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科經歷으로 丙子亂을 當하여 東宮이 入審時에 武臣이 皆不應命 커늘 公이 獨請曰負韈盡心 하야 血塗遼野도 不辭라하고 遂入審陽翊衛하되 備經辛楚 하고 特除谷城縣監하다. 墓는 장흥군 남면이다.(기묘보 1卷 p117 면주 내용)
1. 주요행장 (1999년 己卯譜 지장록 p103 존재공 작성 충의록 내용) : 도총(武科)경력으로 병자호란(1636~1637)을 당하여 1)東宮이 심양으로 들어가는데 2)익위사(翊衛司) 관원을 모두 무신만 뽑아서 任命하니 무신이 모두 분이 나서 성을 내어 말하기를 평상시에는 3)桂坊의 좋은 벼슬은 문관이 모두 탈취(奪取)하고 이제 멀리 사지에 가는 때를 당하여서는 도리어 우리들을 가게 한다고 하면서 명령에 응하지 아니하니 公이 홀로 큰소리로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비록 임금의 명령이 없더라도 마땅히 앞을 다투어 자청해야 하거늘 항차 좋은 벼슬을 주어서 명령하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가? 臣은 말고삐를 잡고 마음을 다해 도와 護衛할 것을 청하며 비록 피를 요동 땅에 바를지라도 사양하지 않겠노라”하니 듣는 자들이 모두 장하게 여기었다. 좌익위로써 심양에 들어가 온갖 고초를 겪고 東宮을 모시고 돌아옴에 고향과 가까운 地方官으로 임명하여 곡성현감으로 부임한지 얼마 않되 병으로 終하였다.1)동궁 : 왕세자 소현세자를 말한다.2)익위사(翊衛司) : 왕세자(소현세자)의 侍衛를 맡은 관원3)계방(桂坊) : 동궁이 있는 곳, 왕세자 익위사의 별칭
2.필자의 의문점 : 公의 행장과 충의록에는 생졸년 수록이 되어 있지 않아 주변 선조들의 태생을 확인 해본다.
1)기묘보에서는 21세의 6촌 재종형제들은 公을 포함하여 모두 12명(3명 后无)으로 최고 연장자는 판사공(휘 德弘)으로 생년이 1537년이고, 최연소는 안항공(휘 德厚)로 1556년 태생이다. 나머지 7명은 그 사이에 태생하였다.
2)22(廷字)세 公의 子(휘 後徵, 생졸년 미상)를 포함한 재종질(7촌)은 17명으로 이중 최고 연장은 판사공의 장자인 廷望으로 1558년생이고, 최연소는 주부공(휘 德男)의 子 음선무랑공(휘 廷佑)으로 1598년 태생이다. 나머지 15명은 그사이에 태생하였다.
3)公과 삼종(8촌)에 해당되는 행원문중 내 21세(大字) 경우는 17분(9분 后无)이다. 최고 연장은 괴봉공(휘 大用)의 생년이 1530년이고, 최연소는 부장공(휘 大洪)으로 1564년 태생이다. 나머지 6명은 그 사이에 태생하였다.
4)22세의 경우 9명으로 최고 연장은 괴봉공의 장자인 수정당공(휘 弘宙)으로 1558년 태생이고, 최연소는 영장공(휘 大經)의 子 남은공(휘 孝徵)으로 1603년 태생이다. 나머지 7명은 그사이에 태생하였다.
5)장천문중과 행원문중 산하 종중 내 21~22세 선조들의 태생 시기가 형제간에 년차가 있으나 일정하다. 公은 관산파 장천문중 종파(큰집) 21세손이다. 당대에는 연령 20세 안팎이면 혼례를 하였다. 부친이신 20세 仁遜公이(1500년 안팎 추정) 公을 늦게 보았다고 하더라도 조카들에 해당되는 22세 선조의 연령 때에 태생하여 병자호란 종료(1637년) 후 소현세자를 시위하고 심양에 다녀왔는지? 생년과 행장에 대해 의문점이 많아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다.
6)병자호란과 관련 功을 세운 청금공(22세 휘 廷勳, 1578~1652), 병조참판공(22세 휘 廷喆, 1583~1657), 반계공(22세 휘 廷鳴, 1589~1640), 문화현령공(23세 휘 山寶, 1593~1656)이 있다.
3.새로운 사실 : 필자는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려고 최근 전남 곡성군(문화관광과)에 곡성현감공의 역임을 질의하여 위문 내 면주, 충의록과 다른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곡성현감은 1487~1944간 266명이 역임하였고, 이중 公은 제 38대(1565년 1월~7월) 현감을 역임하였다.(37대 전임자 : 1563년 8월~1564년 12월, 39대 후임자 : 1565년 9월~1566년 12월) 곡성군에서 필자에게 송부한 “곡성군지”는 1956년 곡성군노인회에서 편집 발행한 것이다.
곡성군지 우측 상단 2번째에 “魏大成”의 인명과 품계 봉렬(奉列, 정4품 하)이 확인된다.
또한 역대 옥과현감은 1540년~1906년간 165명이 역임하였다. 이중 존재공은 제 117대 현감을 역임하였다. 우측 하단 첫번째에 존재공 “魏伯珪”의 인명과 1796년 3월~1797년 윤 6월의 재임기간이 확인된다.
출전 국립중앙도서관(古朝 26-73) 萬曆 13년 乙酉 8월 24일 사마망목(司馬榜目)에 의하면 1585년(宣祖18)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에서 위후징(魏後徵)이 진사(進士) 3등(三等) 49위로 합격함이 확인된다. 위후징의 字는 훈경(勳卿), 생년은 1553년(명종8), 본관은 장흥(長興), 거주는 보성(寶城)이며, 부(父)는 전 곡성현감(前 谷城縣監 ) 대성(魏大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하면 公의 생년은 1525~1530년 안팎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4.필자 추정 : 곡성현감공의 증조부는 18세 습독공(由亨)의 면주에 생졸년은 기록되지 않으나, 1450~1530년 추정한다. 조부에는 19세 長子 晉遜 1471~, 次子 晉同 1474~, 三子 晉寶 1477~, 각각 면주에 생졸년 기록이 없어 습독공과 四子 晉秀, 五子 晉賢의 생년에 맞춰 추정하였다. 四子 晉秀 1480~1564(85세), 五子 晉賢 1483~1564(82세)은 면주에 생졸년이 기록되어 있으며 비교적 장수하였다. 조부 19세 晉寶의 생년을 1477년, 부 20세 仁遜의 생년을 1500년 안팎, 21세 곡성현감공 大成의 생년을 1525~1530년 안팎으로 생년을 각각 추정하였다. 아들 後徵의 생년은 1553년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公이 1565년 1월~7월 곡성현감 재임 중, 40대 초중반에 병환으로 타계함을 추정해본다. 습독공과 친분 있는 남추강(효은)의 생졸년은 1454~1492년이며, 영천자(신잠)는 생졸년이 1491~1554년이다. 습독공과 남추강은 비슷한 연령으로 추정되고 산정재(지금의 백산재)에서 수창(酬唱) 시(詩)를 남겼다. 영천자는 습독공과는 연령차가 있으나, 1521년 장흥 유배시 산정재에서 만나 수창함을 추정해본다.
5.결론 : 21세 대성의 제 38대 곡성현감 역임 사실을 통해 대동보(大同譜) 면주(面註)에 기록 되지 않은 생졸년을 추정 할 수 있다. 곡성현감공과 존재공(1727~1798)의 연령차는 200년 안팎으로 추정된다. 위문 내 청나라 수도 심양에 다녀온 선조는 병조참판공(廷喆)과 문화현령공(山寶) 2명이다. 이중 병조참판공은 1631년 3월 19~4월 30일간 회답사(回答使)를 사행(使行)하고 "심양왕환일기"를 남겼다. 병자호란 때에는 영흥대도호부사 겸 함경남도방어사에 재직하고 있었다.
문화현령공은 병자호란 때 선전관(宣傳官)으로 왕을 호가(扈駕)와 비변사 낭청으로 청나라와의 화친(和親) 사신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동궁(東宮 소현세자)이 심양에 불모로 갈 때도 호종했다. 1640년 문화현령에 임명되엇다. 公의 현존 교지 8매 중, 1637년~1640년간에는 마지막 교지인 문화현령 등 관직 교지 5매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소현세자의 청나라 심양 호종 출발 및 교대로 귀국함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확인되고 있는 등 곡성현감공의 충의록 내용과 유사하다. 곡성현감공의 새로운 사실과 존재공의 충의록 내용을 재고증을 통해 선대의 바른 행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글·사진 : 씨족문화연구위원 栢江 위성록
2017.09.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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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씨족문화연구위원의 연구에 찬사를 보냅니다. 문중역사가 새로워지네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