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6 16:15
위씨문중 최초로 국회의원 당선의 쾌거를 이루었다.
제20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구에 출마한 위성곤 종친은 더불어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시의회 의장출신의 경쟁자를 힘겹게 물리치고 본선에서도 새누리당 후보와 업치락 뒤치락 혼전 속에서 결국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위성곤 당선자는 1968년생으로 유치 단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초등학교 때 외가인 제주도 서귀포로 부모님을 따라 이사갔으며 34세 항렬 판서공파이다.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제주도 의회 3선 의원으로 정치력을 키우다가 마침내 국회의원에 도전하여 위풍당당의 선거 슬로건대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위문을 빛냈다.
다음은 언론에 보도된 위성곤 당선자의 당선 소감을 옮긴다.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서귀포시 선거구에서 당선된 위성곤 당선자(48·더불어민주당)는 당선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오늘 선거 결과는 위성곤 개인의 승리가 아닌 서귀포시민의 승리”라며 선거 승리의 공을 시민들에게 넘겼다.
위 당선자는 “서귀포시민들과의 소중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면서 “서귀포의 생명산업인 1차 산업을 제대로 살리고 우리 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 받지 않는 서귀포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되뇌었다.
위 당선자는 이어 “귀농귀촌, 이주정착민들의 에너지가 서귀포시의 새로운 희망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으겠다”며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꿈을 키울 수 있는 서귀포로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위 당선자는 상대 후보였던 강지용 새누리당 후보를 향해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강 후보님께도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면서 “큰 뜻에서 동의해주신다면 1차 산업에 대한 강 후보님의 좋은 공약들은 서귀포의 내일을 새롭게 하는 정책으로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선거기간 경쟁관계에 불가피했던 갈등을 넘어 대화합이 필요하다”며 “화합의 정치를 통해 서귀포시의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제주도의원으로 활동하는 10년간 ‘현장에 답이 있다’고 외쳤던 위 당선자는 “언제나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는 ‘현장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제주사회의 변화와 한국정치의 혁신을 일으켜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성곤 종친의 국회의원 당선의 의미 - 원산
제주도 서귀포시 국희의원 후보로 출마한 위성곤 종친이 드디어 당선됐다. 그의 당선은 개인은 물론 우리 장흥 위씨의 축복이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객지나 마찬가지인 외로운 서귀포에서 허다한 역경을 딛고 당선된 후보자 본인과 그 가족들에게 먼저 축하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한 사람의 인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물심양면의 꾸준한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성곤 종친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의 당선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기적이 아니다. 남들이 놀 때나 잠잘 때 보이지 않게 뛰어다닌 결정체인 것이다. 한 표 한 표가 그냥 수 만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씨족의 역사는 결국 인물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위씨의 인물은 어쨌는가. 고려시대에 많은 인물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문종조에 출사한 충렬공(휘 繼廷)은 참으로 충중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이후 고종조 때 춘위예부시에 장원한 원감국사 형제들을 꼽을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된 후엔 고려보다 화려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존재공은 늘 수 백년간 삼품관이 없다면서 「삼벽(三僻)의 한」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삼품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별시위패두를 역임한 충(种), 북도능전지를 편찬한 창조(昌祚)등은 삼품관이었으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문제는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이다.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70년간 장흥 위씨는 선출직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성곤 종친 이전까지 그 기나긴 세월동안 도의원 3명을 배출한 것이 전부였다.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 가운데 어쩌면 가장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씨족에 속할지도 모른다.
이제 위씨도 성곤 종친으로 말미암아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인물은 농사와 화원의 꽃, 그리고 나무처럼 가꿔야 자란다. 물주고 거름 주고 잡초 제거해주는 등 정성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내 것 네 것, 내파 네파라는 파당은 가장 금기해야 한다. 인재는 하루아침이 솟아오르지 않는다. <2016. 4. 14 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