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산 위정철 -
1. 祭祀 및 時祭와 孝親思想
국가와 민족마다
美風良俗이 있기 마련이다. 지구상에 풍속이 없는 나라와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 미풍양속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대변한다.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할 정도의 양속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게는 수 백년 아니면 수 천년의 세월을 거쳐서 비로소 자리를 잡은
풍속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유의 미풍량속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와 민족을 대표 할만 미풍은 과연 무엇인가. 물론 곰곰이 따져보면 여러 가지의 장점을 내세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역시 孝親思想이라고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효친사상을 으뜸 良俗으로 치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의 효친사상은 어버이를 섬기는 사상이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버이가 이승에 계실 때나 저승에 가셨어도 정성을 다해 섬기는 사상이다.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고, 시묘(侍墓) 살 이를 했던 전통도 孝親사상에서 비롯된 풍속이리라. 따라서 제사나 시제는 어버이 곧 자신의 조상을 기리며 섬기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2. 合祭와 壇所祭享의 增價趨勢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게
없다. 제사나 시제도 예외는 아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면 영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법과 제도 또한 바뀌는 게 역사요
세상이다. 비근한 예로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을 보자. 해방 전후만 하더라도 감히 남녀평등(男女平等)이란 말을 액면대로 믿는 사람은
있었는가.
그러나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하고 있다. 남녀평등은 여자와 남자가 겸상을 하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여성 상위시대란 말이 유행되기도 했으니 조선시대를 사셨던 어른들께서 보고 들으시면 자다가도 깜짝 놀라시지 않겠는가. 남녀평등만 아니라 그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선 명절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자. 설이나 추석이면 서울 등 객지에서 살던 자식들이 천리 길을 마다 않고 고향을 찾았다. 지금도 어버이를 섬기려는 전통을 꿋꿋하게 이어 내려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의 귀향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부모가 서울을 찾아가는‘逆歸鄕’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제사와 시제의 풍속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4代 奉祀라 하여 한 집에서 여러 위(位)의 제사를 기일에 맞춰 꼬박꼬박 지낸 게 관례였다. 그런데 근래 들어 너무 번거롭다는 이유로 조상들의 제사를 합해서 한 날 지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시제도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묘지에서 지냈으나 한 장소에 설단(設壇)해서 모시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3. 先祖의 壇所와 祠宇 祭享의 事例
우리 장흥 위씨
각 문중에서도 단소 제향이 늘고 있다. 단소 제향은 실묘(失墓)를 했을 경우에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시제의 한 방법이다. 요즘에는 후손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先塋을 찾아가지 않고 한꺼번에 시제를 모시기 위한 방법으로 단소제향을 올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경우는
사우를 짓기에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편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그리고 사우 제향은 제각을 지어서 모시는 제사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魏氏 문중에서는 어느 선조를 壇所와 祭閣에서 모시는지 알아보자. 물론 이 자료는 불충분하다. 대동보에서 대충 확인 한 것이니 실제와 다를 수 있으니 이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1) 壇所 祭享
① 蓮花里 壇所 (和順郡 梨陽面 蓮花里 山 35) · 15世 諱 德龍 · 16世 諱 自溫 · 17世 諱 宗亨 · 19世 諱 公弼 · 20世 諱 仁傑 |
② 茶田嶝壇所 (長興郡 長興邑 平和里 山 69) · 16世 諱 自良 · 17世 諱 宗復 · 18世 諱 由亨 |
③ 東山嶝壇所 (長興郡 冠山邑 新基 東山嶝) · 20世 諱 防 (外 後孫15位) |
④ 望峙嶝壇所 (長興郡 冠山邑 傍村里 望峙嶝 135) · 21世 諱 德和 (外 後孫 40位) |
2) 祠宇 祭享 事例
① 霞山祠 (長興郡 長興邑 平和里 69) · 始祖 懷州君 諱 鏡 · 中祖 大角干 諱 菖珠 · 五世 高麗太保 忠烈公 繼廷 · 十四世 判事 諱 충 · 十五世 通善郎 諱 悳龍 |
② 沙月齊 (長興郡 蓉山面 桂山里) · 十六世 生員公 諱 自恭, 配位 白氏 |
③長川齊 (長興郡 冠山邑 玉堂里 山 92) · 十九世 宜人 平山 申氏 |
④ 雲谷齊 (長興郡 蓉山面 鳳凰洞) · 十九世 諱 晉秀 |
⑤ 雲山齊 (長興郡 冠山邑 農安里 畵雲洞) · 二十一世 濟用監 判官 諱 德厚 |
⑥ 敬慕劑 (麗水市 栗村面 鳳頭里) · 二十一世 營將公 諱 大經 |
⑦ 二必齊 (康津郡 郡東面 平德里) · 二十一世 直長公 諱 大方 |
⑧ 畵雲齊 (長興郡 冠山邑 農安里 畵雲洞) · 二十二世 靜養齊公 廷赫 |
⑨ 竹川祠 (冠山邑 竹橋里) · 二十一世 參議公 諱 德毅 · 二十一世 參議公 諱 德元 · 二十一世 判書公 諱 德和 · 二十二世 都事公 諱 廷勳 · 二十二世 參判公 諱 廷喆 · 二十二世 磻溪公 諱 廷鳴 · 二十六世 存齊公 諱 伯珪 |
⑩ 石川祠 (長興邑 杏園里) · 二十一世 魁峰公 諱 大用 · 二十一世 水使公 諱 大器 · 二十一世 營將公 諱 大經 · 二十二世 縣監公 諱 舜廷 · 二十三世 縣令公 諱 山寶 · 二十三世 縣監公 諱 廷寶 · 二十四世 望西窩公 諱 天相 · 二十六世 折衝將軍公 諱 壽徵 |
⑪ 茶山祠 (長興郡 冠山邑 傍村里 茶山嶝) · 二十六世 存齊公 伯珪 |
⑫ 著存閣 (長興郡 夫山面 基洞里) · 二十一世 雲巖公 諱 德寬과 後孫(183本 391位) |
⑬ 冠山齊 (慶北 金泉市 南面 雲谷里) · 二十一世 部將公 諱 大洪 |
⑭ 泉川祠 (慶北 靑松郡 縣西面 泉川里) · 關北 三十一世 諱 大壽 |
3) 祭祀의 衡平性 缺如와 代案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후손들이 드리는 祭祀는 조상에 따라 형평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 어떤 조상의 경우는 1년에 5~6 차례에 걸쳐 제사를 모신다. 물론 인물이 출중해서 다른 문중의 사우에서 지낸 제사를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선조가 계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자랑이요 긍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엄연히 우리의 선조임에도 불구하고 1년에 제사 한번 드리지 않는 조상이 계신다. 2세 澾(門下承宜官察御使), 3세 原補(中郞將), 4세 耆老(太保門下侍郞 同 平章事), 6세 紹(戶部原外郞), 7세 文凱(平陽郡事), 8세 克謙(右直諫), 9세 景孝(門下評理), 10세 溫(門下侍中 同 平章事), 11세 仁鑑(戶部尙書), 12세 脩(?城軍事), 13세 潤琦(龍虎將軍) 등이 그 분들이다.
도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墓所를 잃었거나 알지 못해서 그런가. 그도 타당한 이유라 할 수 없다. 옛 어른들께서도 묘가 없는 始祖公과 14세 判事公의 제사를 5세 忠烈公 齊의 東便에 設壇해서 지냈다. 근세에 와서도 中始祖公을 비롯 8位의 先祖들을 사우나 단소를 만들어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유독 上系 11위의 조상들께는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은 무슨 緣故인가. 혹시 족보상에는 세계의 조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認定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인가. 그 것도 저것도 아니면 제사를 지내기가 버거워 그런가. 아니면 문중의 임원이나 어른들께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해서 빚어진 현상인가.
상계의 조상들에게 어떤 형식이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후손으로써의 도리를 다 했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합당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愚見일지 모르나 霞山祠에서는 기왕에 5현조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11위의 位牌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만일 그것이 어렵다면 단소를 만든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즉 茶山嶝 단소에서는 현재 16세 諱 自良, 17세 諱 宗復, 18세 諱 由亨 등 3公의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함께 모시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단소를 확장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는데 약간의 비용이 들어가지만 큰돈이 소요될 대사업은 아니다.
세상은 격변하고 있다. 조상들에 대한 奉祀정신도 나날이 쇠퇴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전국의 여러 姓氏들은 위선사업에 문중의 힘을 쏟고 있다. 우리 문중도 그 동안 적잖은 일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나 상계의 선조들에게 제사 드리는 도리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다. 족보상의 조상에게 상응한 대접을 하지 않으면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나옴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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