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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학술자료

만회재(晩悔齋) 위정철(魏廷喆, 1583-1657)의 <심양(瀋陽)왕환(往還)일기>가 6일 출판됐다. 이 일기는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인 1631년 3월 19일부터 그해 4월 30일까지 만회재공이 병조참판의 임시직첩을 받고 회답사(回答使)로 후금(後金)의 수도에 파견되면서 귀국하기까지 41일간의 사행일기이다. 학계는 <왕환일기>가 만회재공에 앞서 1630년 12월 18일에 파견됐다 후금의 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 온 춘신사(春信使) 박난영(朴蘭英)의 일기로 잘못 알려진 것을 전남대 신해진교수에 의해 확인돼 출판된 것이다.

< 왕환일기>는 후금 인물과 외교적 교섭과 첩보, 예단전달, 국서에 대한 회답, 개시(開市)에 관한 사항, 포로 쇄신과 전마(戰馬)에 관한 문제, 가도(가島)의 명군(明軍)에 대한 식량지원 중단, 심양에 관군을 남기는 문제, 강숙을 돌려보내는 문제 등 당시 후금과 조선간의 외교적 마찰을 풀기 위한 여러 상황이 일기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귀중한 일기는 공의 9대 손 죽암공(竹庵公)이 1936년에 이전의 필사본을 보고 목판본을 남겼으나 종가에는 보관되지 않고 오헌공(梧軒公)댁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만회공의 이력 : 1603년 무과급제, 1610년 선전관(宣傳官), 함평(咸平)현감, 곤양(昆陽)군수, 1624년 이괄(李适)의 난으로 투옥 후 석방 1629년 영유(永柔)수령, 1631년 후금 회답사로 심양 사행, 만포(滿浦)첨사, 1635년 절충장군 行 용양위(龍양衛)부시직, 1636년 영흥(永興)부사 겸 남도방어사 일시 파직 후 숙천(肅川)부사로 복직, 1638년 사간원 탄택으로 일시 파직, 1642년 갑산(甲山)부사를 제수 받았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양, 1643년 만포(滿浦)첨사, 1644년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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