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1 18:39
■송당(松堂) 위재형(38세, 관북파, 함흥 반송리 출신, 前관북종친회장, 교육가)
■傘壽, 望鄕記
(80세는 산수(傘壽)라 한다. 우산 산(傘)자는 약자로 쓰면 여덟 팔(八) 아래에 열 십(十)자를 쓴다.) 내가 함흥사범학교에 입학한 때가 1939년4월6일인데 이보다 앞선 1936년 봄에 家兄(載嵛, 1922년생)은 일본 東京으로 훌쩍 떠났다. 형님나이 15세때다. 당시 일본가기 위해선 玄海灘을 건너는 關釜連絡船을 타기위해 渡航證이란게 꼭 필요했다. 도항증은 관할 경찰서에서 심문조사후 내주는데 형은 용하게 어린 몸으로 도항증을 따냈다.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던 조용한 시골마을 盤松리에서 한 소년의 기발한 일본 탈출은 큰 화젯거리를 안겨준 일대 사건이었다. 반송리는 넓은 벼농사 들판 가운데 자리한 마을인데 벼농사만 지었으니 김일성이 말했듯 “이팝”만 먹던 동네였다. 반송리와 상반리 중간에 수백년 내려온 아담스레 생긴 盤松(村老들도 나이를 모름) 한그루가 있었다.
내 아호 “松堂”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아버지는 서당에서 한학공부를 하셨으나 마을에선 유식층이었다. 외지 방랑하실 때도 엽서지만 자주 집에 편지를 쓰셨다. 그러나 편지 수신칸만 늘”本第入納”이었다. 지금도 그 펜 글씨의 流麗함이 선한데 그 많던 엽서 한통을 가지고 못나왔으니 나이 들수록 애석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1942년 음 8월15일 갑자기 돌아가시니(향년 45) 형님은 내가 보낸 急報로 귀가 했지만 3일장으로 치러진 장례에서 아버지를 주북면 공동묘지(신풍리 소재)에 모신 후였다. 통탄할 일이지만 형님이 성장후 아버지와의 對面은 끝내 없었으니 불우한 父子關係였다.
나는 1944년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함북 길주군내 바닷가 국민학교에 배속되었다. 7월초 몹시 무덥던 날 형님께서 내 일본군대 입영통지서를 가지고 학교로 오셨는데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라했지만 그냥 가신 일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과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625대 피난길에 오르면서 챙겨올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엔 이분들 모습이 깊게 각인돼 있다. 눈을 감으면 모습이 선하다. 625때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을 때 형님은 만주쪽으로 피란 갔었다. 지금도 만주에서 사실 것이다.
저 하늘 떠돌아다니는 흰구름아,
형님 소식을 안다면 전해다오!
때가 되면 찾아오는 鳥들아!
형님 소식을 너는 아느냐!
■관북종인의 노래(위재형 작사/별첨)
◇개마고원 우상동에 달이 비추니 실개천이 강이되고 바다가 되네. 겨레돈목 제일이란 큰뜻 세우고 메마른 땅 일궈가며 사람기르니 관북의 호족이라. 그 이름 떨치네. 어서가자 미래로 하늘이 드높다.
◇세종성대 우리 할배 함흥가시고 육이오때 할배후손 서울에 오니, 세상만사 일장춘몽 구름같아라, 산설고 물선 땅개척 씨앗뿌리니 자수성가 관북종인 청사 빛내리, 어서 가자 광야로 태양이 드높다.
■松堂日記 2005년(乙酉) 1~5월
◇1/2(일) -4도C, 흐림 상계동에 이사와서 두번째 새해가 되는데, 옛선비들을 본받아 우리 집이름, 즉 堂號를 三知軒이라 정해 봤다. 삼지란 내가 팔순 때 이사와 노후생활의 허전함을 달래고 삶의 지표로 삼기위해 나름대로 내세운 수신의 덕목이다.
三知란 知足, 知分, 知止를 이르는 말인데(47쪽)
◇1/19(수) -6도C, 오후 “장흥위씨요람” 교정본이 우송돼 받아보니 “보시고 수정해 달라”는 정철 씨 쪽편지도 들어있었다. 나는 “아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일거리가 너무 많아서다. 한편 겁도 났다.(50쪽)
◇위황량 위원 : 장흥위씨가 이만큼 알려진 것은 존재공 덕분인데 그분이 쓰신 지세지를 바탕으로 한 글을 줄이는 데는 반대한다(52쪽).
◇위재형 위원 : 내 나이 80이 넘은 지금 이 자리에 나왔다. 돌아보니 모두 고령자시다. 이런 환경에서 집필자 정철 위원 같은 분이 등장한 것은 장흥위씨의 홍복이라 생각한다. 통찰력이 정확하고 용기있고, 年富力强한 이분이 장흥위씨 지도자의 한분으로 대성하게끔 모두 밀어주시면 좋겠다.(51쪽)
■이 글은 월명송 제10집(2011.10)에서 松堂 위재형 前관북종친회장의 노고를 조명코자 총 27편의 글중 3편만을 골라 그 중에서도 일부를 발췌했다(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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