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懷州祠와 柏山齋 懸板 이야기

시조공을 주모신 신실과 강당의 현액이 새롭게 단장돼 붙여졌다. 대부분의 종인들은 그저 붙여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사소한 것처럼 보인 일에도 老翁의 정성과 손길의 발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주인공은 덕운(德雲) 황량(滉良) 옹이다. 옹의 지극한 모선지심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올해도 그의 모선행각은 지칠 줄 모른다. 아니 오히려 활기차고 다른 해보다 바쁘게 뛰신다.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기에 촌각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실 사호(祠號)와 강당 재호(齋號)에 대해서 알아본다. 5월 1일 대제총회에서 신실의 사호가 하산사에서 회주사로 변경됐다. 그 회주사는 1975년 차녀 혼수를 장만하려고 준비한 자금을 몽땅 신실 건축비로 희사한 바로 그 건물이다.
당연히 변경된 사호의 현액(現額)을 써야했다. 여러 번의 습작을 마치고 6월 13일 광주 전각(塡刻)전문가이자 친구인 古堂에게 보냈다. 그리고 우송했으니 잘 만들어 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3일 뒤 양각된 사호가 부산면 광고사로 도착했다.
옹은 도문회 부회장 경 총무 인환과 광고사로 가서 헌액을 찾아 백산재로 가져왔다. 뒷면을 보니 봉정표(奉呈表)에 시제가 丙申이 아니 丁未로 표기 되어 다시 광고사로 반환해 수정을 요구했다. 20일 수정된 현액을 찾아 백산재에 보관했다.
남은 일은 현판식을 거행할 일정을 잡은 문제다. 도문회 임원진은 6월 22일로 날짜를 잡았다. 현판을 하려면 사전에 준비를 해놓아야 했다. 간단하지만 고유례를 치를 음식도 장만해야 했다. 그래서 당일 여러 종친들이 모여 현판식을 올렸다.
현판식을 끝냈는데 백산재 재액이 낡고 왜소하니 차제가 개선하자는 안이 제기됐다. 협의 끝에 확대 개선하기로 했다. 결국 후속작업은 옹의 일로 낙착이 됐다. 우선 재호로 쓸 나무가 문제였다. 마땅한 나무판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옹은 안양에 살고 있는 원(元)목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목수는 “마침 집에 은행나무 판자가 있으니 와서 보라”고 했다. 이틀 뒤 옹을 비롯해 도문회장, 인환 부회장, 입로비 문제로 온 성표 등의 종원이 백산재로 모여 대책을 협의했다.
성표 종원이 현액을 떼어냈다. 그것을 갖고 원목수댁으로 갔다. 은행나무 판자는 가로 140㎝, 세로 40㎝로 재액을 가하기에 딱 알맞았다. 원목수는 거저 줬다. 그것을 차에 싣고 관산으로 와서 광주 고당에게 택배로 탁송하는 한편 알렸다.
판자를 탁송한지 16일인 7월 10일 고당으로부터 완성됐다는 전갈을 받았다. 다음날인 11일 옹은 그걸 찾으려 버스를 타고 광주로 갔다. 고당집으로 가서 양각된 재액을 받았다. 택시에 실코 학동 버스정류장에서 장흥행 버스에 싣고 내려왔다.
인환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터미널로 나오라 일렀다. 도착해서 인환 부회장의 차에 싣고 백산재에 놔두고 귀가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자동차도 없이 무거운 물건을 택시와 버스로 가지고 다닌 그 장면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죄송하다.
7월 14일 극암(克庵) 이기윤(李基允, 1891~1971)선생이 쓴 재호가 새롭게 단장돼 제자리에 다시 걸어졌다. 무거운 현액은 누구나 걸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이날도 원목수 부자가 수고를 해준 것이다. 이도 옹의 인간관계로 덕을 본 것이다.
옹의 일은 그치지 않았다. 다음은 존재공 동상 개수문제이다. 7월 7일 도문회 운영위원회는 이 사업을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는데 옹이 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옹이 이 사업의 책임을 맡은 것은 1986년 동상을 세웠기 때문이다. <2016. 7. 17 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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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崔益鉉(1833~1906), 宋秉璿(1836~1905), 田愚(1841~1922)의 제자 /圓山 위정철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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