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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감국사 세미나 2004/06/23

2015.11.10 21:01

운영자 조회 수: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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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감국사 충지(沖止)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가 2002년 9월 29일 송광사(松廣寺) 사자루에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는 전국 각 사찰에서 모인 40여명의 승려와 장흥, 광주, 서울 등지에서 온 80여명의 종친이 참석한 가운데 사계의 전문가 4명이 분야별 주제를 발표한데 이어 열띤 질의응답시간도 가졌다.
원감국사는 직계후손이 없지만 장흥 위씨를 빛내신 어른이시다. 우선 할아버지와 아우인 문개(文凱)할아버지 형제는 장흥읍 장원봉(壯元峰)이란 산 이름을 낳은 주역이시다. 형제분이 당시 국가고시에 거듭 장원급제하시니 주민들은 물론 세인들이 그분들이 태어나 자라신 마을의 산봉우리를 장원봉이라 부르면서 비롯된 유래이다.
다른 하나는 위씨의 상징이다. 우리는 어려서 성씨마다 붙어있는 상징을 부른 기억이 있다. 가령 김씨(金氏)는 "도깨비", 이씨(李氏)는 "쌀가지"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위씨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왜 위씨가 중인지 연유를 알 수 없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아마도 원감국사가 스님이었기에 불러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날 세미나는 우리 위가들을 민망스럽게 만들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위가 치고 원감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학술세미나의 주인공이 될 정도의 인물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세미나 자리에서 그분의 인물됨을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으니 민망하고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세미나가 매우 소중했다. 동국대 김영태(金煐泰)명예교수는 "원감국사의 선교관(禪敎觀)"을 비롯 중앙대 진성규(秦星圭)교수는 "원감국사의 생애와 현실인식"을, 순천대 최인선(崔仁善)교수는 "국사의 유적과 유물에 관한 고찰"을, 전주대 박완식교수는 "국사의 시문(詩文)에 나타난 다선일여(茶禪一如)"등의 주제는 국사를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줬다.
다만 학자들의 논리에도 흠은 없지 않았다. 관심을 끈 대목은 국사의 출생지에 대한 오해다. 주제 발표자들은 그의 고향을 장흥 부산면 구룡리로 기정사실화 했다. 그들이 제시한 근거는 첫째, 구룡 마을 어느 위씨가 인정했고, 둘째, 구룡마을 뒷산의 병풍바위에 새겨있는 마애불(磨崖佛)이 송광사와 관련이 있다는 설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읍내 장원봉의 전설과 정면 배치된다. 장원봉은 원감국사 형제가 장원급제한데서 유래하고 있다. 이는 주인공이 그 산봉우리 밑에서 살았다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 전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산면이 태생지라면 어찌 장원봉의 전설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학자들의 견해는 하자가 있다. 그래서 주제발표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우리후손들이 그 모순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세미나 주제의 본질이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위씨로써는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장원봉의 전설에는 위씨의 긍지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2004/06/23

원산 위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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