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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월파 (沙月派)

계보 : 자공(自恭)─종립(宗立)─서(瑞)─석정(碩貞)─량(良)
         중준(重俊)─상(祥)─방길(方吉)─공일(公逸)─충인(忠仁)─국한(國翰)
                                           창길(昌吉)─공준(公濬)─성(誠)─사진(士進)

●세거지 : 장흥군 용산면 계산(桂山)  (대동보 6권p.66∼102)
파조 중준(重俊·1498∼1549)은 경천공과는 4촌 형제간이며, 덕원부사(德源府使)을 지냈다. 그의 증손 중 공달(公達)과 공준(公濬)이 임진왜란 때 참전,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공달의 후손은 손자 대에 손이 끊겼다. 그러니까 5명의 24세손이 10명의 아들을 낳았으나 고작 3명만이 후손을 둘 만큼 후손이 귀한 집안이 됐다.


후손의 세거지도 일정하지 않다. 26세 국한(國翰)의 후손은 계산과 평화·모산(茅山) 등에서 살았다. 그런가하면 26세 사진(士進)의 후손은 강진군 옴천면에서 29세 예징(禮徵)대까지 살다가 30세 성민(聖玟)은 다시 관산으로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이나 미단(未單)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각(사월재)를 이루어낸 업적은 가히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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