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7 19:20
애국지사(愛國志士) 덕암(德菴) 위석규(魏錫奎)선생 부인
평해오씨(平海吳氏) 효열비(孝烈碑)는 장흥군 관산읍 천관산길 142번지 장천재 입구에 위치한다. 비(碑)의 규모는 총 높이 270cm, 비신폭 60cm, 비후 28cm이다.
평해오씨(1880~1949 화방할머님) 는 강진군 군동면 화방리 마을에서 도정(都正) 오병규(吳鉼奎)의 1남1여로 1880년(庚寅) 4월 29일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삼종지도(三從之道)와 규방(閨房)의 범절을 익히니 재덕(才德)을 갖춘 요조(窈窕)숙녀가 되어 1898년(戊戌) 덕암(德菴) 위석규(1883~1913) 선생과 혼인하였다. 1902년(壬寅) 아들 위계동을 낳았다. 1905년(乙巳) 일본의 강압과 매국노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1906년(丙午) 국권회복을 위해 유서를 남기고 만주로 망명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3년(癸丑)4월 27일 순절하였다.
평해오씨는 그 후 수절하면서 시부모를 지성(至誠)으로 공경하고 한평생 비단이나 색(色)이든 옷을 입지 않음으로써 부군(夫君)에 대한 애모(愛慕)의 정(情)을 나타내 열녀(烈女)의 길을 걸으면서 아들을 맹모지교(孟母之敎)로 훌륭히 길러냈다. 1949년(己丑) 12월 5일 향년 70세로 별세하니 묘소는 관산읍 성산리 성자동(聖子洞) 우등(右嶝) 간좌(艮坐)이다.
그뜻을 기리고자 1989년(己巳) 한식절(寒食節) 손(孫) 욱량, 황량이 효열비를 세웠다.
평해오씨의 독자 인재(忍齋) 계동(1902~1956)은,
옥천(玉泉) 욱량(1921~1994), 덕운(德雲) 황량(1927~ ), 춘오(春塢) 재량(1933~2005), 계암(桂菴) 기량(1938~2016)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증손(曾孫)은 장산(長山) 용환(1942~ ), 춘강(春岡) 순환(1945~ ), 야정(野井) 홍환은 욱량 출(出)이며, 천환(1954~ ), 홍렬은 황량 출(出)이며, 유환(1956~ ), 형근, 보훈, 진욱은 재량 출(出)이며, 찬훈(1964~ ), 성범, 상우는 기량 출(出)이다. 이하의 후손은 생략한다.
비문(碑文)의 근찬(謹撰)은 청송人 노호(鷺湖) 심정섭(1943~ )이 했다. 보성군 태생이다. 전남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석사로 수필가이다. 만취(晩翠) 위계도 선생의 문하생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발기인이다. 특히 비문 찬(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근서(謹書)는 전주人 송파(松坡) 이규형(1937~ )이 했다. 화순군 동복면 태생으로 松谷(안규동)의 문하생이다. 현재 광주에서 삼락서예원 원장으로 활동중이다. 화순 동복향교 전교를 역임했다.^^ 栢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