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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판서공 울산 충의사(忠義祠) 배향(配享)

울산임란숭모회(회장 서진길) 에서는 지난 2015년 12월 10일 서진길 회장, 양명학 울산대 명예교수, 송수환 울산대 연구 교수, 김병길 울산매일 주필, 유재하 울산유림 원로 등 5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열고 추천 대상자 4명 중 언양 현감을 지낸 호성.선무원종공신 위덕화(魏德和 1551~1598), 선무원종공신 김 호(金 虎 1534~1592), 중국 마귀제독을 도와 울주에서 싸운 선무원종공신 조 탄(趙 坦) 등 세 인물을 추가로 충의사에 봉헌(奉獻)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절차를 거쳐 위패 (位牌) 봉안(奉安)을 마친 뒤 2016년 4월 15일 제향 때부터 추봉(追封) 대상자가 된다. 이는 장흥위문의 경사(慶事)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충의사는 울산 광역시 중구 학성동 45-1번지에 위치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참전한 선무원종공신 242위와 이름없이 산화한 의사들을 위해 무명제공신위를 함께 봉안하고 매년 4월15일(춘제)과 10월15(추제)일 제향한다..

※ 호조판서공(21세조 덕화, 1551∼ 1598) : 당곡 진사공(휘 곤, 1515 ~ 1582)과 광주李氏 사이에서 사자(四子)로 태어났다. 1585(乙酉)년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선조(宣祖)를 의주(義州)까지 호종(扈從)하였으며, 언양현감 (彦陽縣監)에 제수(除授)되어 부임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1596년 군자훈련원 도정 (軍資訓練院都正)으로 있을 때 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체포 소식을 듣고 비분(悲憤)하여 병을 얻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그 후 1598 (戊戌)년 公께서 타계하자 조정(朝廷)에서는 선조호종원종 훈(宣祖扈從原從勳)과 1616 (丙辰)년 형조참판을 추증(追贈) 하였다. 공(公)의 아들 병조참판 공(휘 정철)의 정사진무훈(靖社振武勳)과 청나라와의 회답별사 (回答別使) 사행 등으로 1631 (辛未)년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追贈)했다. 죽천사(竹川祠)와 충의사(忠義祠)에 배향(配享)됐다.  (글·사진 :  栢江 위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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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충의사 전경>

호조판서 추증 교지.jpg              <호조판서공의 1613년 형조참판 추증 교지, 1631년 호조판서 추증 교지  방촌유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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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판서공의 묘소 정부인 죽산安氏 합조, 장흥군 회진면 대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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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판서공의 신도비 1938년 謹竪,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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