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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헌고택 편액 및 주련판독 / 위이환

야운 2015.12.24 18:07 조회 수 : 495

■죽헌고택 편액 및 주련 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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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헌고택 :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477번지에 위치한다. 1986. 2. 7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6호 위성룡 가옥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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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1959(乙亥)년에 신축한 一字형 6칸 전후 퇴집이며 겹집의 형태이다. 간살이는 북쪽 앞 2칸이 부엌이며 뒤 2칸은 좌.우 방이다. 다음이 큰방이고 중앙은 2칸 대청, 맨 끝이 작은방이며 우퇴가 놓여 있다. 사랑채는 1919(己未)년에 지어졌다. 4칸 전후 툇집으로 간살이 북쪽으로부터 앞 칸은 방이고 뒤 칸은 헛간으로 되어 있고, 다음 2칸의 앞 칸에는 크게 방을 두고, 뒤 칸에도, 좌.우로 방을 두었다. 맨 끝 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각 툇칸에는 창고방이 시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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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헌고택은 전형적인 남도의 반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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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헌공(휘 계창, 1861~ 1943)의 당호(堂號) 편액 글씨는 설주 송운회의 형(兄) 소파 송명회(1872~1953)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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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송명회와 설주 송운회 두 형제는 구한말에서 광복 해방 전후까지 보성을 빛낸 인물들이다.

 


●송명회(宋明會) 이력 : 여산人, 1872 ∼1953, 호(號) 소파(小波), 자(字) 남일 (南一) 보성군 율어면 금천리 태생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기가 남보다 뛰어나 5세에 글을 읽었다. 7세에 연정(蓮亭) 이기선(李基善) 문하에 나아가 배웠다.
연정공이 시재(詩才)가 있다고 여기고 관해(觀海)라는 시제(詩題)를 주니 거뜬히 지어 내므로 천재라고 경탄하였다. 1893(癸巳)년에 영재(이건창, 1852~1898)로부터 사사하였다. 그의 문장은 대개 영재공으로부터 나왔다고 보았으나,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기를 절묘하기가 청어람(靑於藍)이라고 하였다. 1898(戊戌)년에 연재(송병선, 1836~1905)을 배알하였는데 그 재주를 보고, 자기 제자처럼 아꼈다. 1900(庚子)년에 면암(최익현, 1834~1907) 다음 해 매천(황 현, 1855~ 1910)을 찾았는데 매천과는 며칠을 함께 시를 논하며 시문을 지어 서로 주고 받았다. 동강(東江) 김영한(金寧漢)은 “호남의 시가(詩家)로서 매천 이후에 소파(小波)가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묘지는 율어면(栗於面) 율변촌(栗邊村) 후 임좌지원(壬坐之原)이다. 시문집으로 『소파선생문집 (小波先生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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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은공(휘 대량, 1884~ 1951) 당호(堂號) 편액글씨는 설주 송운회의 작품으로 확인되었다.

●계은공(휘 대량)에 대해 언급한다.
당대 본향 문사와 지역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34~1938년 고읍면장을 역임하시면서 면소재지(현 옥당리) 시가를 조성하였고, 평촌. 대평 앞 간척사업을 주관해서 300두락을 간척 농지로 조성하였다. 또한 장천문중에 97두락, 청계공파종중 소유 죽천사에 4두락을 각 헌재(獻財)및 등기 이전비를 부담하였으며, 여타 판사공 파종중, 운암공파종중, 판서공파종중, 안항공파종중 등 5덕(德) 형제 종중에 현금 각 2,000원을 지원하였다.

1939년에 장흥향교 직원(直員, 현 전교) 을 역임 등 위문에 대해 헌신과 가문(家門)을 빛내셨다. 이러한 계은공의 헌신에 대해 장천문중에서는 1949(己丑)년 장천 재 앞에 "계은당위대량모선사실기(桂隱堂魏大良慕先事實記) 비(碑)를 근수(謹豎)하여 유덕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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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인은 심석(心石) 정의림(鄭義林 광산人, 1845~1910)이다.

●정의림(鄭義林) 이력 : 광산人, 1845 ~1910 자(子)는 계방(季方), 호(號) 일신재(日新齋)‧ 심석(心石), 응교(應敎) 정태(鄭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제현(濟玄)이고, 어머니는 진원박씨(珍原朴氏) 치성(致聖)의 딸이다. 노사(蘆沙) 기정진 (奇正鎭)의 3대 제자 중 1인으로, 노사 학파의 인물 중 비교적 큰 규모의 문인 집단을 형성한 사람이다. 또한 나라가 일제에 의해 잠식되어 가자 호남 대의소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정의림의 문인수는《일신재집》의 문인록에는 265명으로 수록되어 있고, 노사 선생 연원록에는 재전제자까지 합쳐 879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정의림은 1893년에 화순군 춘양면 칠송리 마을에 영귀정 (詠歸亭)을 축조하고 9성(聖)의 진영을 봉안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유고집으로 1927년에 간행한 [일신재집(日新齋集)] 21권 10책과 1967년에 간행한 [일신재 선생 연원록(日新齋 先生 淵源錄)] 3권 2책이 있다. [일신재집(日新齋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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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행주人, 1846~1916)이 찬(撰)한 "상산재기(觴山齋記)"가 있다.

●상산재(觴山齋)는 고려(高麗) 회주목(懷州牧, 현 방촌)의 주산(主山)인 상잠산(觴岑山)자락(방촌에서 뒤골이라고 부르는 은행나무 주변)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청계공파 종중 소유였고, 초옥(草屋)형태 재각으로 1950년 前까지 존치 되었으나 그후 철거되었다. 실제 주변에는 청계공 후손(채환 아재)의 천수답이 있었고, 1990 초년경부터 경작을 하지 않아 잡목으로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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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죽헌 위옹회갑운(敬次竹軒魏翁回甲韻)은 석담 이종문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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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헌원운(竹憲原韻)은 죽헌공 휘 계창이 썼다.

■죽헌고택 주련 판독2015-12-25 18;27;05.jpg

■주련 판독
觴岫煙霞滿地
(상수연하만지)
상수의 연하는 땅에 가득하고,

冠山牙笏沖天
(관산아홀충천)
관산의 아홀은 하늘에 솟구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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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 판독
竹樹須非俗態
(죽수수비속태)
대나무 숲 꼭 세속의 태도 아니요,

風月云誰管領
(풍월운수관령)
청풍명월은 누가 도맡아 다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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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 판독
孝友一生素履
(효우일생소리)
효도와 우애는 한 평생의 본분이고,

林泉足我盤旋
(림천족아반선)
수풀과 샘물은 내 노닐기에 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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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 판독
桂雲便是仙緣
(계운편시선연)
계수 구름은 곧 신선과의 인연이고,

詩書百世靑氈
(시서백세청전)
시와 글씨는 백세의 전해온 가보네.

글쓴이- 장흥위씨 판서공파 후손 백강 위성록이 썼음. 주련판독 위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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