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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훈도공파 (訓導公派)

계보 : 자량(自良)─종복(宗復)─유형(由亨)─진수(晉秀)─방(箚)
 덕남(德男)─정우(廷佑)─동호(東瑚)─세홍(世弘)─명혁(命赫)─백현(伯賢)

쪾세거지 : ① 고흥군 포두면 옥강리
                ②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신기(新基)

파조는 덕남(德男)이다. 공은 19세 진수의 다섯째 아들인 훈도공 방(箚·1532∼1592?)의 아들이다. 공은 임란이 일어나기 이전에 도천(道薦)으로 흥양(興陽) 즉 고흥 두원(斗院)고을 훈도로 있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병 100여명을 인솔하고 이순신장군을 찾아가 참전을 자원한다. 충무공은 마침 국도(國島) 수비가 허술 하자 그에게 그곳을 방어하도록 지시했다.


공은 바로 국도로 돌아와 수비에 임했다. 그런데 한산도 전투에서 패한 왜군이 퇴각하면서 국도로 달라 들어 전투가 벌어졌다. 공은 흥양현의 군사와 가병을 독려하며 분전했으나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아버지의 전사소식을 들은 아들은 시체더미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 인근의 언덕에 장사하고 시묘했다. 어사 유몽인이 사연을 듣고 충신 집에 효자가 났다며 왕에게 포계를 올려 말 백필을 하사했다. 그 후 말을 기른 장소를 ‘마치 골’이라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덕남은 아버지가 전사한 지역에서 정착한다. 후손들은 조정에서 하사 받은 말을 기르며 26세(伯賢)까지 살았으며, 중간에 화재로 일체의 소장문서를 잃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27세 도흠(道欽)대부터 170여년 동안 정착했던 고흥을 등지고 관산 방촌으로 돌아왔다. 대개의 경우 자손 중 일부가 남을 수도 있으나 훈도공 후손의 경우는 모두가 U턴한 흔치 않은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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