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4 18:38
질곡의 역사와 형극의 삶, 송당(휘 재형)公
(회주사에 송당公 공적비 건립을 바라며)
碧泉 위윤기(35世, 청장년회 총무)
일본에 강제 징집당해 소련군과 만주전투에서 많은 주검을 보았고,
인민군의 총부리로 동족의 심장을 겨누는 이데올로기의 올무가 되었네.
약소국의 굴곡진 수레바퀴는 송당公의 삶을 마구 짓눌렀고,
아내와 부모, 형제와 자매 생이별로 홀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셨네.
함흥사범, 흥남공대에서 배우고 현장에서 익힌 숭고한 학문의 길,
대한민국 고명학원에서 스승으로 후학지도에 온 마음으로 진력했네.
향수(享壽) 아흔넷 꿈속에서만 보이던 탯자리 함경도 반송리,
이별의 슬픔, 분단의 아픔을 희망으로 승화시켜 종보(宗報)에 담았네.
아흔 네 해를 향수하신 송당公의 좌우명은 삼지(三知)이다. 지족(知足), 지분(知分), 지지(知止)에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나든 흔적이 묻어있다. 오늘에 만족하고 본분을 지키며 절제의 미덕을 심령에 새기셨다. 세 번씩이나 굴곡하는 국가체제 변혁을 몸소 체득하셨기 때문이다. 고난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굴러 公의 삶을 이리저리 마구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公의 삶은 개인의 슬픔을 넘어 바로 문중의 아픔이요, 온 겨레의 고통이다. 그래서 公의 아흔 네 해 ‘질곡(桎梏)의 역사와 형극(荊棘)의 삶’을 살펴보자.
1. 문중의 큰 별
'관북종친회 松堂 위재형 종인께서 2017년 6월 21일 새벽 4시 40분 향년 94세 일기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 드립니다.
○ 발인 : 2017년 6월 23일 07:00
○ 빈소 : 을지병원 장례식장 2호실(노원구 하계동 소재/하계역)
○ 장지 : 포천 선영'
松潭(자형)대종회장은 비보를 접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침통해 했고, 錦峰(인환)도문회장은 문중의 큰 별이 떨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성열(관북종친회장)은 손발이 찔리는 형극(荊棘)이라고 슬퍼했다. 결국 종보에 기고한 망향기(望鄕記)에서 나타나듯 公께서는 고향땅과 혈족에 대한 그리움과 한(恨)을 가슴에 묻고 영면하셨다. 끝내 고향땅 반송리를 찾아보지 못했고 형을 비롯한 일가친지와 재회하지 못했다. 남북
분단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 즉 형님에 대한 그리움을 한 편의 시로 읊고 있다.
‘저 하늘 떠돌아다니는 흰 구름아,
형님 소식을 안다면 전해다오!
때가 되면 찾아오는 鳥들아!
형님 소식을 너는 아느냐!,
평소 公을 흠모했던 蓮塘(창복)성균관 前전례부위원장은 公을 추모하는 '만장(輓章)'을 영전에 올렸다.
謹輓松堂魏載亨族丈韻 <송당(松堂) 위재형(魏載亨) 족장을 애도한 만장>
聽訃松堂却化仙(청부송당각화선) 松堂께서 갑자기 신선이 되셨다는 부음을 듣고,
驚悲族丈弔喪緜(경비족장조상면) 족장의 타계를 놀래 슬퍼하며 문상이 이어지네.
咸興玉器成師範(함흥옥기성사범) 咸興에서 만들어진 옥그릇이 모범 스승 되었고,
京兆鞭壇養俊賢(경조편단양준현) 서울에 상경해 교편 들고 어진人材 양성했도다.
盈架圖書明德潤(영가도서명덕윤) 서가에 가득한 그림과 책, 德을 밝혀 윤택하고,
滿箱宗報爲先編(만상종보위선편) 상자에 그득한 月明頌, 종보는 祖上 위한 편찬.
胤孫孝養躋仁壽(윤손효양제인수) 아들손자들 효도 봉양으로 仁者장수 누렸지만,
執紼斜陽淚潸然(집불사양누산연) 상여 끈 잡은 석양 길에 永訣의 눈물 흐르네.
丁酉(2017)年 6월 22일(음. 5월 28일)
족말(族末) 창복(昌復) 근재배 곡만(謹再拜 哭輓)
2. 국가적 재앙을 걸머진 삶
*. 1924년 함경남도 함주군 주북면 반송리에서 출생,
*. 1939년 주북초교 졸업,
*. 1939년 함흥사범 입학,
*. 1945년 함흥사범 졸업,
*. 1945년 8월 3일 일본군에 강제징집 / 조선군 제18연대(함흥연대, 만주소재)
*. 1945년 8월 8일 소련군에 대항해 만주전투 참가
*. 1945년 8월 15일 해방
*. 1946년~1948년 주북초교 교사
*. 1948년 9월 흥남공업대학 입학,
*. 1948년 12월 8일 주북초교 교사인 안인숙(安仁淑)과 결혼
*. 1950년 북한군 입대 / 북한군 장교로 6.25전쟁 참전,
*. 1951년 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거제 포로수용소행
*. 1953년 6월 18일 북한군 포로석방
*. 1953년~1988년(36년) 고명상고 교사재직
*. 1988년 2월 29일 국민훈장(목련장) 수상
*. 2017년 6월 21일 영면
일본제국 식민체제, 북한 공산체제, 대한민국 자본체제라는 세 번씩이나 국가체제의 굴곡을 몸소 겪어야만 했다. 일본 식민지 시대 때 태어나 함흥사범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제2차 세계대전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집당해 만주에서 소련과의 전투에서 많은 주검을 보았다. 해방 후 신혼의 단꿈도 잠시 6.25전쟁이 터져 흥남공대 재학생은 모두 북한군 장교로 강제 참전하게 되었다. 결국 公은 전쟁이 끝난 후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1953.06.18 이승만 대통령의 선포로 전쟁포로 신분에서 석방되기까지 영어(囹圄)의 몸이 되셨다. 公과 가까운 집안인 위재균 前관북종친회장은 ‘公은 그 와중에도 뛰어난 영어실력 때문에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통역사로 늘 바쁜 나날이었다’고 귀띔했다. 公은 저서 여러 곳에서 일본의 식민사상을 부정, 비판하고 민족의 자존을 드높이는 여러 편의 글을 쓰셨고 공산당이 지배한 해방 후 북한체제의 이데올로기의 실체와 국민에 대한 억압과 감시과정에 대해서도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고난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公은 서있을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아래와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 경우 1948년 고향에서 결혼, 한 일 년 남짓 살다가 전쟁 통에 여기 넘어와서 또 생존을 위한다면서 결혼했으니 이중혼의 죄악이 과연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시대의 죄과일까, 개인의 죄과일까? 스스로 생각해 봐도 파란만장한 인생살이였는데 6.25전쟁이란 초비상사태 속에서 이북태생이란 태생적 운명에 농락당한 것이지 내 개인의 의지나 윤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그냥 떠밀린 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국가적인 재앙에서 이런 운명을 지니고 가는 인생길이 어찌 평탄했다고만 하겠는가.’라고 公은 스스로 94년 동안 살아온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남북한에서 두 번의 결혼은 公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3. 기록(記錄)으로 문중에 기여
公께서 생전 ‘문중의 홍복(弘福)이요, 문보(門寶)’라고 극찬하셨던 圓山(정철)씨족문화연구소 2대 소장은 公의 업적을 기록해 후손에게 귀감으로 삼고자했다.
먼저 장흥위씨요람에서 '기록(記錄)으로 위문에 기여한 송당'으로 업적을 네 분야로 세분화하고 있다. 1)관북족보 신유보를 발간하다. 2)관북종친회 운영에 일익을 담당하다. 사월문중과 유대를 강화했고 백씨 할머니 묘역의 땅을 매입했다. 또한 관북종친회와 대종회 기금마련에 앞장섰다. 3)월명송과 종보를 편집해서 발행하다. 월명송을 1986년 창간 후 2007년까지 격년제로 8집을 편집했고, 장흥위씨종보는 1995년 창간 후 2008년까지 13호를 편집했다. 4)종보에 장흥위씨 역사기록을 남기다. ‘월명송에 1호(1986.9) 제막식소묘’ 외 14편, 장흥위씨종보에는 ‘조상의 옛 시’를 비롯 16편의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또한 장흥위씨종보 17호(2011.04) 대담편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三知를 당부한 매서운 警告, 종보 20년 편집한 松堂 載亨翁의 회고’ 란 제목이다. 8가지를 원산(정철)소장과 묻고 대답하는 대담형식이다. 10쪽의 글은 개마고원 황초령 칼바람으로 시작하는데 ‘1985년부터 관북종인들이 회주대제에 참여 후 1990년 대종회 결성에 힘을 보탰고, 사월재와 보의론 등 문중의 격변기에도 항상 중심에 서 있었다’고 公을 조명하고 있다.
公의 저서 ‘할아버지와 윤서와의 대화’(2008년)를 살펴보자.
첫째 마당에서 먼 하늘, ‘머나먼 고향길’ 에서 22편의 글을 남겼다. 둘째 마당인 ‘28년(1980년~2008년)의 자욱인 200여 쪽의 송당일기(松堂日記)’ 에서 가족사, 문중업무, 생업, 기타 신변잡기 등 세세하고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야말로 28년간 일수로 10,220 일간 16책에 담아 남겼다. 셋째 마당인 ‘송당의 수상 숲길’ 에서는 26편의 논단을 실었다. 넷째 마당은 ‘화보를 통해 보는 松堂의 인생길’ 을 실어 대미를 장식했다.
더 나아가 드리는 말씀을 통해 公은 ‘소생이 팔십 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할아버지와 윤서와의 대화’란 표제로 한권의 책에 담아 봤습니다. 윤서는 소생이 지난해(84세 때) 섣달그믐에 늦게 본 손녀 이름입니다. 그러고 보니 윤서의 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못난 할아버지는 이보다 기쁜 일이 없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책이 윤서의 돌에 맞춰서 나오게 된 연유를 주제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웃으시면서 이 소품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12월 10일 위재형 배상’이라고 적었다.
문중의 문화창달 외에도 주북면지(1991년) 발행, 함흥사범 동문회지 ‘함사’를 창간(1999년) 및 3호까지 편집, 흥남공대 동문회지 ‘동해’를 창간(2002년)했다.
4. 회주사에 송당公 공적비 건립을 바라며
‘피를 뿌려 먹을 갈고 뼈를 깎는 마음으로 종이에 써서 계의 序文으로 삼는다’는 존재公의 글이다. 존재公의 글은 대부분 과격하거나 극단적이지 않다. 늘 논리적이며 점진적인 전개논법을 사용한다. 무기계(無忮契) 서문의 말미의 ‘피를 뿌려 먹을 갈고 뼈를 깎는 마음’이란 존재公의 전심(全心)을 담은 강조적 표현이다. 피와 뼈란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무엇을 후손에게 당부하고자 했는가? 수적으로 미미한 장흥위씨의 분열을 경계한 것이다. 바로 장흥위씨는 화합(和合)하지 않으면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중심(中心)을 단적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물 한 방울이 모여 내가 되고 내가 흘러 강이 되듯 종친 한 사람이 가족을 구성하고 가문이 모여 문중을 이룬다. 송당公은 장흥위씨를 구성하는 관북파의 일원으로 송당公의 환난을 문중차원에서도 함께 아파하고 배려하며 그 유지를 받들어야한다. 송당公의 언급대로 ‘국가적인 재앙에서 이런 운명을 지니고 가는 인생길’ 을 문중차원에서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송당公의 공적비를 회주사에 세워야한다고 수년전부터 문중을 사랑하는 몇몇 종친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고 이는 관북파의 일관된 공식입장이기도하다. 또한 회주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이다. 송당公의 문중업적을 널리 알리고 관북파 후손들의 마음 둘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 건립은 관북파 종친들을 적극 수용하는 화합의 마음이다. 물론 북한에는 함경남도 신흥군 원평면 우상리에 소재한 관북파의 사우 월명사(月明祠)가 있고, 남한에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강포리 388번지에 망향비(望鄕碑)와 경일사(敬日祠)가 있다. 회주사에는 公이 쓰신 ‘관북족인 위재섭 배 이인숙 여사 공덕비’가 있지만 송당公의 공적비가 세워진다면 관북파 종친들의 마음속에는 늘 회주사를 기억하고 시절을 쫒아 방문도 할 것이다. 언젠가 통일한국이 된다면 함경도에서 세거지를 이룬 관북 종친들이 대거 장흥 회주사를 찾아 눈물을 흘리며 하나된 장흥위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리라. 회주사가 진정한 장흥위씨 성지가 되기 위해서는 문중을 이끌고 나가는 원로들께서 파와 항렬, 출신지를 떠나 존재公의 경계를 받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문중의 미래를 예견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송당公의 회주사 내 공적비 건립은 관북파를 장흥위씨 문중과 화합시키는 시금석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송당公은 장흥위씨 38世, 관북봉규파, 前관북종친회장, 교육자로 配 신영순(申永順)과의 슬하에 1男(원석) 3女(영희, 경희, 정인)를 두었고 아호는 송당(松堂)이다. 탯자리 함경남도 함주군 주북면 인근에는 아름드리 조선 소나무가 유독 많았다고 한다. 특히 관북파 세거지로 널리 알려진 반송리(盤松里)에는 마을 어귀에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公께서는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해서 ‘소나무가 서있는 반송리’라는 뜻에서 아호를 스스로 지으셨고 송당(松堂)이라 불리도록 그토록 소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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