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

사이트검색

사우/사당/고택

판서공파 종택 (判書公派 宗宅)

판서공파 종택(드론사진).jpg

판서공 종택 안채.jpg

                                             <판서공파 종택 전경>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492번지에 위치한다. 2002. 11. 27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 38호로 지정되었다. 장흥위씨 판서공파 종갓집으로 방촌리 내동(內洞)마을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장흥부 동헌터 표지석.jpg

           <고려 장흥부·회주목·장흥부의 230년간 치소인 동헌 터 표지석>

판서공파 종택 철륭단지.jpg

                                 <400여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철륭단지>

고려 1149년(의종 3)~1379년(우왕 5)까지 230년간 장흥부(長興府)·회주목(懷州牧)·장흥부(長興府)의 치소인 동헌(東軒)이 있던 터였으나 1600년 초에 판서공(휘 덕화, 1551∼1598)의 장남 병조참판공(휘 정철, 1583∼1657)이 입촌하였다. 1623(天啓 3)년 판서공의 配 정부인 죽산안씨(1560~1625)가 집터를 위로 올려 건축 조성하였다. 전체적 건축 분위기가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느낌을 주고 있다. 가옥(家屋)은 서향이며 사당, 안채, 사랑채, 헛간채가 들어서 있다. 안채는 위에 있던 건물을 원래의 위치인 아래로 내려 1945(乙酉)년에 신축하였다.

판서공파 종택 내 사당.jpg

                           <호조판서(正二品) 추증 3칸 사당, 380여년 前 건립>

특히 사당(祠堂)은 장흥위문 내 유일한 판서(判書, 正二品) 추증(追贈)의 3칸으로 1633년 병조참판공(휘 정철)이 가리포(완도)첨사 재임 때 건립하여 장자(長子)인 상원군수공(휘 동전, 1649 ~1713)에게 전해진 것이 확인되며, 2004(갑신)년 4차 중수(重修)를 하였다. 방촌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면서 원형대로 보존(保存)되어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측면 반 칸은 툇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구조는 막돌초석 위에 네모진 기둥을 놓은 3량 구조이며 뒷면과 양 옆면 벽은 흙벽 위에 판자로 마감하였다. 건물 내부에는 길이 3m, 높이 60㎝, 너비 65㎝ 규모의 영여(靈輿 : 장례 때 사용하는 가마 형태의 목 구조물)가 보관되어 있다. 대문 앞에는 회주목(장흥부) 동헌 관아를 짐작케 하는 하마석(下馬石) 여러 기가 있다. 판서공 13대종손 성렬 종친의 소유다.

 

판서공 추증 교지.jpg

 <1631년 호조판서 추증 교지 정2품 下, 1612년 配 정부인 죽산安氏 교지>

판서공(죽산안씨) 분재기.jpg

                    <1616년 호조판서공 配 정부인 죽산安氏 分財記>

판서공 묘소.jpg

          <장흥군 회진면 대리 소재 호조판서공 묘소 配 정부인 죽산安氏 합조>

판서공 신도비.jpg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소재 호조판서공 신도비, 1938년 謹竪>

판서공 묘전 제향.jpg

                                         <매년 陰 10. 01 墓前 제향 행사>

 

 ※ 호조판서공(덕화 1551∼1598) : 성균진사공(곤 1515~1582)과 광주李氏 사이에서 사자(四子)로 태어났다. 1585(乙酉)년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선조(宣祖)를 의주(義州)까지 호종(扈從)하였다. 1593년 언양현감(彦陽縣監)에 1594년 군자감정(軍資監正) 겸 언양현감에 제수(除授)되어 부임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1596년 군자훈련원도정(軍資訓練院都正)으로 있을 때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체포 소식을 듣고 비분(悲憤)하여 병을 얻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그 후 1598(戊戌)년 公께서 타계하자 조정(朝廷)에서는 1609년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으로 증통정대부형조참의(贈通政大夫刑曹參議), 16124년 증가선대부형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형조참판(贈嘉善大夫刑曹參判兼同知義禁府使)을 추증(追贈)하였다. 1626년 공(公)의 아들 병조참판공(兵曹參判公, 휘 정철)의 정사일등훈(靖社一等勳, 인조반정 功)을 감안 증자헌대부한성판윤겸의금부사(贈資憲大夫漢城判尹兼義禁府使)에 1631년 8월 아들 병조참공 위정철의 진무일등훈(振武一等勳, 이괄의 난 功)과 후금(後金) 심양 회답사(回答使) 사행(使行) 등의 功을 감안하여 증자헌대부호조판서겸지의금부사(贈資憲大夫戶曹判書兼義禁府使)에 추증(追贈)했다. 배(配)는 죽산安氏이며, 묘소(墓所)는 회진면 대리이다. 1806(丙寅)년 죽천사(竹川祠)와 2015(乙未)년 울산(蔚山) 충의사(忠義祠)에 배향(配享)되었다. 교지 11매가 현존한다.

 

병조참판공 교지.jpg                     <1636년 병조참판공의 영흥대도호부사 교지 정3품 上>

병조참판공 유품.jpg

<1631년 병조참판공의 청나라 회답별사 사행시 청나라 태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철피리,옥피리 등 유품>

병조참판공 묘소, 묘갈비.jpg

               <병조참판공의 천관산 감시봉 묘소 配 정부인 진원朴氏 합조, 묘갈명>

 

 ※ 병조참판공(정철 1583~1657) : 호(號) 만회재(晩悔齋), 판서공(諱 德和)과 정부인(貞夫人) 죽산 安氏의 長子로 태어났다. 1603년 무과급제, 1612년 宣傳官, 1614년 사헌부감찰. 함평현감, 1619년 통정대부. 절충장군용양위부사직, 1621년 곤양군수, 1623년 인조반정 참여 정사원종일등공신(靖社原從一等功臣), 1624년 李适(이괄)의 亂 참여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 1628년 영유수령. 안주진관병마절제도위, 1631년 병조참판 후금 회답별사로 심양 사행, 1632년 절충장군행충무위사과겸오위장, 1633년 가리포첨사, 1636년 영흥대도호부사겸함경남도 방어사, 1638년 숙천도호부사, 1642년 갑산도호부사. 갑산진병마첨사절제사, 1643년 절충장군행만포진병마절제사 등 중요 관직 역임 후 1644년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방촌)후 1657년에 終年하였다. 배(配)는 정부인 창령曺氏, 정부인 진원朴氏, 정부인 온성孟氏이며, 묘소(墓所) 천관산 감시봉(550m 고지)이다. 1806년 죽천사(竹川祠)에 배향(配享)되었다. 교지 28매, 유서 3매 등 다수의 유품이 현존한다. 

 

상원군수공 교지.jpg                  <1713년 상원군수공의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 교지, 정3품 上>

 

 

 ※ 상원군수공(23세 東峑, 1649~1713)​ : 父는 후금 회답사를 사행한 병조참판공 정철(廷喆)이며, 祖는 임진왜란 때 언양현감을 지내고 호성·선무공신으로 호조판서에 추증된 덕화(德和)이다. 1676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684년 함경도관찰사 취몽헌(醉夢軒) 이수언(李秀彦)을 보좌하였다. 1688년 12월 정략장군행의흥위우부장(종4품 상), 1689년 2월 소위장군행용양위우부장(정4품 하), 1689년 12월 진위장군행용양위우부장(정4품 상), 1690년 2월 보공장군행용양위우부장(종3품 하)을 거쳤다. 이후 1693년 6월 23일 정3품 하의 통훈대부행거제현령(巨濟縣令)에 임명되었다. 그후 1696년 병조판서에 봉직(奉職)하던 민진장(閔鎭長)의 추천으로 그 휘하에서 근무하다가 1697년 충청감사 민진후(閔鎭厚)를 수행하였다. 1698년 충청도감진어사 민진원(閔鎭遠)를 수행해 섬 지방 주민들을 진휼(賑恤)하였다. 이때의 公의 공로를 숙종(肅宗) 임금에게 알리자 조정에서는 통훈대부행상원군수(祥原郡守)로 제수되어 수령으로 있으면서 주민을 크게 교화시켰다. 1699년 사헌부감찰을 지낸 후 1702년(숙종 28) 4월 16일 통훈대부행진도군수(珍島郡守)로 임명되어 9월 28일까지 제158대 진도군수로 재임하다가 문충공(閔鎭遠)이 전라도관찰사 임무를 맡게 되자 진도군수 직을 포기하고 그를 수행했다. 1710년 4월 28일 통훈대부행남해현령(南海縣令)으로 임명되었다. 다수의 사람 목숨을 구하고 선정을 베풀어 그 功으로 1713년 1월 16일 절충장군(折衝將軍 정3품 上)에 승계했다. 1713년(숙종 39) 4월 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에 제수되어 그해 7월 타계하였다. 배(配)는 숙부인 문화류씨, 숙부인 금성나씨, 숙부인 남양홍씨 이다. 묘소는 고흥군 도화면 천등산 300고지이다. 公의 교지 8매가 현존한다. 

 

 

글•사진 : 씨족문화연구위원 栢江 위성록

profile

碧泉 2016-03-14 15:59 *.211.38.102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가옥구조입니다

자세하게 설명과 사진이 어울어져 이해가 쏙쏙 됩니다.

로그인 정보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