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

사이트검색

天冠山의 地震記錄 / 圓山 위정철

碧泉 2016.07.25 20:24 조회 수 : 84

 

天冠山의 地震記錄


1672년 청 강희(康熙) 11년 전라도 장흥부의 천관산(天冠山) 대장봉(大壯峯)이 갑자기 움직였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서기도 했는데, 이렇게 백여 차례나 반복했다. 대개 그 산에 세 개의 석봉(石峯)이 솥발처럼 서 있는데, 이른바 대장봉은 그 가운데 서 있는 것으로서 높이가 30장이나 됐다. 그것이 움직일 때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목격했고, 도신이 이 사실을 보고했다. 영상 허적이 아뢰기를,"매우 괴이하고 허망한 일입니다. 수십 장이나 되는 석봉이 어떻게 좌우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날 리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그것이 기울어질 때 풀과 나무 그리고 돌들이 필시 모두 부서졌을 텐데, 그 고을의 수령은 직접 현지를 살펴보지 않았고 감사는 서둘러 아뢰었으니, 매우 얼뜨고 치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상께서 만약 큰 변괴로 여기셔 더욱 수성(修省)을 하신다면 역시 좋지 않겠습니까."하니, 상이 그렇게 여겼다.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99면
【분류】현종개수실록 25권, 현종 13년 2월 5일 신사 1번째 기사

阿育王塔의 崩壞와 地震
천관산에는 이적(異蹟)이 많다. 그 중 「아육왕탑붕(阿育王塔崩)」이라는 전설이 있다. 내용은 관산에 사는 선비 위정훈(魏廷勳, 1578~1652)과 친구 선세휘(宣世徽)가 탑 근처 암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에 고승이 두 사람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불러 나왔다. 그런데 얼마 뒤에 6층의 아육왕탑이 무너지면서 탑 밑에 있는 의상암(義相庵)도 함께 붕괴돼 잠자던 의상암의 승려들이 숨졌다. 산중고기에 따르면 아육왕탑은 인도 아쇼카왕이 신병(神兵)을 보내 하룻밤에 세웠다고 전한다.
천관산의 지진과 아육왕탑의 붕괴와는 상당히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다. 단지 아육왕탑 붕괴는 1612년이고 지진은 1672년으로 한갑(甲)의 시차가 있을 뿐이다. 다만 아육왕탑 붕괴 때 고승의 부름으로 살아난 위정훈은 천관산에서 놀면서 여러 시를 남겼다. 만일 붕괴를 체험했다면 관련 기록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돌탑이 무너진 것은 지진이 아니면 불가능한 현상이 아닌가. 현종수정실록의 천관산이 움직였다는 기록은 그 지진을 당시에는 지진으로 알지 못해서 그렇게 적은 것이다. <검색도사 野雲 제공>

로그인 정보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