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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목 종원 귀하 2007/12/29 위정철

2015.11.27 18:06

운영자 조회 수:70

홈페이지의 방문객이 많아 기분이 좋습니다. 04년 홈피를 개설한 이후 사랑방이 요즘처럼 분주해진 것은 처음인 것같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위씨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아는대로 답변드립니다. 혹시 미비하고 이해가 되지 않은 대목이 있더라도 그게 현실이고 한계라고 여기고 양해하기 바랍니다.

우리 족보는 1759년 기묘년에 처음 만들어 졌습니다. 당시 편찬의 주역은 존재공의 아버지 영의재 휘 문덕이었습니다. 그때 시조 이후 298년간 실계(失系)로 세계를 잇지 못해 고려초인 휘 창주를 중조로 삼아 세계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를 승방동의 구적(舊籍)을 보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 구적은 임진왜란 때 무관으로 활략했다는 부정공(副正公) 덕원(德元)이 개성부(開城府)에서 찾은 호적에 근거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 때의 호적이 나라가 망한지 200년이 념은 후에 개성부에 남아 있다는 것도 의심스럽고 그것을 찾아낸 주인공인 덕원공이 왜 그곳까지 가서 호적을 찾아냈을까도 의심이 가는 사항입니다. 따라서 창주를 중시조로 삼았다는 근거기록은 개성부 호적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의문은 족보에 중시조의 벼슬을 대각관(大覺官)이라 했으나 신라나 고려의 벼슬에 이런 품계는 없습니다.

따라서 시조공의 동래시기, 자격, 벼슬, 중시조의 출생시기, 벼슬, 5세조 충렬공과 원감국사와의 세대차, 14세 판사공의 진도 귀양설과 유시(遺詩) 등 여러가지 의문들이 우리 족보의 문제점입니다. 성씨 마다 선조들의 벼슬에 지나친 관심을 갖다 보니 역사를 왜곡한 부분이 적잖게 많습니다. 바로 관존민비의 사상이 족보제작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우리 족보 또한 그런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바로 잡은 일은 우리의 몫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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