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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위정철(圓山 魏正哲) (32세, 판서공파 행와종중, 1939년생, 보성 도강출신, 前조선일보기자, 씨족문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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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圓山)은 著述家이다.
門中의 과거와 현재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했다. 현장성과 종합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다양성과 종합성을 중시한다. “천년세고”와 “요람”에 나타난 60선현의 체계와 1,300여 년간의 역사기록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門中뿐만 아니라 호남지방과 종교분야 까지 저술의 폭이 넓다.

원산(圓山)은 雅號이다.
행와종중 세록에서 “圓山은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 윗쪽에 위치한 산 이름이다. 주봉인 형제봉 밑에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 작은 야산이지만 산의 모양이 둥글어서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圓山 또는 도루뫼라 불렀다. 이 산은 우리 長興 魏氏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곳에는 道崗에 터를 닦으신 幸窩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산소에서는 할아버지 후손들이 해마다 묘전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인연치고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다”라고 한다.

“위씨의 족보 등 문중현안에 눈을 뜬 것은 수단(收單) 때문이다.
1997년 문중에서는 기묘대동보에 올릴 내용을 접수 하도록 통보했다. 행와종종의 경우는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이 무렵 까지도 위씨의 상계는 물론 족보를 보는 법도 제대로 몰랐다. 한마디로 너무 몰랐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지 못하면 조상과 문중을 위해 이바지 한 것도 보람이라 생각했다”(魏門 備忘錄에서 발췌).

■존재공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기다.
◇主要著書는 12권이다.
01)행와공 후손세록((幸窩公 後孫世祿) (2001년)
02)장흥위씨요람(長興魏氏要覽(2005년)
03)장흥위씨홈페이지(2004년)
04)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長興魏氏 千年世稿選集(2008년)
05)장흥위씨 수련회교재(2009년)
06)보의총론(譜疑總論)(2010년)
07)존재 위백규와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연구(2012년)
08)魏門 備忘錄(2013년)
09)위대한 조상 똑똑한 후손(2015년)
10)實錄 光州事態(2000년),
11)宗敎의 絶望을 말하다(2006년),
12)DJ와 全羅道 등이다

◇향후 發刊豫定인 著書는 6권이다.
01)장천재 인문활동기(長川齋 人文活動記),
02)천관산 유산문학(天冠山 遊山文學),
03)남도의 유배객(南道의 流配客),
04)전라도의 학맥과 예맥(全羅道의 學脈과 藝脈),
05)제국(帝國)의 몰락,
06)存 齋선생 著述硏究(1) 등이다.

◇7대 주요업적(추후 자세히 게재할 예정임)
01)門中 綜合百科辭典인 要覽을 集大成하다.
02)1,300여년 門中 知性史의 體系를 세우다.
03)잘못된 역사(譜疑)를 바로잡다.
04)장흥위씨 홈페이지를 개설하다.
05)魏門의 百年大計를 세우다.
06)存齋公 傳道師로 地坪을 넓히다.
07)後學을 지도하다.

◇圓山의 글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는 기차전법이다. 짤막한 문장을 여러 개로 나누어 지속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마치 기차가 기관차를 앞세우고 수많은 화차를 달고 가는 격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느끼는 결과를 낳았다.
둘째는 주관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객관성을 존중한다.
이는 아마도 신문기자와 논설위원 출신으로 몸에 밴 現場性에서 기인한다. “책 한 권을 내는 데는 해산의 苦痛보다 더하다”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圓山所長께서 는 벌써 이십여 권 가까이를 집필하셨으니 해산을 하는 고통을 이십여 회나 경험했다. 魏門의 문(文)의 전통을 살리고자 노심초사했다.

■월명송과 장흥위씨종보에 다수의 글을 게재하다.
◇관북종보 月明頌(1~11집)에 게재한 글(4편)
01)주민정책과 관북위씨(8집)
02)다문화가정과 희귀성씨의 급증(9집)
03)補正世系를 反對한 宗員들에게 드린 苦言(10집)
04)정관팔학사 가입철회의 전말(11집)

◇長興魏氏宗報(1~21호)에 게재한 글(22편)
01(17호) 宗報 20년 편집한 松堂 위재형 회고
02(12호) 長興魏氏 중흥을 이끈 大宗會의 업적
03(12호) 학생하계수련회 체험과 개선책
04(13호) 3백년 族譜史 불구 大同譜 미완성
05(14호) 長興魏氏 行列小考(51세 이후 문제, 대책)
06(15호) 魏氏의 관산 세거 500년
07(16호) 판사공의 족보기록과 왕조실록
08(17호) 충의록 史實괴리와 보정의 필요성
09(17호) 流配地 강진에서 500권 저술 남긴 다산
10(20호) 7년 동안 미궁에서 헤맨 存齋學會 설립
11(14호) 亂中日記와 淸溪公의 수난
12(15호) 存齋公 의 현감출사와 사직의 비사
13(11호) 艮庵公 의 上疏文과 生涯
14(16호) 朝鮮時代 과거에 급제한 선조
15(11호) 艮庵公 行狀
16(11호) 비운의 좌절과 생애 艮庵公
17(09호) 族譜에 숨어있는 선조들의 노고
18(10호) 先祖 祭亨의 형평성과 개선방향
19(21호) 끊긴 핏줄 잇는 架橋役
20(21호) 존재선생 韓中日 대표 實學者로 뽑혀
21(21호) 영월에서 핀 “한 송이 위씨 꽃”
22 大宗家 복원 불가능한가? 등이다.

■원산(圓山)의 세례명은 “미카엘”이다.
25년간 신과 종교에 대해 갈등하다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가톨릭에 입교했다. 세례명은 “미카엘”이다. “종교의 절망을 말하다”의 저서에서 “오랜 방황과 탐색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종교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광주사태가 일어났다. 여러 종파 가운데 가톨릭은 광주시민의 아픔과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섰다. 교세로는 개신교와 불교가 훨씬 넓고 크지만 그들은 교단차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톨릭은 교구차원에서 올인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이상적인 종교를 찾을 수 없다면 약자를 위해서 그나마 노력하는 종교라도 평가하자. 그런 기준에서 선택한 종교가 가톨릭이다. 가톨릭의 선택은 후회가 없는 선택이라 여겼다”

◇원산(圓山)은 판서공파 출신이다. 잉여옹공(剩餘翁公)의 셋째아들인 행와공(幸窩公) 중중이다. 부친인 오은공(誤隱公)과 竹山安氏 사이의 12남매(3남9녀) 중 차남이다. 조선대학교 법학과를 졸업 후 1971년부터 조선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정성학원 이사장, 무등일보 정치부장과 논설위원, 광주매일 편집부 국장과 논설위원, 남도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했다. 슬하에 아내인 金海金氏 사이에 2남1녀((영수(榮秀), 희준(熙埈) 주영(珠榮))와 손자인 성민(聖民)을 두고 있다.

◇先代와 家系이다.
25세 7대조 잉여옹(剩餘翁) 명덕命德(諱)
26세 6대조 행와(幸窩) 사급師汲(諱)
27세 5대조 청암(淸庵)  수의守懿(諱) (1756~1813)
28세 고조 영주 榮胄(諱) (1784~1826)
29세 증조 혁조赫祚(諱) (1816~1894)
30세 조부 백암(柏嵒) 종권琮權(諱) (1870~1911)
31세 부 오은(誤隱) 계행啓幸(諱)(1906~1973) 配는 竹山安福男(1905~1987)
32세 正哲 初名은 亟良, 配는 金海金福子(1943년생)
33세 子는 영수(榮秀) 1972년생, 配는 韓山程美葉, 희준(熙埈) 주영(珠榮)
34세 孫子는 성민(聖民) 2001년생 성훈(聖勳), 2001년생

■원산(圓山)의 소망은 소박하다.
문중에 헌신한 德雲, 松潭 등에 대해서는 門中葬을 치르는 것과 존재학회 창립을 그토록 원했지만 아직 깜깜 무소식이다. 지방종친 중 젊은이들의 문중사 참여감소도 고민이다. 마지막으로 도문회의 단, 중, 장기 비젼제시와 체계적인 실천계획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원산(圓山)에 대해 글쓰기를 수 차례 미루고 미루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우리 門中史에서 커다란 足跡을 남겼기 때문이다. 위문의 젊은이 로서 꼭 기억하고 싶었다. 아래 사진은 존재집, 존재공에 대한 圓山의 열정을, 대나무와  매화는  암울했던  시대를 개혁하고자  했던 참  지식인으로서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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