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7 21:34
2009년 10월 11일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강포리 삼흥포도농원에서 "관북 장흥 위씨 망향비"제막식이 열렸다. 낮의 기온이 25도를 오르내리는 매우 청명한 날씨였다. 이 자리에는 서울에서 온 관북출신 등의 종친과 장흥에서 온 종친 39명은 물론 여수, 대구에서 온 종친 등 100여명이 참여하여 행사를 지켜봤다.
제막된 망향비는 현 관북종친회 재균(載均)회장이 2007년 10월 자신의 구상을 종친들에게 소개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입비작업을 벌여 2008년 8월 6일 길이 5, 2미터, 너비 3미터, 두께 0,9미터에 좌대 등을 포함하면 무게는 자그만치 14톤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비를 세운 것이다.
이날 제막식은 낮 12시를 약간 넘어 시작됐다. 개회선언, 국민의례, 내빈소개, 망향비제막, 건립경과보고, 회장인사, 내빈축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재균회장은 6. 25 전쟁 때 고작 6세였는데 형과 함께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미군의 수송선을 타고 거제도로 피난하여 모진 고생을 했음을 회고하며 울먹여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행사는 "관북 종인의 노래"이다. 위재형 작사, 황규렴 작곡한 것을 유서연양이 노래했다. 1절만 소개하면 "개마고원 우상동에 달이 비추니, 실개천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네, 겨레돈목 제일이란 큰 뜻 세우고, 메마른 땅 일궈가며 사람 기르니, 관북의 호족이라 그 이름 떨치네, 어서가자 미래로 하늘이 드높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성씨의 일개파에 파가(派歌)가 있다는 얘기를 접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대한민국 장흥 위씨도 성가(姓歌)가 아직 없다. 그런데 관북파에서 자신들의 파가를 지어 반포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남쪽 종인들이 겪지 못한 피난의 쓰라린 경험에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
도문회는 참으로 의미 있는 격려를 했다. 도문중 시절이나 도문회로 개편된 이후 장흥 본향의 종친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산하 파의 행사에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관북파의 망향비 제막식을 축하해줘야 할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거의 70대 이상의 어른들이 2400리 길을 왕복한 것은 피가 물보다 진함을 말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