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7 16:59
목정균씨 반갑습니다. 귀하는 8학사 후손 가운데 처음으로 위가의 홈피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최초의 손님이라 반가운 것입니다. 질문에 제가 알고 있는 대로 몇 마디 말씀드립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8학사 후손들은 종씨였습니다. 적어도 1970년대 이전에는 그렇게 느끼고 살았습니다. 예전에은 서로 혼인까지 안하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기씨, 봉씨가 시조의 유래를 바꾸고 은씨가 입국시기를 150년 정도 늦게 잡은 사실로 족보를 만들면서 그 관계가 서먹하게 됐습니다.
즉 기씨는 중국 고대 하은주(夏殷周)의 기만을 백제를 창건한 온조로 시조를 삼고, 봉씨는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돌 바구니에 담겨 바다에 떠있는 아이를 구했는데 성장해 봉우로 사성(賜姓)됐다는 사연을 믿고 있답니다. 그리고 은씨는 동래시기를 다른 성씨와 다르게 뒤로 잡아 궤를 이탈하고 있습니다.
8학사 후손은 1970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동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홍씨가 주축이 돼 8학사의 입국장소인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고당성(古唐城)에 8학사를 상징해서 8면시비를 세우려고 각 성씨에게 참여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위씨만 도울 뿐 나머지 성씨가 불참하자 홍씨 위주의 비를 비우고 말았다고 합니다.
한편 위가와 목씨는 8학사 중에서도 더 가까운 사이입니다. 왜냐하면 1370연년 전 8학사께서 자신들의 고국인 중국 산동성을 떠나 배로 고당성항구를 거쳐 신라 땅에 입국합니다. 그 때 두 명이 한조가 되어 생활했다 합니다. 그런데 목충 시조와 위경 시조가 한조로 육교동에서 지냈다니 보통 사이가 아니지요. 그런 연유로 더 반가운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