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은 20세 곤(鯤)할아버지의 다섯 아드님으로 중조(中祖)로부터 21세손이며 첫째 덕홍(德弘), 둘째 덕의(德毅), 셋째 덕관(德寬), 넷째 덕화(德和), 다섯째 덕후(德厚)할아버지 즉 다섯 할아버지를 일컫는다.
첫째, 덕홍 할아버지 자손(子孫)은 판사공파(判司公派)
둘째, 덕의 할아버지 자손(子孫)은 청계공파(廳溪公派)
셋째, 덕관 할아버지 자손(子孫)은 운암공파(雲岩公派)
넷째, 덕화 할아버지 자손(子孫)은 판서공파(判書公派)
다섯째, 덕후 할아버지 자손(子孫)은 안항공파(顔巷公派)
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위 다섯 선조는 장흥군 관산읍 당동 112번지 현 경량(炅良) 종원의 생가 터에서 탄생하였으며, 오늘날 다섯 종파(宗派)로 구분되어 크게 관산파(冠山派)를 형성하고 있다.
이 터가 어느 때 가세가 기울러짐에 따라 수원 백씨 수중으로 들어가 도저히 되찾기 힘들게 됐다. 그런데 의재공(毅齋公)의 노력으로 시세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 되찾게 된 것이다. 실로 몇 백년만에 되찾은 오덕의 탯자리다.
문제의 집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뀐다. 오덕이 출생하시기 훨씬 이전에는 장흥 임씨가 살았다. 고려 인종(仁宗)의 왕후인 공예태후(恭睿太后) 가 탄생한 집터이다. 그리고 차씨(車氏)가 살 때는 형제 효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당동은 호남의 오대 명산인 천관산 동맥끝자락에 있다. 장천계곡 기슭에 자리 잡아 산을 배경으로 우측으로는 방촌에 접하고, 좌측으로는 옥산을 끼고 있다. 앞으로는 옥동을 바라보고 있어 살기 좋은 고장이다.
설촌 내력은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동은 1050년 백제 때 생긴 마을이다. 최초의 입촌은 장흥 임씨 시조 호(顥)다. 이어 탐진 최씨(崔氏). 장흥 위씨(魏氏). 연안 차씨(車氏). 인천 이씨(李氏). 수원 백씨(白氏) 영광 정씨(丁氏). 청주 한씨(韓氏). 광산 김씨(金氏)등 성씨(姓氏) 가 그들이다.
그러나 장흥 임씨. 탐진 최씨. 인천 이씨. 연안 차씨 4개 성씨는 출향하여 현재는 살지 않는다.
다만 임씨는 공예태후를 기리기 위해 사우를 지어 위패를 봉안하고 철 따라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