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위씨 종친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방한 일정이 5월 6일로 모두 성료되었다. 기원전 661년 위필만公을 시조로 하는 중국위씨는 중국에 8백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장흥위씨의 뿌리이다. 종친 11명은 이번 4박5일 (5/2~6)의 방한을 계기로 실질적,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지길 희망했다.
서울의 환영만찬과 상견례에 이어 장흥탐방 (정남진, 방촌 유물기념관, 존재좌상, 시조공 사적비, 충렬공 신도비, 회주사 백산재), 선물교환 행사, 중국위씨 역사와 유적지에 대한 질의응답, 회주대제 참배 등 빡빡한 일정을 무난히 소화했다.
야운 위이환 씨족문화연구위원은 [이번 회주사대제는 중국위씨 하남성 위씨종친회(회장 魏杰)가 참여했다. 하남성은 중국위씨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한국위씨는 2012년부터 작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중국의 위씨 유적지 탐방을 실시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위씨와 자연스럽게 교류가 있어왔다. 그러다가 장흥위씨 대종회에서 초청형식으로 중국위씨 한국답방이 성사되었다. 중국위씨의 장흥방문은 위자형 대종회장의 중국위씨와 교류에 대한 노력과 여망이 결실로 만들어진 셈이다. 아헌관으로 제향에 직접 참여한 웨이제이(魏杰) 중국위씨 한국방문단 회장은 "장엄하고 격식이 있었다. 위씨문화를 표출했다."며 제례 문화 느낌을 밝혔다.]라고 평가했다.
중국측에서는 위씨옥패, 위씨로고, 위씨역사서, 서예품, 전통술 등을 선물했고 회주대제에 향촉대금(5십만원)도 헌성했다. 한국측에서는 도문회가 식사와 장흥 숙박비 제공 및 기념타올(110개)을, 대종회에서는 식대와 숙박비를 비롯 선물(화장품, 김세트, 음료세트, 종보, 서예작품) 등을 전달했다.
이밖에 버스제공(위옥량), 고액헌성(위근량, 위성구, 위이언), 서예작품(위황량, 위경애), 물품(위등, 위영준), 조식(위성식), 통역(위성빈) 등도 이어졌다.
위화이씨(1957년)는 한국위씨의 우수한 씨족문화에 감탄하며 한국종친들의 환대에 감사를 전했다. 아울러 ◇통신개통, ◇기업가회 창설, ◇대학생 교류를 3대 추진업무로 제시했다. 이에 위자형 회장은 세 가지 제안을 모두 수용하고 쉬운 것부터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풀어가자고 답변했다.
소통과 글로발이라는 두 키워드는 최근 떠오른 장흥위씨 문중의 모토이며 지향점이다. 이번 중국위씨 방한을 계기로 서기 638년 장흥위씨 씨족사가 기원전 661년 시작한 2,680년 중국위씨 역사와 함께 연구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하남성 위성문화연구회''와 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소''의 공동연구분야는 연구서적 발행, 연구세미나 개최, 魏姓 유적지 탐사 및 탐방코스개발 등으로 다양하다.
중국위씨의 요청대로 《한, 중 위씨기업가회》 결성이나 《한, 중 위씨대학생 교류회》발족도 참신한 견해이다. 차제에 두 나라 위씨는 방문을 정례화하여 서로 윈윈하는 미래가 담보되어야 한다. 문중행사 때 친선방문이나 하남성 위씨 세거지와 장흥위씨 문중과 자매결연(姊妹結緣)추진 등도 항구적 교류의 디딤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벽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