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헌고택 전경>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679번지에 위치한다. 1986. 2. 7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 7호 위성탁 가옥으로 지정된 후 2012. 4. 13 국가 중요 민속문화재 제 270호 "장흥 오헌 고택"으로 지정되었다. 조선후기 원취당공(휘 도순, 1748~1816년)이 처음으로 집터를 잡고 오헌공(휘 계룡, 1870~1948년)에 의해 완성되었다.
<안채> <사랑채>
1918(戊午)년에 안채와 사당이 축조되었고 사랑채는 1923(癸亥)년에 지어졌으며 그 이외의 건물은 그 보다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도 대농(大農) 반가(班家)의 대표적 고택이다. 방촌마을의 대표적인 상류주택으로 안채‧사랑채‧사당‧문간‧연못 등 축조 당시 공간 구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다양한 민속생활사 관련 유물과 자료를 소장하고 있어 지역 양반문화와 향촌 생활사 등의 연구 자료로서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높다. 특히 12代가 연속해서 문집(文集)을 남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원취> <소암>
<호정> <춘파>
<일오헌> <후계>
<호곡> <상산>
사랑채에 (1)원취(願醉), (2)소암(小庵), (3)호산(壺山), (4)춘파(春坡), (5)일오헌(一梧軒), (6)후계(後溪), (7)호곡(壺谷), (8)상산(觴山) 등 당호(堂號) 편액 8개가 소장되어 있다. 이 중 원취당공(휘 도순)과 호산공(휘 하조, 1809~1881)의 당호(堂號) 편액은 낙관(落款)이 없어 글쓴이를 알 수 없다. 소암공(휘 영우, 1786~1857)의 당호(堂號) 편액 글씨는 석촌(윤용구)이 썼다. 춘파공(휘 관식, 1843~1910)의 당호(堂號) 편액 글씨는 일신재(광산人, 정의림)가 썼다. 일오헌의 당호(堂號) 편액 글씨는 오헌공의 스승 소석(광산人, 김노현)이 썼다. 후계공(휘 질량, 1892~1972)의 당호(堂號) 편액 글씨는 송천(영광人, 김태경, 前 장흥문화원장 김기홍의 부친)이 썼다. 호곡공(휘 일환, 1910 ~1977)의 당호(堂號) 편액 글씨는 고당(서흥人, 김규태)이 썼다. 상산(성탁, 1926~ )의 당호(堂號) 편액 글씨는 송천(김태경)이 썼다...안항공 13대손이자 오헌공 증손인 성탁 종친의 소유다.
※ 김규태(金奎泰) 이력 : 서흥人, 1902~1966, 호(號) 고당(顧堂), 구례 태생이다. 정 기(鄭 琦, 선산人, 1879~1950)의 문인으로 화이론(華夷論)에 입각한 그의 세계관은 저술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아울러 서학(西學) 등 이단(異端)을 배척하고 성리학적 정통을 수립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학문과 더불어 산행을 매우 좋아하여 산행기(山行記)를 남겨 놓기도 하였다. 특히 가례(家禮)에 밝았다. 문집에는 《고당집》이 있다. 그의 자녀 9남1녀 중 7남인 김창동이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사진 : 씨족문화연구위원 栢江 위성록
위씨 문중의 양반가옥의 대표같습니다
편액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