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

사이트검색

씨족문화연구소가 출범한지 거의 4개월 만인 2003년 10월 6일 자형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10월 20일부터 경상도와 강원도를 돌자는 제의였다. 그 뒤로도 방문지역은 물론 둘이서 만날 시간과 장소 등에 대해 몇 차례 전화협의를 가졌다. 그리고 소요될 경비는 모두 당신께서 부담하는 문제에서 교통수단에 이르기까지 상의하였으니 통화는 수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10월 20일 첫 방문지인 김천버스터미널에서 12시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전화협의를 모두 마쳤다.        

1), 경북·강원지역 종친과의 만남= 드디어 약속한 20일이 밝았다. 경상북도 김천은 난 생 처음으로 가보게 된다. 초행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정표를 보고가면 못 찾을 리 없건만 혹시 길을 잘못 들었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질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니 시간적 여유를 갖기 위해 미리미리 대비해야 했다.


호남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김천시내 시외버스터미널을 물어 찾았다. 휴대전화를 통해 자형족장께서 미리 도착해 계신 것을 확인하고 만났다. 1차 방문지는 남면 운곡리. 가는 길은 물어 차를 몰았다. 얼마쯤 후에 남면 도로변의 한 음식점에 들러 성신(聖臣) 종원에게 연락하니 그는 다른 종원과 함께 바로 달려오셨다.


마침 점심때가 돼서 함께 식사를 했다. 자형족장께서 식대를 내려하니 성신 종원이 말리면서 자신이 지불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위씨의 보금자리 운곡1리로 갔다. 성신 종원은 우리를 입향조(諱 大洪)의 사당인 관산사(冠山祠)로 안내했다. 관산이라는 글씨만 보아도 이곳 종인들이 장흥 위씨임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산사를 참배한 뒤 곧 성신종원댁으로 갔다. 얼마 전에 아들이 지었다는 주택은 2층 양옥으로 일대에서 가장 큰집처럼 보였다. 거실에 앉아 담소를 하는 사이에 이 댁 안방 마님은 커피를 끓어주며 반갑게 맞았다. 대충 얘기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나서려 하자 여행 중에 먹으라며 창고에서 포도 한 박스를 주기도 했다.


운곡을 떠나 청송(靑松)으로 달렸다. 예천에도 일가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통과하기로 했다. 청송은 생각보다 멀었다. 예천과 안동을 거쳐 청송읍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일가들이 사는 곳은 현서면(縣西面)이다. 그 곳을 가려면 50분 가량 걸린다고 한다. 읍내에 숙소를 잡아놓고 늦었지만 가보기로 했다.


날씨는 저물어 가고 목적지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도중에 기름을 넣고 달리고 달렸다. 구불구불한 첩첩산중의 도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가까스로 찾았지만 목적지를 벗어나 다시 U턴했다.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밭 사이의 도로를 따라 가니 천천리(泉川里)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운권(雲權,68), 광길(光吉,64) 두 종원이 나오셔서 맞았다.
두 분이 안내한 곳도 역시 사우였다. 2층 콘크리트 건물인 흥문재(興門齋)는 20여년 전에 입향조(諱 大壽)의 제향을 모시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한식사우만 보다가 콘크리트 사우를 보니 생소하기는 했으나 많지 않은 일가들이 큰 건물을 지은 것은 대단하다. 일가들과 우리는 동네 가게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후 밤늦게 읍내로 돌아왔다.


둘째 날은 관광을 하며 보냈다. 주왕산, 임하댐, 안동댐, 도산서원, 하회마을을 들러보고 오후 5시쯤 단양읍 대명콘도에 들었다. 셋째 날은 강원도 영월군 서면 신천리를 찾아갔다. 도착하니 영석(英錫,71) 어른께서는 우리를 맞기 위해 서울에서 일부러 올라 오셨다, 그는 집안 아저씨인 재련(在鍊,75) 어른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두 분 어른은 우선 점심부터 들 자며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사를 하면서 곡성현감파의 지파가 이곳에 들어와 살게된 과정을 자상하게 들여 주었다. 신천의 일가들은 한 때 60가구나 살만큼 번성했다. 그러나 1936년에 일어난 대수해로 일가들은 살길을 찾아 모두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3집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간의 사연을 일러주었다.


한 곳을 방문하니 하루가 지나갔다. 속초로 가서 일박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일은 인제군과 춘천시를 가야하기 때문이다. 미시령을 넘어 인제군 남면 신남리를 찾아갔다. 만나기로 한 일가를 찾으니 큰어머니께서 돌아가시어 상가에 갔다고 한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해서 조문을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고 어론리 소재 재길(在吉,72) 종인의 상가(喪家)를 방문, 조문했다. 그 자리에서 술에 취한 종인의 시비를 받기도 했다.


다시 춘천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숙소를 잡으려니 마땅한 곳이 없었다. 이곳저곳 수소문하다 느닷없이 강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후에 미리 연락한 재영(在榮)종인과 약속된 식당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저녘 식사를 마치고 다방에서 입향조의 내력과 종친들의 분포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만나 마을을 둘러보자는 약속도 했다.


다음 날 숙소를 나와 강촌의 약속장소로 나갔다. 재영종인은 미리 나오셔서 우리를 맞았다. 함께 23세 인(仁) 할아버지께서 터를 잡으셨다는 남면 발산(鉢山) 부락을 찾아갔다. 할아버지께서  사셨다는 옛 집은 현대식으로 바꿔있었다. 그러나 헛간 채는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어서 고풍스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발산부락을 보고 1차 여정을 끝냈다.

2), 경남·전남 종친과의 만남= 2차 자료수집 대상지역은 경남과 전남 동부지역으로 잡았다. 일정은 2003년 12월 12일부터 2박 3일 정도. 자형족장은 버스를 이용하고 본인은 자가용을 이용, 진주 버스터미널에서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일찍 서둘었으나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좀 과속을 했다. 어렵사리 제시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바로 통영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 도산면 관덕리에 대기(大器) 할아버지의 후손들이 살고있기 때문이다. 이정표에 의지해서 찾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족장께서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한 철수씨가 어디로 가셨는지 안 계셨다. 다른 일가인 정규(正珪,60)를 만났으나 입향조의 유래를 자세히 알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진주시로 발길을 돌렸다. 시내에 거주하고 계시는 정수(正守,73) 종인을 찾아갔다. 그의 자택으로 가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관북파로 35세 휘 익중(益中)선조께서 조선조 말렵 관서에 근무하시다 진주로 전근하여 진양 처녀와 재혼하면서 눌러 살게 됐다고 일러줬다. 우리는 그의 안내로 진양군 평거면 평거리 집성촌을 둘러보았다.


경남에서는 더 이상 가볼 만 곳이 없었다. 당초에는 진주에서 1박한 후 여천으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바로 가기로 했다.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여수시청에 근무하는 우량씨에게 전화를 했다. 일가 중 조상의 내력에 밝은 이를 소개해주고, 숙소를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율촌면사소로 가면 일가가 안내하도록 조치를 취해놨다고 통보해 줬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율촌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우량씨의 부탁을 받은 총무계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잠시 후에 산수리 이장이신 계우씨께서 오신다며 유자차를 대접했다. 그런 사이에 아저씨가 오셨다. 그는 저녘이나 먹자며 근처 식당으로 안내하셨다. 돼지고기 삼겹살로 푸짐하게 배를 채웠다. 그리고 모텔까지 안내하신 후 귀가하셨다.
아저씨는 다음 날 아침 숙박비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근처 봉두리로 안내하신 뒤 떠나셨다. 봉두리에는 상복(尙復,72) 종인 등 3명의 일가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계춘(啓春,72) 댁으로 안내했다. 그분들은 식사도 대접 못했다며 차와 과일을 먹으라고 성화셨다. 마을의 유래에 대해 대화를 마치고 종손댁을 구경했다. 헤어지려는데 종손께서는 촌지봉투를 주셨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보성군청에 근무하는 승환씨를 만나 군내 일가들의 상황을 알아보고 점심까지 대접받았다. 회천면 영천리를 거쳐 강진으로 향했다. 도중에 환(煥,65)과 통화해서 군동면 평덕으로 갔다. 면사무소 근처에서 그를 만나 입향조의 사우인 이필재(二必齊)를 둘러봤다. 입향의 유래 등은 환씨가 처리해 주기로 하고 2차 자료수집 활동을 마쳤다.


3), 장흥 관산·장평 종친과의 만남= 3차 자료수집 대상지역은 위씨의 본산지인 장흥 일원이라   두려울 게 없다. 지리에 밝고, 평소 알만한 얼굴들이 도처에 계시기에 그렇다. 그러나 이번 여정은 단순한 자료수집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성호씨와의 대화와 덕운, 철량씨가 진행하고 있는 자료수집 중간 점검 등에 무게가 실려있다.


2월 28일 오전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자형소장을 만나 중간에 정우씨와 함께 출발했다. 12시를 약간 넘어 부산면 호자리 계사댁으로 갔다. 당신의 서제에서 점심을 들면서 대화가 진행됐다. 화두는 역시 당신의 관심사인 판사공에 대한 고증과 해석에 모아졌다. 서제는 방대한 장서와 부채꼴로 변한 여러 권의 사전류가 귀한 골동품처럼 보였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계사댁을 나와 관산으로 향했다. 얼마 후에 덕운씨댁 2층 서재에 공량, 철량씨 등 6명의 종친이 모여 문중사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저녘도 그 댁에서 먹었다. 준비해간 각 파별 입향조의 간단한 내력을 3부 복사해서 자료수집과 고증을 하는데 참고하도록 족장님과 철량에게 드렸다. 잠은 천관모텔을 이용했다.


다음 날은 장평면을 거쳐 화순군 청풍면의 집성촌을 둘러보기로 했다. 장흥이지만 생소한 곳이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종정(鐘亭)을 찾아갔으나 거주하고 있는 2가구의 일가들은 출타 중이라 만날 수 없었다. 다시 녹량(綠楊)으로 갔다. 그 곳에 갔지만 일가들은 한 집도 남아있지 않았다. 청풍면 신리에도 한 집이 산다지만 만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세 번째 일정을 모두 끝냈다. 가장 많은 소득을 기대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segeji_001.jpg

 

segeji_002.jpg

 

segeji_003.jpg

 

segeji_004.jpg

 

segeji_005.jpg

로그인 정보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