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扈聖宣武功臣 贈資憲大夫戶曹判書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行通訓大夫軍資監正魏公神道碑銘 並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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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懷州의 魏氏는 대대로 忠義를 崇尙하여 왔는데 宣祖 壬辰倭亂에 이르러 國事에 정성껏 힘을 다하여 盟府에 功績을 記錄한 者 그 數가 가장 많았으니 魏公 諱 德和 字 和之 같은 분이 그중의 한사람이다. 幽宅은 長興 箂德島 酉坐 辛向의 언덕에 있으며 屛溪 尹文獻公이 이미 碑文을 새기었다. 嗣孫 啓文이 宗族들과 모의하기를 我朝의 功烈이 이미 顯著하고 또한 높은 벼슬을 받았으니 禮法에 의하여 마땅히 神道碑가 있어야 한다. 하고 드디어 大石을 다듬고 그의 일가인 相과 璟奎에게 위촉하여 내게 碑銘을 求하게 하니 착하지 못한 말로 어떻게 족히 讚揚할 것이며 하물며 앞서 사실을 修記하였으니 필요 없는 말을 덧붙일 수 없다고 하여 굳이 사양하였으나 더욱 부지런히 請함으로 이에 文憲公의 뜻을 記述하여 敍述하였다. 중략...
위덕화 신도비 전면.jpg

위덕화 신도비 후면.jpg

위덕화 신도비 옆면.jpg

돼지나 뱀처럼 욕심 많고 흉포한 놈들이 누에가 뽕잎 먹듯이 천천히 國土를 침범하여 八方 땅 끝까지 傾覆하려고 하는구나. 서울을 떠나려는 한 가지 計策 저 서방으로 가는구나. 王이 탄 수레 피란길에 오르니 萬事가 경황이 없구나. 용감한 忠臣으로 魏公이 있었도다. 고삐 잡고 王의 수레 護衛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忠誠을 다했도다. 말 타고 따르는 臣下 적은데다 邊方에 비바람은 왜 이리 몰아 친고? 눈물 뿌리며 결렬한 言論 大臣들이 얼굴을 붉히었네. 領海를 두루 바라보니 적세가 참으로 치열하네. 왕성한 기세 꺾으리라 맹세하여 萬번 죽기를 피하지 아니했네. 빛난 듯 一片丹心 王의 四聰에 올랐네. 彦陽縣에 부임하여 여러 번 軍功을 아뢰었네. 병들어 故鄕으로 돌아오니 運命이 이에 바싹 닥쳐왔네. 憂國의 한 생각 마음속에 맺히었네. 큰 賞으로 記錄하고 높은 벼슬 내리었네. 祠宇에 配享하니 동생과 兄이로다. 氣槪는 山河 같이 씩씩하고 찬란한 빛 온 나라에 나타났네. 큰 碑에다 말을 실으나 말이 끝이 없네.
丙子季冬 通政大夫前秘書院承 安東 金甯漢이 撰하노라.
戊寅  五月  日  嗣孫   啓文
                十一代孫   璟奎  謹竪

위덕화(魏德和 1551~1598) 字는 和之이다. 당곡 진사 위 곤(魏 鯤)과 광주李氏 사이에서 사자(四子)로 태어났다. 1585년(乙酉 선조18)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선조(宣祖)를 의주(義州)까지 호종(扈從)하였다. 1593년 언양현감(彦陽縣監)과 1594년 군자감정(軍資監正)겸 언양현감(彦陽縣監)에 제수(除授)되어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1596년 훈련원정(訓鍊院正)으로 있을 때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체포 소식을 듣고 비분(悲憤)하여 병을 얻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그 후 1598년 타계하자 조정(朝廷)에서는 1609년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따라 증통정대부형조참의(贈通政大夫刑曹參議)에, 1612년 호성원종훈(扈聖原從勳)에 따라 증가선대부형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贈嘉善大夫刑曹參判兼同知義禁府使)에 추증(追贈)하였다. 1626년 아들 위정철의 정사일등훈(靖社一等勳, 인조반정 功)을 감안 증자헌대부한성판윤겸의금부사(贈資憲大夫漢城判尹兼義禁府使)에, 1631년 8월 아들 위정철의 진무일등훈(振武一等勳, 이괄의 난 功)과 후금(後金) 심양 회답사(回答使) 사행(使行) 등의 功을 감안하여 증자헌대부호조판서겸지의금부사(贈資憲大夫戶曹判書兼知義禁府使)에 추증(追贈)하였다. 配는 정부인(貞夫人) 죽산안씨이다. 묘소는 회진면 대리로 합조(合兆)이다. 1806년 죽천사(竹川祠)에 2015년 울산시 충의사(忠義祠)에 배향(配享)했다.

호조판서공 증자헌대부호조판서겸지의금부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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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병조참판(兵曹參判) 정철(廷喆), 통덕랑(通德郞) 정혁(廷赫)이다. () 상원군수(祥原郡守) 동전(東峑) 정철(廷喆) ()이며, 청우당(淸友堂) 동익(東翼) 정혁(廷赫)의 ()이다.

후손들은 관산읍 방촌, 당동, 용전, 대덕읍 초당, 김제 월현, 도청, 안양면 기산, 당암, 여수시 개도, 용산면 모산, 장동면 율곡, 유치면 단산, 보성군 회천면 도강, 웅치면 유산, 예천군 효갈 지역에서 세거지를 이루었다. 장흥위씨 1999 기묘대동보 기준으로 안항 위덕후(魏德厚) 후손 다음으로 종원수가 많다.

신도비(神道碑)는 1936(丙子) 늦은 겨울에 비문을 김영한이 , 1938(戊寅) 5 관산읍 방촌리 650-3번지 현재의 방촌유물전시관 앞에 세웠다. () 김영한(金甯漢 안동 1878~1950) () 기오(箕五), () 급우재(及愚齋)이다. 청음(淸陰) 김상헌의 13대손으로, 충남 공주 태생이다. 1894(甲午 고종31) 식년 진사시에 3 410위에 합격하였다. 1901(광무5) 용인군수, 이듬해에는 양근(양평)군수, 1903 9 비서원승(秘書院承)에 제수되었다. 1905 을사늑약 이후 세상에 대한 뜻을 접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근수(槿竪) 위계문(1865~1951) () 창여(昌汝) () 죽암(菴)이. 위덕화의 10 종손이자 장천재 4 중수(重修) 공헌(貢獻) 농포(農圃) 송(魏 松)의 아들이다. 선대 교지 61점, 철피리, 옥퉁소 등 46점 등 유품 107점을 보수 관리하였다. 이중에는 병조참판 위정철이 남긴 "瀋陽往還日記"를 호(號)를 따라 "만회당실기(晩悔堂實記)"로 등사(謄寫)하여 오늘날까지 보존케 하였다. 1945 판서공파 종택 안채를 신축하였다. 1916 편찬한 장흥위씨 병진보(丙辰譜) 편찬시 교정(矯正) 참여 하는 당대 본향 문중사를 이끌었다. 죽암유고(竹庵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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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경규(1887~1947)는 자(字)는 석언(錫彦) 호(號)는 단강(丹江)이다.  유치면 단산리 태생으로 영귀정(詠歸亭)을 세운 복재(復齋) 위계민(魏啓玟) 선생의 아들이다. 판서공파종중에 논 3두락과 신도비 근수에 거금(巨金) 四百三十원을 헌성하였다. 1937~1939년간 장흥향교 11대 직원(直員 현 전교)과 1937~1938년간 제8대 장흥군유도회 회장을 겸(兼)하였다. 1946년 초대 장흥향교 전교(典校) 등, 장흥유림(長興儒林)의 산실(産室)인 향교(鄕校) 전교(典校)를 2번 역임한 대표적 유학자(儒學者)이다.

사진은 신도비 제막식이다. 중앙 신도비 기준으로 좌측 첫번째는 판서공 10대 종손 죽암(竹庵) 위계문, 두번째는 옥산 태생 춘헌(春軒) 위계반, 네번째(짧은머리) 유치면 단산 태생 단강(丹江) 위경규, 우측 첫번째는 방촌 태생 오헌(梧軒) 위계룡 등 당대 문중사를 이끈 주역들이다. 우측 앞 두번째 앉자 얼굴을 내미는 11살 소년은 현재 종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판서공 13대종손 향산(위성렬 91세)丈이다.      

당시 신도비 근수시 헌성(獻誠) 내역은 관산읍 방촌에서는 사손(嗣孫) 계문(啓文) 13, 대덕읍 초당 만기(萬基) 4, 안양면 기산 신권(信權) 18, 관산읍 와룡 성권(聖權) 9, 장동면 율곡 계래(啓來) 2, 유치면 단산 경규(璟奎) 34, 관산읍 당동 계복(啓馥) 2, 보성군 회령 계춘(啓春) 9 91명의 직계후손이 헌성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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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연비 후면.jpg

또한 부산면 기동 계래(啓來) 등 5명이 개별 헌성에 참여하였다. 판서대종중, 화원소종중, 대문중, 청계파종중, 무기계중, 판사파종중, 훈도파종중, 운암파종중, 안항파종중, 양곡파종중, 서원계중 등 9개 종·문중(宗·門中)과 2개 계(契)에서 헌성 참여하였다. 의연비(義捐碑)는 근수 때 세우지 못한 것을 2003년 5월에 판서종중과 방촌리 묘선계(墓先契)에서 신도비 뒤쪽에 세웠다.

비석(碑石) 자재(資材)는 청쑥색 바위가 생산된 관산읍 죽청 앞 바다에서 채석(採石)하여 수레로 현장소인 밭까지 이동하였다. 하단부 거북 좌대 석재(石材)는 건너편 지석묘군(支石墓群) 내 바위를 사용하여 석공(石工) 여러 명이 참여한 큰 공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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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거북이 좌대 후면.jpg

신도비(神道碑)는 종2품 이상 관직에 한하여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고인(故人)의 사적(事蹟)을 기리는 비석이다. 위덕화의 신도비를 현재의 장소에 세운 연유는 묘소는 회진면 대리(舊 德島)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에는 대리는 연육(連陸)이 되지 않아 신도비를 세운 장소가 종손 위계문의 소유 밭(田)이어서 현 자리에 세운 것으로 사료된다. 회진면 대리는 1964년 관덕지구 간척사업 조성으로 연육 되었다.^^   栢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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