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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광양현감공(21大澤, 1558~ ?)

의 휘는 대택(大澤)은 문보(文甫)의 아들이며, 충청수사 대기(大器)의 동생이다. 형제 5인이 모두 무과(武科)에 올라 위씨 오호(五虎)라 불렀다. 공은 율포(栗浦) 해전에서 왜선 10여척을 격침시키는 등 도총도사(都摠都事) 백씨 대기(大器)와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선무원종(宣武原從)이등훈( 二等勳)에 록()되어 도사(都事)와 광양현감(光陽縣監)을 제수 받았다.(충의록, 요람 등 기록)

 

※ 충의록, 요람 등 후손 기록에서 생졸년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방촌유물전시관에 소장 전시된 기묘초보에서 公의 생년이 1558년(戊午)으로 확인되며 졸년은 알 수 없다. 

 

                                           <광양시청 확인 내용>

역사기록에서 은 임란 때 선무원종이등훈록이 확인된다광양시청 자료에 의하면 임란 전후 광양현감 제수사실은 기록이 없다. 임란 때 광양현감으로 널리 알려진 어영담이 1591~1593년간 재임했다. 이후 이학림, 구덕령, 최삼택, 박치공, , 이춘헌 등 6명이 1598년 임란 종료까지 순차적으로 광양현감을 역임했다. 란 후 1599년부터 1610년까지 전란의 폐허로 광양현을 폐지하고 순천도읍에 편입되어 순천부사가 지역을 다스렸다고 한다. 이후 1611(광해3)부터 다시 광양현감을 임명하였으나, 의 현감 재임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 광양현(光陽縣)은 현재의 전남 광양시 지역이다.(광양시청 : 최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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