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공 고향 ‘弘農’은 어딘가
▲圓山 위정철/전기편찬위원
○己卯初譜(1759년): 『大阿飡魏公諱鏡新羅太宗時官門下拾非侯大阿飡東國之有魏氏蓋自公始而年代旣遠文獻無徵鳴呼惜哉魏氏自高麗時己居遂寜公之爲遂寧人可以追認然公之後失系約三百餘年其實錄旣無傳只得依舊譜書之以俟後人焉,謹按舊譜云公自中國來佐爲大匡公主陪臣官大阿飡關西弘陵村或云以唐關西弘陵人爲大匡公主陪臣出本國官大阿飡封懷州君前說近是』
○己卯族譜(1999년): 『大唐 關西 弘農人으로 新羅 善德女王 7년 戊戌 638년 즉 唐 貞觀 12년에 出來本國하여 관이 阿飡에 이르고, 麗朝 忠宣王 때 懷州君에 封하여지니 회주는 지금 長興이다. 신라 선덕여왕이 도예지사(道藝之士)를 청함에 당태종이 방·위·홍·목·기·은·길·봉 8학사를 파견하다. 출국시에 각기 일련구(一聯句)』를 지었다. (이하 생략)
이상은 1759년과 1999년에 발행된 시조공조의 기록이다. 많은 변화를 볼 수 있다. 태종시대가 선덕여왕 때로, 배신 자격이 도예지사로, 품계가 대아찬에서 아찬으로, 홍릉이 홍농으로 바꿔졌다. 초보의 기록이 거의 바꿔진 것이다. 그러나 초보 이후 7차례나 발행됐지만 아직도 미흡한 대목이 많다. 특히 시조공의 출신지는 여전히 시원치 않다. 시간이 흘러도 더 이상은 몰랐기 때문일까.
족보는 30년 주기로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묘초보는 시조공이 동래해서 정착한지 1121년이 지난 후 최초로 만든 족보다. 이전에는 가문별로 가승(家乘)이 있는 집도 드물었다. 고증할 자료도 부족하고 공부한 종친도 많지 않았을 때였다. 오로지 영이재공(詠而齋公)의 부자만 노심초사했을 터이다. 족보서문(序文)을 실제로 발행하기 18년 전에 쓰셨던 점으로 미루어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관서 홍농은 과연 어디인가. 홍농의 위치는 중국 하남성 영보(靈寶) 동북쪽이다. 즉 허난성 싼먼샤시 링바오시 한구관진 멍촌(河南省三门峡市灵宝市函谷關镇孟村)이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관문이었다가 진나라에 빼앗긴 원조 함곡관이다. 효산(崤山)의 함곡은 산세가 매우 험준했다. 모양새가 마치 상자모양처럼 생겨 효함(崤函) 또는 함곡관(函谷關)이라고 불렀다.
▲구 함곡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함곡관을 뤄양시(洛陽市) 신안현(新安縣) 리우안(柳灣)으로 옮겨서 지었다. 그리고 이름을 한관(漢關) 또는 신(新)함곡관이라 불렀다. 무제 원정 4년(기원전 113년) 때 홍농군 인구는 11만 8091호에 47만 5954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기원전 8년 홍농군의 속현은 원연·수화 등 모두 11개현을 관할했다. 당시도 많은 인구가 살았다.
▲신 함곡관
함곡관에 전설이 많다. 노자(老子)가 그곳으로 나간 뒤에 자취를 감췄다. 출관 전 윤희(尹喜)에게 5000자의 책을 줬는데 그것이 '도덕경'이다. 이곳에 황금색 노자동상이 세워진 이유이다.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탈출할 때 밤이라 문이 닫혀 나갈 수 없었다. 식객이 닭의 울음 소리를 내 수비병들이 동이 튼 줄 알고 문을 열어 무사히 탈출했다. 고사성어 계명구도(鷄鳴狗盜)가 생긴 배경이다.
이를 근거로 보면 시조공의 출신지는 하남성 홍농군이 분명하게 보인다. 족보의 발행 주기는 보통 30년이니 다음 족보의 발행시기는 2029년 안팎이다. 물론 종이 족보를 다음에도 발행할지는 지금은 단정할 수 없으나 발행한다면 6년 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다만 문중기록들은 족보 발행여부와 관계없이 오류는 바로잡아져야 한다. 상계 선조들도 또한 사실에 근거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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