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징과 위계정의 DNA
▲圓山 위정철/전기편찬위원장
태종 이세민(李世民, 598~649)은 626년 6월 ‘현무문(玄武門)의 변’을 일으켰다. 태자이자 친형 이건성(李建成)과 동생을 제거한 태종은 형을 따르던 핵심 참모이자 태종을 늘 위기로 몰아넣던 위징(魏徵, 580~643)도 체포했다. 이세민은 그를 보자마자 “네가 우리를 이간질했으니 살기를 바라지 말라”며 큰 소리로 위협했다.
위징은 오히려 태연하게 말했다. “황태자께서 내 말을 들었더라면 어찌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났겠는가!” 자신의 계책을 따랐더라면 왕위쟁탈전에서의 패자는 이세민이라는 의미였다. 이세민이 위징의 말을 듣고 단 아래로 내려와서 위징의 포박을 풀었다. “나를 도와 일해 줄 수는 없겠소” 굽힘 없는 기개에 반한 것이다.
이세민이 위징의 손을 꼭 잡았다. 『정관정요』에 태종의 업적 이외에 위징의 활약상도 담겨저 있다. 어느 날 황제에 대한 시중이 소홀하다며 처벌했다. 이를 목도한 위징은 폐하께서 사치와 호화로운 것을 좋아하시기에 시중을 처벌하신 것입니다. <중략> 만약 폐하께서 오늘보다 만 배가 좋더라도 만족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위징의 말을 들은 태종은 집요하고 서릿발 같은 비판에 발끈했다. 그리고는 “이 늙은이를 죽여 버릴 테다”고 버럭 화를 내다가 이내 간언에 귀 기울였다. 위징이 죽자 태종이 “옛것을 거울로 삼는다면 흥망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잘잘못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짐은 거울을 잃었도다.”
고려의 위계정(魏繼廷, 1038?~1107)도 위징에 못지않았다. 1086년(선종 3) 11월 예부시랑일 때 왕을 수행해 법왕사 팔관회에 참여했다. 왕이 환궁하던 중 날씨가 개자 종친들에게 술잔을 올려 축원하게 했다. 위계정은 “왕족들이 술 마시며 놀고 있는 모습은 결코 조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주청해 중지시켰다.
그가 1088년 어사중승일 때의 일이다. 왕의 애첩 만춘(萬春)이 화려한 집을 짓자, 왕에게 “만춘이 전하를 기만하고 유혹했으며, 백성들에게 괴로운 부역을 부과하여 사제를 신축했으니, 그것을 허물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직간했다. 하나 왕은 어사중승의 주청을 듣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벌을 주지도 않았다.
추밀승선일 때도 왕의 명령을 거부했다. 연등 또는 관등절에 왕이 연회를 베풀었다. 선종이 거나해지자 승선 계정에게 춤을 추라고 명령했다. 이때 그는 “왜 광대(佞人)가 있는데 제가 춤을 추겠습니까? 전하의 명령이라도 못 하겠다”고 했다. 신료들이 놀라서 폐하의 말씀이 아니시오하며 춤을 추라고 권유했다.
연회장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아주 어색해졌다. 그래도 위계정은 정색을 하며 대신들에게 말했다. 일찍이 증자(曾子)가 말씀했습니다. 비록 전하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예’ ‘예’만 하면 그 나라는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도 주연을 그만뒀다.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아 不可尙書라 했다.
당나라 위징과 고려 위계정은 위씨의 자랑스러운 선조이다. 지위는 달랐지만 국가와 백성들을 위해 멸사봉공했다. 두 사람은 임금이 잘 못하면 어떤 경우에도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DNA가 흐른다. 태종과 선종도 듣기 싫었지만 그들의 간언을 들으면 시정했다. 그 임금에 그 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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