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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갑태 甲泰(甲復) (35세 , 부장공파, 1960년생) 前동국제강그룹 조선선재 부장, 現재경종친회 부회장, 김천 운곡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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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으로 이거한 부장공 후손에 대한 기록이 [장흥위씨 종보]에는 3회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위상복 종친이 게재한 “부장공 후손의 집성촌, 김천 운곡”(제17 호)과 “김천 동영마을 경흥재(慶興齋)를 다녀와서”(제19호) 이다. 또한 운곡문중에서 게재한 “관산재(冠山齋)”(제9 호)이다. “김천시내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대구방향으 로 8Km 정도 가다보면 도로변과 운곡천 좌우로 자리한 운곡(둔골)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은 부상역의 관리들과 인근에 주둔하던 군사들에게 지급되는 둔토(屯土)가 있어 둔골(屯谷) 혹은 등골(等谷)이라고 불렀다. 원래 개령면 남면에 속했는데 1914년 운양과 둔골을 합한 후 운양(雲陽)의 운(雲)자와 둔곡(屯谷)의 곡(谷)자를 따서 운곡(雲谷)이라 했고, 1971년 둔골을 운곡1리로, 운양을 2리로 분동했다”라고 위상복(魏相復) 종친은 운곡의 유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전형적인 산촌마을 인 운곡은 임야가 80%이상이라서 농토가 매우 적은 그야말로 가난한 농촌마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체 180여가구중 120여가구 이상이 위씨로 구성된 집성촌이었다. 나머지는 위문의 재각인 관산재를 돌보는 일을 했었던 朴氏를 비롯한 다양한 성씨들로 구성되어져 있었다.

 

■“부장공(部將公) 대홍(大洪)할아버지는 1564년8월 12일 태어나 학문과 무예가 출중하여 20세에 무과에 등극 훈련주부(訓練主簿)의 벼슬로 임진왜란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부장(副將)으로 큰 전공을 세웠다. 운곡문중의 시제는 매년 음력 10월 10일 관산재 (冠山齋)에서 거행하는 데 21세조 부장공(部將公), 22세조 휘 추남(樞男), 23세조 휘 사징(師徵), 24세조 휘 춘환(春桓), 25세조 휘 명방(命邦), 26세조 휘 경숙 (慶淑) 할아버지의 재각이다”라고 제9호에서 소개하고 있다.

 

■大韓 大海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갑태종친은 27세 휘 치형(致亨), 28세 휘 영운(榮運), 29세 휘 인조(仁祚), 30세 휘 환(桓), 31세 휘 계구(啓龜), 32세 휘 계량(繼良), 33세 휘 병욱(炳旭), 34세 휘 성춘(聖春)의 후손 으로 3남4녀중 6번째이며 차남으로 태어났다. 11월 29일 태어나자마자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에 심한 감기 를 앓아 신체적으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매장 일보 직전 부활한 사건은 동네에서 지금도 회자(膾炙)되는 일화이고 위로 누나가 넷이나 되어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선천적으로 부지런해서 가족을 도와 땔감 나무하기, 소먹이기, 모심기, 가을 추수하는데 일손을 보태는 재간둥이었다. 손재주와 지혜가 남달라 조조(曺燥)라는 별명을 가졌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선친(先親)의 뜻에 따라 서울로 유학와서 성남중, 문일고, 한양대를 졸업했다. 현재 운곡 초등학교 동기생 동창회장을 맡고 있다. 동국제강 계열 사인 조선선재(주)를 다니다가 백화점 입점 과일사업과 환전사업 등을 경험했다. 基督敎人 할머니인 星州李氏의 영향으로 선친(先親)은 2004년 基督敎로 改宗 하기에 이르렀다. 선친은 마지막 생애 7년을 기독교에 투신하여 헌신했고 長老敎會인 운곡교회 성전증축때 선친(先親)의 유언에 따라 형제자매들이 힘을 합해 건축헌금을 하기도 했다.

 

■갑태종친의 취미는 야구광이다. 야구선수의 성적부터 선수의 가족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더 나아 가 전국 야구장을 찾아 다니는 수고로움도 마다않는 지독한 극성팬이다. 또한 선친의 영향으로 구리에 소재한 밀알교회를 섬기는데 오랫동안 차량봉사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선친(先親)인 성춘(聖春)종친은 훌륭한 인품을 지녔던 성량(性良)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문중의 전답과 임야를 비롯 재각을 돌보고 가꾸는 일에 전심을 다 했다. 성량(性良)할아버지께서는 南面 面長을 하시면서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동네 마을길을 청소하면서 집집마다 안위를 묻고 어려움을 나누는 운곡문중의 큰 인물이시다. 운곡의 사장나무인 느티나무 역시 성량할아버지의 지시로 선친께서 개령에 가서 지게에 지고와 식목하게 되었다. 現대구 파티마병원에 근무하는 위정복(正復) 종친은 “성춘(聖春)아재의 노고 때문에 그나마 운곡문중이 유지되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위진동(眞東) 기아자동차 前부사장 도 “성춘할아버지께서는 운곡문중 기파의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大宗會長 어르신의 신발이라도 들고 다녀라”라고 하신 선친(先親)의 뜻에 따라 갑태종친은 현재 [장흥위씨 재경종친회] 부회장과 [장흥위씨 재경청장년회] 대외협력팀 운영위원 을 맡고 있다. [근면, 인화, 친근, 온화]로 특징지어진 성격 으로 선조들의 얼과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의에서 부장공(部將公)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자문:백강/글:위상복,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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