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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원감국사 기제 참례기/위상복

원곡 2016.02.25 09:41 조회 수 : 365

2016 원감국사 기제 참례 후기

 

지난 2월 17일(음, 1월 10일) 송광사 감로암에 다녀왔다.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冲止, 1226~1292)스님의 기제가 사시(巳時, 9:30~11:30)에 제향되기 때문이다. 대종회에서는 씨족문화연구소(소장 위정철) 연구위원을 중심으로 5명이 참례하였다.

약속 시간인 9시 30분 송광사 매표소 앞에서 만나 10시경 감로암에 도착하였다. 감로암 무량수전에는 미리 도착한 신도들의 봉사로 제수를 진설하고 내방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부처님과 원감국사 진영에 차례로 인사를 올린 후, 주지인 일화스님 방에 들러 인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지 스님과 담소 후, 다시 제향 장소인 무량수전으로 가자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에 따라 의식이 진행 중이었다. 정초 기도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기도 종료 후, 곧 이어 국사에 대한 제향이 시작되었다. 제수 진상이나 제례 순서는 일반 시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체가 3배를 올리고 기도 후 스님, 종친, 일반 신도 순으로 술 대신 차를 올려 절을 하였다. 차를 모두 올린 후 주지 스님을 대신한 원로 스님의 인사 말씀이 이어졌고, 전체 3배를 하면서 종료 되었다.

제향을 끝낸 후 일행은 신도들의 안내로 바로 옆의 요사채인 식당으로 향했다. 원래 참석 종친끼리 송광사 주차장 부근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계획했었지만, 감로암에서 해결한 것이다. 식당에는 스님, 종친, 그리고 일반 신도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정갈하게 차린 사찰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 과일과 떡을 한 봉지씩 얻어 식당을 나왔다.

식사 후 다시 주지 스님 방에 들러 일화스님을 비롯하여 고경스님, 대경스님 등과 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송광사 성보박물관장이신 고경스님은 일찍부터 원감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많이 하신 분이다. 그런 만큼 국사에 대해 들려주는 해박한 지식도 놀라웠다. 대화 중 오간 내용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월남사지의 진각국사비에 관한 것이다. 강진 월남사지(月南寺址)에는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 보물 제313호)가 있다. 편마암의 석비가 오랜 풍상에 깨지고 마모되어 비신의 앞면은 판독이 전혀 불가능하나 비의 뒷면에 지름 3.3㎝ 정도의 글자 30행 600여 자가 남아 있다. 전체 높이 3.58m, 비신 높이 2.6m, 너비 2.3m 규모로, 고려 고종 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는 월남사 중건주(?)인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비문에 원감국사와 관련된 소중한 기록을 담고 있는 비석이라고 한다. 원감국사는 속명이 위원개(魏元凱)로, 장흥위씨 6세조 위소(魏沼)공의 장남이다. 비문에 따르면 위소공은 진각국사를 따르는 100여명의 주요 신도 가운데 한사람으로서 호부원외랑을 역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을 담고 있는 비석이라고 한다.

둘째, 송광사 티베트문서(티베트文 法旨)에 관한 것이다. 송광사 성보박물관에는 13세기 이래 전해 내려오는 티베트문 법지(法旨, 보물 제1376호)가 있다. 이 법지는 원감국사께서 충렬왕의 명으로 원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조 쿠빌라이로부터 받아온 것이라 전한다. 지금까지 송광사에서는 이 문서에 대해서 ‘원감국사가 몽고에서 귀국할 때 그 신분을 보장하던 여행증’ 이라고 구전되어 왔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당시 원나라와 불교 교류가 활발했던 고려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기도 했다.

최근 일본인 서지학자들의 연구 결과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원감국사께서 세조 쿠빌라이에게 「청전표(請田表)」를 올려 어려운 사원경제를 알리고, 빼앗겼던 전답을 되돌려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왔다. 장원 급제 후 외교관으로도 근무했던 국사의 빼어난 표문을 인정했기에, 황제가 대도로 초빙하여 선물한 것이다. 즉 이 법지는 원나라의 일본 정벌을 위해 막대한 전비와 군수물자를 감당해야 했던 당시, 예외없이 빼앗겼던 송광사의 전답 등을 되돌려주라는 황제의 제서(帝書)로 밝혀졌다. 원감국사는 이 법지를 통해 빼앗겼던 송광사를 되찾은 것이다.

셋째, 송광사 국사전의 원감국사 진영에 관한 것이다. 송광사 국사전의 원감국사(圓鑑國師) 진영을 자세히 보면 자각국사(慈覺國師)라고 적혀 있다. 대신 자각국사 진영에는 원감국사라고 되어 있다. 두 분 국사님의 진영 이름이 바뀌어 표시된 것이다. 따라서 강화 선원사나 몇몇 인터넷 웹에서도 진영에 대한 오류를 볼 수 있다.

이는 1995년 국사전 16진영 중 13점을 도난당하여 영인본이 전시되면서 일어난 것이다. 원래 두 분 국사님의 이름이 바뀌어 종이로 덧붙여 바로잡아 놓았으나, 영인본이 전시되면서 덧붙인 종이가 사라져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국사전의 영정은 영인본이었고, 이름도 틀리게 적혀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지난 해 부터 착수한 국사전 영정 복원사업이 조만간 마무리되면 수정될 것이라고 한다.

넷째, 능견난사와 장흥 마애여래좌상, 그리고 묘적암에 대한 것이다.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능견난사(能見難思, 전남유형문화재 제19호)는 원감국사께서 원나라에 다녀오실 때 가져온 것으로 백과사전 등에 알려졌으나, 금나라에서 가져온 보조국사의 유품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또한 『조계산송광사사고』의 「원감국사일적」에 따르면 장흥 구룡리 병풍바위의 마애여래좌상(전남유형문화재 제193호)도 원감국사의 진형(眞形)이라 전해왔으나, 최근 학계에서 정밀조사를 한 결과 부처님을 암벽 표면에 새겨 놓은 마애여래불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원감국사의 입적 장소가 묘적암(남암)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는 확실치 않고 감로암에서 입적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큰 스님의 입적 후에는 사리탑 옆에 작은 암자를 지어서 탑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명탑 조성 후 암자인 묘적암을 건립하여 탑을 지켜온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보명탑 남쪽의 묘적암이 조만간 복원될 계획이라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1시간 정도의 대화를 마치고 난 뒤, 2시가 채 못되어 경내를 벗어났다. 갑자기 내린 폭설 때문에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힘든 일정이었지만, 이번 씨족문화연구소의 감로암 방문은 많은 의미를 느끼게 했다. 마음속 깊이 소망했던 것이기에 원감국사님의 기제 참례는 위씨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묘한 시간이었다.

송광사 16국사 중 종친회와 제대로 연결이 된 국사는 6세조 원감국사(장흥위씨)와 13세조 각진국사(覺眞國師, 고성이씨) 뿐이라고 했다. 물론 출생과 사망 연대가 분명한 분이 많지 않고, 출생지와 성씨가 분명한 분도 많지 않다. 특히 과거시험에 장원급제 하고 관리로 재직한 분은 원감국사가 유일하다.

국사전이 있는 송광사에서는 보조국사 기일인 3월 27일(음)에 16국사를 모두 제향하고, 그 외에는 각 국사의 기일이 속한 달의 초하룻날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원감국사는 1월 10일(음)이 기일이니까 1월 1일이 송광사 제향일이다. 하지만 고성이씨 종친회는 송광사에 부탁하여 매년 기일날 국사전 각진국사의 진영 앞에 제수를 차려놓는다고 한다.

일행이 헤어진 뒤 곧장 장흥에 계신 종친회 어른들께서도 송광사 감로암에 다녀가셨다. 원감국사 기일을 맞이하여 10명 이상의 많은 종친들이 찾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언젠가는 장흥위씨 종친회에서도 원감국사 기일인 1월 10일(음)에 송광사 국사전의 진영 앞에 제수를 올리길 기대한다. 아울러 송광사와 감로암의 기일만이라도 많은 종친들이 원감국사를 찾아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씨족문화연구위원 위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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