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7 04:49
●상잠산성(觴岑山城)
고향 방촌마을 내동과 계춘동의 뒷산은 상잠산이다. 이 산의 정상부분에 남북으로 긴 장방형(長方形)의 산성(山城)이 있다. 현재 성벽은 거의 허물어져 있으나 성(城)의 북쪽에 출입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곳에 잘 다듬어진 큰 돌이 남아있다. 군데군데 흙과 돌을 적적하게 섞어서 쌓은 흔적이 있다. 성(城)의 둘레는 약 500m이고 성의 폭은 1~3m이며 높이는 2m 내외이다. 성을 쌓았던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47년에 간행한 장흥읍지(丁酉誌)에 의하면 상잠산이 장흥의 주산(主山)이었고 고장흥성(古長興城)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고려 말까지 활용됨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상 칼바위 아래 잔뫼(觴山)는 지형이 평평하여 군사를 조련하는 훈련장이며 마상훈련(馬上訓練)을 하였다고 傳해지고 있다.
현재 벅수골~상잠산 하골지역 능선으로 죽교리와 경계되고, 정상 칼바위 능선을 경계로 하여 내동 뒤는 지정리(지북)와 계춘동 뒤는 송촌리(송현)와 구분 경계되고 있다.
●회주고성(懷州古城)
이 성(城)은 상잠산성과 방촌리를 에워싸고 있는 석성(石城)이다. 원래의 성은 천관산에서 남(南)으로 수동저수지까지 북(北)으로는 죽교리와 동(東)으로는 지정리 지북마을 까지 이어져 상잠산성과 연결된 것으로 확인된다.
천관산자락 계양봉(325m) 능선에서 시작하여 호동(壺洞)마을 뒤의 망치봉(83m)을 거쳐 망치등(望峙嶝)과 벅수골로 이어져 상잠산성까지 약 2km에 걸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가장 양호하게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2m 내외이고, 폭은 4m 정도이다.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석장승이 있는 곳이 회주고성의 북쪽 성문(城門)터로, 남쪽 성문(城門)초소는 삼산마을 초입 고개 도득막등(嶝)에 위치함이 傳해진다. 또한 망치등(嶝) 에서는 남해와 득량만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초소형태의 돌담이 많이 남아 있다. 성(城)의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265년(원종 6) 장흥부(長興府)에서 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되었을 당시를 전후(前後)하여 쌓은 것으로 추정한다.
<회주고성터 표지석>
현재 회주고성 밖에 위치한 천관산 장천재 입구 주차장~ 옥당저수지~ 망치등 성터 밖~진서대장군 석장승 밖은 행정상 번지는 관산읍 방촌리가 아닌 관산읍 옥당리에 해당된다. 이어진 상잠산의 성터를 기준하여 밖으로는 관산읍 죽교리 산 번지에 해당되면서 경계가 된다. 벅수골 주변을 북문동(北門洞)으로, 상잠산 한쪽에는 당대 군부대가 진(陳)을 쳐 머무름을 알 수 있는 〃둔군동(屯軍洞)〃지명이 현재까지 각각 불리고 있다.
상잠산성과, 회주고성은 서쪽 천관산~북쪽 벅수골~동쪽 상잠산~남쪽 삼산 도득막등(嶝)으로 이어져 회주목(懷州牧) 치소를 둘러싸 방어하는 중요한 산성 기능을 한 것으로 사료된다. 요즘은 산림이 우거져 방촌마을에서 조망되지 않으나 지난날에는 산에서 나무를 채취해서 땔감으로 사용하여 산성을 어렵푸시 볼 수 있었다. 지난 유년시절 여름철에 소 풀 먹이러 다녔던 망치등(공동묘지), 상잠산의 둔군동, 하골재(방촌마을과 지북마을 간을 왕래했던 산길의 정상 일대) 주변에서 회주고성과 상잠산성 터에 일렬의 담 형태로 축성된 성터와 무너진 산성 돌 사이에서 깨어진 도자기, 옹기 등을 많이 보았었다. 그때 성터 주변에 고소한 〃깨금〃과 신맛의 〃시금〃 열매를 따 먹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잡목이 우거져 두 곳의 산성 터를 접근이 쉽지 않아 답사하지 못해 방촌마을에서 조망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栢江
참고문헌 : 장흥 방촌·관산읍지
자문 : 德雲(위황량)
회주고성은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위한 자주의 상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