고 청량리 경찰서(18년근무)와 강북경찰서(12년 근무)에 있었다. 국량(國良)종친은 아내인 達城 徐氏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아들은 컴퓨터프로그램 전문가로 기업체에 근무 중이고 孫女 예주(譽住). 孫子 대현(對賢)을 두고 있다. 딸은 출가하여 外孫子만 두 명을 두고 있다.
◇국량(國良)종친은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의 모토인 빛과 소금의 역할을 실천하고 있다. 광염교회(일명 감자탕교회)에 모든 가족이 다니고 있다. 감자탕교회의 사랑의 실천이 빛과 소금과 같기 때문이다. “감자탕교회는 한 달에 1억 원 이상의 헌금이 모이지만 교회 통장엔 잔고(殘高)를 백만 원 이하로 남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가 기획하는 일에 바로바로 쓰고, 그 집행결과는 주보와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것이다. 여느 교회 같으면 벌써 교회건물을 크게 신축하여 성전으로 삼을 법하건만 조목사는 그런데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셋방살이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도 캄보디아에 광염대학교를 세웠고, 개척교회와 해외선교, 북한동포 지원은 물론 국내외에 광염교회를 2020년까지 백 개 설립하려는 꿈을 갖고 추진 중이란다. 무엇인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감자탕 교회이야기에서 발췌)
◇국량(國良)종친은 모친인 密陽 朴氏와 사이에 5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율촌초, 여양중, 고등학교를 졸업 후 1975년 海兵隊에 입대해 포항에서 근무했다. 마침 금일수산㈜ 대표인 위양천(32세, 1953년생) 종친과 함께 군생활을 했다. 군대 시절의 혹독한 훈련과 해병대의 군기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양천종친이 있어서 그 기억은 매일 새롭게 다가온다. 이후 현대건설㈜에서 실시한 직업훈련소에 들어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잠시 다녀오기도 했다. 취미는 바둑을 좋아하고 노래실력도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문중에는 1954년생 동갑내기 甲長들이 유별나게 많다.
위문을 이끌 갑장들이 많아 이를 매우 흡족하게 여긴다. 汎谷 대종회장 재임시절과 위옥량 재경종친회장 재임시절엔 여수의 봉두 산수출신 종친들이 많았으나 이제 세월이 흘러 노년에 이르러 大宗會에 활동하는 분이 적은 편이다. 이를 국량(國良)종친은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가깝게 지내는 재경종친들을 독려하여 함께 우리 문중을 중흥하고자 노력 중이다. 그 일환으로 기존 활동중인 율봉 위성진 종친을 비롯해 재량, 제량, 팔량, 계림, 맹환종친들과 힘을 모으고 있다.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재경청장년회 송년회(2015.12. 04) 때 국량종친의 독려로 승량종친(1960년생, 32세, 여수 산수출신, 기업가), 창기종친 부부, 경희, 계림, 재량, 율봉을 비롯 여수출신 종친들 약 10여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개인은 미약하나 여러 종친들이 모여 힘을 합하면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재경종친회 야유회(2015.10.24) 때도 국량종친의 모든 가족을 비롯해 여수출신 종친들 6명이 모였다. 혈정(血精)의 아름다움의 고귀함을 참여로 표현하고자 했다. 먼저 우리 자녀들부터 문중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젊은 피 수혈의 최전선에 앞장서고 있다.
◇先代와 家系이다.
28세 고조(高祖) 영유(榮裕, 자字는 문서文瑞, 1839∼1877)
29세 증조(曾祖) 찬진(贊鎭, 자字는 경현敬賢, 1868∼1944)
30세 조부(祖父) 인권(仁權, 자字는 향지向芝, 號는 청계淸溪, 1906∼1964)
31세 부(父는 계덕(啓德, 자字는 병효秉孝, 1924∼1997)
32세 국량(國良) 차자(次子) 1954.6.6.
33세 (子)찬욱(燦旭(1979년생), 女 미애(美愛)(1980년생)
34세 孫女 예주(譽住). 孫子 대현(對賢)
5남2녀 兄弟姉妹(32世)
양례良禮 1947년생,
칠량七良 1948년생,
국량(國良) 차자(次子) 1954.6.6.생
홍량洪良 1956년생,
조량調良 1958년생,
질량質良 1960년생,
태숙泰淑 1963년생
■국량(國良)종친을 뵐 때면 대도무문(大道無門)이 생각난다.
큰길에는 문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문중에는 가로막을 어떤 난관도 없다는 것이다. 당당히 의연하게 魏門사랑 을 실천하는 국량(國良)종친의 모습이 마음에 그려진다. (자문:호산,백강/글:벽천)
■素溪(소계)
이번 아호의뢰인은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수전마을 출신이신 종사랑 문중 위국량 종친님입니다. 국량 종친님은 경찰공무원으로 평생 봉직했었습니다. 현재 장흥위문에서는 재경종친회 부회장이시며 문사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량 종친님은 사주가 좋은 편입니다. 다소 약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면 수입니다.
그래서 머리자의 素(소)는 성향을, 뒤에 字는 자원오행상 水인 溪를 받쳤습니다.
■素溪(소계) 풀이
●자원오행: 素(木)+ 溪(水)= 木生水
●수리: 素(10)+ 溪(14)=
24획 吉
●24劃 數理 吉
입신격(立身格), 풍재운(豊財運), 축재운(畜財運)
지모가 출중하여 어려운 일도 능히 해결하여 대업을 성취한다.
환경이 빈약하고 열악하나 불굴의 의지로 노력하면 성공하고 공명을 떨친다.
재성이 대길하고 정격이 되며 타격과 조화를 이루면 대권도 기대해 볼만하다.
귀가 겸전하며 자손만대까지 영화를 누리는 수리다.
●素-본디 소/흴 소
획수- 총10획
1. 본디
2. 바탕
3. 성질(性質)
4. 정성(精誠)
5. 평소(平素)
6. 처음
7. 흰깁
8. 희다
9. 질박하다(質樸ㆍ質朴--: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
10. 넓다
11. 부질없다
12. 옳다
○단어 뜻풀이
①음식(飮食)에 고기ㆍ 생선(生鮮) 따위 고기붙이를 쓰지 아니함
②(기중(忌中)에) 고기나 생선(生鮮) 따위 비린 음식(飮食)을 먹지 않는 일
○회의문자
빨아 널어 드리운(垂) 명주실이(실사(糸☞실타래)部) 깨끗하다는 데서 '희다'를 뜻함. 아직 물들이지 않은 흰 명주→희다, 또 물건(物件)의 시초→바탕
●溪- 시내 계
오행획수- 총14획
1. 시내
2. 시냇물
3. 산골짜기
4. 송장메뚜기
5. 텅 비다
6. 헛되다
단어 뜻풀이
성(姓)의 하나
○형성문자
渓(계)의 본자(本字).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奚(해→계☞산골짜기)로 이루어짐. 개울의 뜻으로 쓰임
■아호 뜻
본디라는 뜻을 가진 素자는 의미가 좋은 글자입니다. 아호자에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희다 라는 색깔의 의미만은 아닙니다. 본디적인 것과 질박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런 뜻을 의뢰인에게 맞추어 보았습니다. 잘 맞는 거 같습니다. 실제로 활달한 성격과 소탈한 면이 있었습니다. 수수하고 꾸민 데가 없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변인들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 아호 소계는 산수마을에 일반적으로 있는 계곡입니다.
素溪는 산수마을 사람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본 아호는 이름하고 같이 부르면 더 좋게 다가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작호인 야운 위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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