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재 액호>
19세 통선랑공(휘 진수, 1480~1564)의 묘각으로 용산면 운주리 봉황동에 있었다. 公은 관산파를 있게 한 분이다. 公의 아들 경(鯨), 곤(鯤), 태(鮐), 전(鳣), 방(魴)등 5형제 중 당곡 진사공(휘 곤, 1515~1582)은 휘 진현(晉賢)의 양자로 들어가 오덕(五德)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公의 둘째 아들을 동생에게 보내지 않았다면 오늘의 관산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참의공(參議公), 종사랑공(從仕郞公), 주부공(主簿公)는 물론 관산파의 진짜 할아버님이다.
<운곡재 상량문>
1937(丁丑)년 장천문중 산하 종중의 참여로 신축하였다. 상량문(上樑文)은 오헌공(휘 계룡, 1870 ~1948, 안항공 10대손)이 근찬(謹撰)하다. 액호 편액 글씨는 극암(이기윤)이 썼다. 1994년까지 묘전(墓前)에서 제향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후 매년 음력 10월 15일 장천재 시제 때 별도의 단소를 마련 합제(合祭)하고 있다. 장천문중 소유였으나 2005년 타인에게 매매하여 편액은 방촌유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글·사진 : 씨족문화연구위원 栢江 위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