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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종친회를 30년간 이끈 큰 바위 얼굴, 행림(杏林) 위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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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량 前대전종친회장의 호(號)는 행림(杏林)이다. 살구나무 숲이란 뜻으로 살구나무는 사람에게 많은 유익을 주어 귀한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나무의 신사로 불리기까지 한다. 호와 어울리게 행림(杏林) 前지회장은 한약업사로 평생을 국가와 사회에 봉사해왔다. 터전은 ‘대전시 동구 대전로 813번길15’에 소재하는 바로 ‘백제당 한약방’이다. 타향살이와 생업에 지친 위씨 종친들은 즐거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행림(杏林)을 찾아 상의한다. “행림(杏林)은 어떠한 것이라도 본인의 일처럼 문제를 숙고하여 금방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문제 해결자로서, 한편으로는 혈족으로서 멘토(Mentor)역할을 말없이 수행해온 정신적 지주이시다.”라고 재치(현동)종친은 살며시 귀띔한다. 또한 “행림(杏林)에게는 한 가지 철칙(鐵則)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큰 일을 할지라도, 어떤 비밀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새어나가는 일이 없다. 그래서 종친이라면 누구라도 흉허물 없이 행림(杏林)을 찾아 하소연해도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아름다운 성품을 지니셨다.”라고 호산(신복)지회장은 자주 말하곤 한다. 큰 바위 얼굴이란 1850년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이 발표한 단편 소설의 제목이다.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동경하는 것이 소설의 주제이다. 엄청난 물질이나 사회적 명성보다 자아실현이 사람의 진정한 가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장흥위씨 문중 내 큰 바위 얼굴은 바로 행림(杏林) 위기량 前대전종친회장을 지칭한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겸손의 미덕 또한 큰 바위 얼굴 어니스트를 연상케 하는 행림(杏林)의 주요 덕목이다.

 

대전에서 광주전남향우회장으로 4선(12년)을 지내면서 시작된 대전종친회를 1985년부터 30년간 묵묵히 변함없이 이끈 명장(名將)이다. 매월 1회 종친회모임을 갖는데 격월로 가족들도 참여하여 대종회 산하에서 가장 모범적인 지회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행림(杏林)의 원대, 겸손, 희생, 포용의 덕성의 결과물이다. ‘핏줄은 나의 삶의 원천이요 생명이다. 종친은 내 부모형제요, 내 삼촌이요, 내 당숙이다’라고 말하는 행림(杏林)의 얼굴에는 위씨문중 대전지회 반백년의 흔적이 큰 바위 얼굴처럼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매월 26일이면 어김없이 대전지회의 회원들이 이곳 ‘백제당 한약방’에 모여 인근식당으로 이동하여 정기모임을 갖는다. 1985년 대전지회 발족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참석회원은 가족별로 2만원씩 회비를 내는데 주로 행림(杏林) 前대전종친회장이 자주 식대나 대종회 행사비용은 부담하는 편이었다. 한푼 두푼 모인 자금으로 2008년 10월 11일 제막한 대전뿌리공원 위씨유래비 조성비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대전 뿌리공원에 장흥위씨 조형물을 세워 위문을 후대에 빛나게 했다. 2008년 10월 전국의 종친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흥위씨 유래비 제막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도문회와 대종회에서도 각각 오백만원, 사백만원을 부담했지만 나머지 약 삼천만원은 행림(杏林)을 비롯한 대전종친회원들의 손때 묻은 회비로 충당되었다. 부지선정과 토지작업, 조형물 작업, 조경공사, 제막식 등도 행림(杏林)의 철저한 감독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평상시에도 대전종친회 회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위씨 유래비를 돌보는 일에 모두 열중이다. 장흥위씨 유래비를 세운 자부심과 더불어 영원히 후손에게 전해줄 명품(名品)을 넘어 위문의 영혼(靈魂)이 깃든 성지(聖地)로 여기기 때문이다.

 

안항공파 내 청금公 자손인 故 계동(부친)公의 9남매 중 4째로 1939년 방촌에서 태어나 평생 대전에서 한약업에 종사해 왔다. 부인(손영순 女史)사이에 4男을 두었는데, 안경점을 운영하는 철(3男)만 제외하고 한(長男)과 경(次男) 및 광(4男)은 부전자전(父傳子傳)으로 한약업사에 종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손자(성빈)까지 한의대에 재학 중으로 위문 내외(內外)에서는 3代에 걸친 한약전문가 집안으로 불리고 있다. 체력관리와 비지니스로 골프를 주로 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노환으로 누워계셨던 어머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신 것 또한 위문의 귀감으로 기록되어지고 있다. (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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