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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위씨 장천문중 곡성현감공파 종중⋆⋆


장천문중 내 宗派는 谷城縣監公(諱 大成)派다.(기묘보 1卷 p117∼204) 公은 仁遜의 子요 晉寶의 孫이며 習讀公 由亨의 曾孫이다. 生終年 미상이고 묘소는 장흥군 남면이다.(실묘 되었다.)  

1. 주요행장 (1999년 己卯譜 誌狀錄 p103 존재공 작성 忠義錄 내용)
都摠(武科)經歷으로 丙子胡亂(1636∼1637)을 당하여 1)東宮이 瀋陽으로 들어가는데 2)익위사(翊衛司) 관원을 모두 무신만 뽑아서 任命하니 무신이 모두 분이 나서 성을 내어 말하기를 평상시에는 3)桂坊의 좋은 벼슬은 문관이 모두 탈취(奪取)하고 이제 멀리 사지에 가는 때를 당하여서는 도리어 우리들을 가게 한다고 하면서 명령에 응하지 아니하니 公이 홀로 큰소리로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비록 임금의 명령이 없더라도 마땅히 앞을 다투어 자청해야 하거늘 항차 좋은 벼슬을 주어서 명령하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가? 臣은 말고삐를 잡고 마음을 다해 도와 護衛할 것을 청하며 비록 피를 요동 땅에 바를지라도 사양하지 않겠노라”하니 듣는 자들이 모두 장하게 여기었다. 左翊衛로써 瀋陽에 들어가 온갖 고초를 겪고 東宮을 모시고 돌아옴에 고향과 가까운 地方官으로 임명하여 곡성현감으로 부임한지 얼마 않되 병으로 終하였다.
       
1)동궁 : 왕세자 소현세자를 말한다.
2)익위사(翊衛司) : 왕세자(소현세자)의 侍衛를 맡은 관원
3)계방(桂坊) : 동궁이 있는 곳, 왕세자 익위사의 별칭

※ 의문점 : 公의 행장과 충의록에는 生終年이 수록이 되어 있지 않아 주변 선조들의 태생을 확인 해본다. 21세의 6촌 再從형제들은 公을 포함하여 모두 12분(3분 后无)으로 최고 연장이신 판사공(諱 德弘)의 생년이 1537년이고 최연소는 안항공(諱 德厚)으로 1556년 태생이다. 나머지 7분께서는 그 사이에 태생하셨다. 22(廷字)세 公의 子(諱 後徵, 生終年 미상)를 포함한 7촌 再從姪은 17분으로 이중 최고 연장은 판사공의 長子이신 廷望 公으로 1558년생이고, 최연소는 주부공(諱 德男)의 子 蔭宣務郞公(諱 廷佑)으로 1598년 태생이다. 나머지 15분께서는 그사이에 태생하셨다.

公과 8촌에 해당되는 행원문중 내 21세(大字)선조님 경우는 17분(9분 后无)이시다.최고 연장이신 괴봉공(諱 大用)의 생년이 1530년이고, 최연소는 부장공(諱 大洪)으로 1564년 태생이다. 나머지 6분께서는 그 사이에 태생하셨다. 22세의 경우 9분으로 최 고 연장은 괴봉공의 장자이신 守靜堂公(諱 弘宙)으로 1558년 태생이고 최연소는 營將公(諱 大經)의 子 南隱公(諱 孝徵)으로 1603년 태생이다. 나머지 7분께서는 그사이에 태생하셨다.
장천문중과 행원문중 산하 종중 내 21∼22세 선조님들의 태생 시기가 비슷하다.

그런데 公께서는 관산파 장천문중 宗派(큰집) 21세손이다. 당대에는 연령 20세 안팎이면 혼례를 하였다. 부친이신 20세 仁遜 (1500∼1510년 태생 추정)公께서 公을 늦게 보았다고 하더라도 조카들에 해당되는 22세 선조님의 연령 때에 태생하여 병자호란 종료(1637년) 후 소현세자를 侍衛하시고 심양에 다녀오셨는지? 생년과 행장에 대해 의문점이 많아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다 사료된다.
(丙子胡亂과 관련 功을 세우신 22세 청금공(諱 廷勳 1578∼1652), 병조참판공(諱 廷喆 1583∼1657), 반계공(諱 廷鳴 1589∼1640)있다.
               


2. 후손들의 분파 및 주요 세거지 내용
  公과 22세 후징(後徵)때에는 장흥 관산, 용산에서 살았음이 추정된다. 23세 인지(麟趾)때에 京城으로 이거하였고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철계교 동쪽 산이다. 24세 세두(世斗)때에는 행장이 미상으로 묘소는 考塋下이다. 차자는 연(連)으로 묘소는 같다. 25세 명만(命萬)은 묘소 상동 명백(命百)은 실묘 용(龍)은 묘소가 각심사로 일정한 주거지가 없음이 추정된다. 26세 때부터 곡성⋅담양, 서울 종로⋅은평, 강원도 영월로 일정한 터를 잡아 정착하게 된다. (종손 34세 성민)

1) 곡성⋅담양지역
 26세 상환(相煥), 상필(相弼)계열는 31세손까지 곡성과 담양 남면 율전, 창평면 장화리, 순창 금과 내동에 정착 거주하였다.
 ① 근 ⋅현대인물
  - 계후(啓厚 1884∼1944) : 31세 號는 海人이며 광주농업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영광중학교 설립하여 영광을 비롯하여 주변 장성, 정읍, 고창지역에서 항일 독립운동 및 계몽운동을 하시다가 투옥 후 終하셨다. 독립유공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
  - 계룡(啓龍  1921∼    ) : 31세 號는 愚頂이며 보성전문학교 졸업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여 독립유공건국훈장애족장을 수상하였다.
  - 증 (增 1933∼ ) : 32세 啓厚의 子로 號는 雲河이다. 월간 호남주간 및 광주매일일보 논설위원 역임 장흥위씨 보의론 연구위원회 위원장.
  - 홍걸 (鴻傑 1930∼    ) : 33세 啓厚의 孫이다. 전남대 문학사며 교수역임 및 동백장 수상.  

2) 서울지역
  24세 연(連)의 孫이며 25세 용(龍)의 長子인 26세 인립(仁立)때부터 36∼38세 현제까지 서울 종로, 은평구 등에서 거주하고 있어 “京派”라고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종친들도 있고 6.25사변 당시 35세손 일부는 형제 손이 거주하고 있던 강원도 영월로 피난을 가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 종친도 있어 1950-60년대까지 교류가 있었음을 추정해본다. 26세∼33세간 대부분의 선조 행장에서 生終年이 수록되어 있지 않았으나, 벼슬 관직은 配를 포함하여 빠짐없이 수록 되어 있다. 해당 후손들은 선조에 대한 관직의 근거자료가 있으면 당당히 제시하고 검증 받아 수록함이 당연하다. 후손으로써 선조에 대한 숭조는 근본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실제 조상이 관직을 역임하지 않았음에도 수록하였으면 이는 허구 일뿐이다.
 ① 근⋅현대인물
  - 기훈 (基勳 1969∼     ) : 36세 극작가이다. 2001년 검정고무신으로 삼성문학상을 수상 및 바보 신동섭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 서현 (1979∼   ) : 37세 父는 基永이다. 이화여대 역사교육학과 졸업 및 2003∼현 KBS 방송국 아나운서          

3)강원도 영월군 서면 신천리
 24세 연(連)의 孫이며 25세 용(龍)의 次子인 26세 의립(義立)때부터 정착하지만 27세 진창(振昌), 28세 태유(泰裕)까지 행장이 전무하고 실묘되어 주거가 불안정함이 추정된다. 29세 천위(天輝), 도상(道祥)과 30세 구징(龜徵), 구복(龜福)은 모두 영월에 신천에 거주하면서 안정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31세 후종(厚琮) 계열은 35세 이환(利煥)과 도환(道煥), 상환(常煥) 과 또 다른 31세 후진(厚珍) 계열 34세 종갑(鍾甲), 35세 영하(榮河)때인 1936년 마을이 큰 수해가 발생되어 후종 계열은 충북 제천으로 후진 계열은 강원도 평창으로 각각 이거하였고, 다른 31세 성범(聖範)계열은 신천에서 거주하다가 근래에 각지로 흩어져 후손들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모르는 실정이다.  
 ①  근⋅현대인물
 - 재선(在善 1912∼ 작고) : 36세 영월농협조합장 역임.
 - 재두(在斗 1928∼     ) : 36세 중앙대경제학사며 농협중앙회상무 역임.
 - 강석(岡錫 1955∼     ) : 37세  원주경찰서장



3. 후손들의 과제
 - 곡성현감공파 종중은 장천문중의 종파이다. 1999년 기묘대동보 발행시 본향에 거주 후손이 없고 宗中 勢가 미약해 편찬 임원에 참여 종친도 없었다. 또한 지역 수단유사 활동도 미미하여 정확한 선대의 행적 및 일부 후손 수록이 반영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더군다나 파조이신 현감공의 묘소도 실묘 되어 제향 행사도 없다. 종손 집안인 담양과 서울지역, 영월지역 후손들은 오래전에 선조들께서 分孫되어 각 지역에 정착하여 생활하다보니 내왕도 없어 서로가 같은 집안 후손임을 잊고 살았다.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이제라도 서로가 만남이 필요하다. 단시일에 어렵겠지만 장흥위문 행사중 가장 근본적이고 후손이면 누구나 한번은 참석해봐야 할 5월 평화 五顯大祭에 참여하여 후손들 간에 자연스런 만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본향에 인접하고 종손 집안인 담양지역 후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 서울지역 종친은 36∼38세이다. 본향을 모르는 종친들이 많아 여행삼아 장흥지역 답사를 권유해본다. 선조의 업적, 공적의 자료가 있으면 학계 및 장흥위문 내의 고증을 거쳐 차후 족보에 반영하여 후손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 강원도 영월 출신 종친들은 36∼38세로 이름에서 본향 항렬을 쓰지 않고 있다. 강원도 춘천 등에 儒士公(諱 天保)派 후손과 關北派 후손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 후손들은 36∼39세손이며 在字 돌림을 쓰는 종친들이 있어 곡성현감공파 후손인줄 모르고 儒士公派 孫 또는 關北派 孫이라고 말하는 종친이 대부분이다. 이를 시정키 위해서는 대종회 차원에서 춘천종친회와 협조하여 종친들에게 장흥위문에 대한 기초자료 홍보가 절실히 요구된다.
※ 곡성현감공파 종중에 대한 중요 자료가 없어 사진을 게제하지 않았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판서공파 13대손 栢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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