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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매사에 만족하며 살기 어렵다. 문중에 대한 종인들의 인식 또한 마찬가지다. 이번 자료수집 여행에서는 핏줄의 정이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체험한 반면 외지의 종친들이 장흥 문중에 가지고 있는 불만을 기탄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소리가 비록 소수의 소리라 지만 문중을 이끌어 가는 임원들은 타산지석으로 여겨야 한다.


첫째, 제향에 참여한 외지종인들에 대한 대접이 지역별로 달랐다는 불만이다. K지역 종인들은 어느 해인가 버스를 전세 내어 하산사 5현조 제향에 왔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 종인들에게는 여관비를 보조해주면서 자기들에게는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목격한 이후에는 지금까지 제향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당시의 섭섭함을 토로했다.
둘째, 문중 어른들과 장흥 종친들의 고자세에 대한 불만이다. 타지 종인들의 공통된 불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혹시 시제에 참여하거나 대동보 수단 등의 일로 문중의 임원을 만나면 하나같이 ‘대대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사예절이나 족보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는 타지 종인들을 주눅들게 한다.


셋째, 패거리 파벌의식이다. 하산사나 장천제 등 여러 곳의 시제에 참여해 보지 않은 종인들은 심각할 정도로 소외감을 갖게 된다. 그 자리에 참여한 대부분의 어른들이 평소 자기 파나 아는 종인끼리만 챙기고 대화하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 종인은 장흥 일가들이 관북파 등 다른 지역 다른 파를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넷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 전 종친회장은 대종회의 요구로 선조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하계수련회에 대상 학생을 뽑아 보냈다. 그런데 다음 해 줄지 알았던 혜택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한 지역의 종친회 책임자가 순진한 학생들을 속인 꼴이 됐으니 체면이 어떻게 되느냐는 불만이다.  


이런 지적과 불평은 극히 일부 종인들의 지적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몇 사람의 불평일지라도 결코 관과할 사항은 아니다. 조상의 제사에 참배하고자 오는 외지의 손님을 차별대우했다는 것은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그 동안 문중에서 신경을 썼다고는 하나 손이 미치지 못했거나 신경을 쓰지 않아 비롯된 현상 일 수 있다.


그렇다면 시정은 빠를수록 좋다. 숫자가 적은 장흥 위씨들이 이런저런 불만으로 조상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우선 하산사 제향 우리로써는 연중 가장 큰 행사인 만큼 보다 조직적으로 대처해야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도문중의 임원에게만 맡기면 마음은 있어도 손이 딸려 여기저기 소홀해질 수 있다.


따라서 임시 기구를 만들어 업무를 분장시켜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가령 외지 손님을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어 대응한다면 효율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행사는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 협의에서는 당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토박이 종인들의 친절함이 어느 덕목보다 중요하다. 외지에서 살고 있기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다시 오고 싶겠는가. 실상은 그런데 이에 대한 대안은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그들이 소외감을 갖지 않고 종친의 따뜻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토박이 종인들의 친절과 겸손으로 풀어야 한다.


다른 하나의 방안도 있다. 즉 하산사 참배객 중 외지에서 온 손님과 처음으로 온 손님을 사전에 접수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제사의 진행요령과 물 한잔이라도 따뜻하게 대접하는 성의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내년에도 그 내년에도 반드시 할아버지의 제향에 빠지지 않고 찾아오리라고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대표적 불만은 이른 바 홀기(笏記)에 있다. 홀기는 제사의 차례를 한문식으로 선창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내용과 뜻을 아는 젊은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알기 쉽게 하거나 해설과 병행해서 진행할 생각을 갖고있지 않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조상의 제사가 번거로운 행사로 인식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사 때 보기 싫은 모습은 더 있다. 한창 진설을 하고 있는데 앉아서 호령호령하는 종인들을 볼 수 있다. 예법에 대해 자신이 있어서 그러리라 생각되지만 앉아서 호령치지 말고 앞에 나가 모범을 보이는 게 오히려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닌가. 별로 대단찮은 지식을 뽐내기 위해 고래고래 호령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다.    

  
현장의 소리를 전한 것은 문중의 불란을 일으키자는 의도는 전혀 없다. 스스로 많이 알고 잘한다고 해도 인간이기에 실수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여러 종인들의 불만을 새겨들어서 보다 합리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문중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잘못과 실수를 바로잡은 것은 모두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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