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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간암공 호패

간암공(艮庵公) 호패(號牌)

 

1. 명칭 : 간암공(艮庵公) 호패(號牌)

2. 소재지 : 관산읍 방촌리 방촌유물전시관내

3. 소장자 : 간암공 종손 위광량(魏廣良)

 

艮庵公은 누구인가?
존재공을 병계 윤봉구선생과 사제의 연을 맺게 해준 간암공은 누구인가. 그는 판서공의 증손, 영흥부사 겸 방어사 재임 중 병조참판의 직함으로 후금의 수도 심양을 다녀온 회답사 휘 정철(廷喆)의 손자, 남해군수 등을 역임한 휘 동전(東峑)의 3남으로 1689년 서울 주자동에서 태어났다.
간암공은 아버지가 1676년 무과에 급제한 이후 1697년 총수어 閔鎭遠의 보좌관으로 인연을 맺어 世交를 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라면서 閔鎭安과 承洙의 문하에서 민씨들과 우정을 쌓으면서 수학했다. 강경공부는 물론 주역과 역사서와 오서와 비전 등을 읽으면서 폭 넓은 지식을 축적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입신출세를 단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고향인 관산으로 33세 때인 1721년 하향했다. 방촌에 정착한 후 장천재에서 詠而齋公, 剩餘翁 등과 담론하며 생활했다. 하향한지 6년 되던 해에 존재가 태어나자 아낌없이 후원했다. 1766년 78세에 大興에서 타계했다.(글 : 圓山 위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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