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재 액호> 김천시 남면 운곡리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부장공(휘 대홍, 1564~1593)의 유덕을 기리고 제향을 모시기기 위해 운곡의 명당 420평의 부지에 후손 성량공(1863~1938)의 주도로 1935(乙亥)년에 건립했다. 2002년 6월에는 허술한 외삼문도 개축했다.
公께서는 장흥 평화에서 1564년(甲子, 明宗 9년) 태어나 29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친형 수사공, 從兄 영장공 등과 함께 참전한다. 公께서 戰亂중에 운곡에 들러 “비룡상천형인 운남산을 마주 본 마을의 지형을 보았다. 마치 구름골짜기를 지나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형국(形局)같다”며 터를 잡았다고 傳해지고 있다. 公의 예측은 맞았다. 산골짜기라 농경지는 풍부하지 않지만 후손들의 부지런으로 이겨냈다. 후손들은 한때 100여 가구의 집성촌(集成村)을 이뤄 위문 내 단일 종파로는 최대 번손 지역으로 자랑할 만하다.
매년 陰 10. 10일 21세 부장공, 22세 추남공, 23세 사징공, 24세 춘환공, 25세 명방공, 26세 경숙공, 경휘공 등 7位에 대해 제향 한다. 편액에 낙관(落款)을 하지 않아 필자는 알 수 없다. 부장공파 운곡종중 소유다.
글·사진 : 씨족문화연구위원 栢江 위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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