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형 대종회장 12년 업적
2010년 04월부터~2021년 12월까지 12년을 재임했다. 범곡 위찬호 대종회장을 이어 7~10대 장흥위씨 대종회장으로 봉사했다. 사람중심의 민주적 리더십, 시대적 소명에 따른 디지털사고로 씨족을 중흥시켰다.
A) 자산분야
1. 대종회관 구입
서울 강남구 논현동 203-1번지 거평타운 40평의 오피스텔 1715호를 선택했다. 매입가는 3억5천만원. 당시 대종회가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 계약금 5천만 원을 주고 입주키로 했다. 논현동을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서울의 중심이라서 투자가치가 높다는 점이다. 둘째는 접근성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규모가 적정하다는 점이다. 회관은 대종회 명의로 등기했다. 혹시라도 재산을 놓고 미후에 벌어질 수 있는 다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전세살이를 2012년 5월 31일 드디어 전국 종친들과 함께 입주식을 가졌다. 후손들의 간절한 숙원사업이 22년 만에 풀린 자리라 화기애애했다.
B) 조직분야
2. 지회, 상설기구, 동호회창설,
인천종친회, 천안종친회 발족, ‘청장년협의회ʼ창설, 미래발전협의회 발족, 다양한 동호회(위씨골프회, 장원봉산악회, 문예연합회)를 발족했다.
3. 수련회 대폭개선,
우선 참가자의 개선책이다. 어떤 행사도 참가자가 적으면 김빠진 맥주이기 마련이다. 이 점은 범곡 때부터 고민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송담은 수련대상을 학생 이외 종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참가자에게 일정액의 참가비도 내게 했다. 3박 4일을 2박 3일로 줄였다. 가히 획기적인 개혁이 아닐 수 없다. 수련생이 20여 명 수준에서 50여 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어쩌면 이는 “꿩 먹고 알 먹는다.”는 속담을 떠올린 한 기발한 방안이기도 했다.
4. 끊긴 계파 간 연결주선과 집성촌 순례
후손들은 모두가 한 시조의 핏줄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계파 간에 친소(親疏)는 있을 수 있다. 장흥위씨는 16세부터 분파가 이뤄지면서 21세에 이르러서는 30개 계파로 갈렸다. 그러나 일부는 상계에서는 한 부모의 자식으로 형제간이었음에도 후손들이 어디에서 사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들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신경을 썼다. 또한 송담은 2003년 10월부터 전국의 세거지를 5차례나 찾아다니면서 현장을 중시하는 정책을 표방했다.
C) 문화분야
5. 위씨소식 창간,
소식지는 1호부터 23호까지는 4면이었다. 그러나 넘쳐나는 소식과 종인들의 열망으로 24호부터는 8면으로 증면했다. 기존 ‛장흥위씨종보ʼ는 1년에 한번 발행되어 씨족문화 창달에 목적을 두는데 반해 소식지는 전국에 흩어진 종친들을 하나로 묶고 서로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두었다. 전국의 세거지별로 탁송하는 한편 서울 등 수도권은 재경종친회를 통해 개인별로 발송하는 배부방식을 통해 대종회의 활동상과 종친의 동정을 전했다.
6. 종보 12권 발행,
재임기간 동안 거르지 않고 12년간 종보를 발행했다. 내용도 특집호 발행, 논문, 편집면에서 지대한 진보가 있었다.
7. 보정판 요람 발행,
저자는 보의론 전문연구위원이다. 보의론을 놓고 250년간 다퉜던 쟁점들에 대해 연구위원회가 전원일치로 정리했다. 그리고 문중 총회에서 이론 없이 추인했다. 당연히 초판과는 족보상계의 중요한 사실이 바꿔졌다. 게다가 다른 부분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정판을 낸 것이다.
8. 사우제각 동영상 제작
송담은 문화재를 영상으로 제작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런데 위상복 씨족문화연구위원은 오래 전부터 회주사 등 전국의 위씨 유적을 촬영하고 있었다. 안성맞춤의 기회랄까. 송담은 상복 위원에게 ‘위씨, 그 2600년 역사 뿌리를 찾아서ʼ란 제목으로 씨족사 동영상을 제작토록 부탁했다. 그 결과 동영상은 위성(魏姓)의 연원, 장흥위씨의 정착사와 세계, 분파와 집성촌 등 문화유적 유물과 씨족사의 발전상을 영상으로 담아 기록으로 남겼다.
9. 수련회 교재 재발행,
장흥위씨 유래, 장흥위씨 삶의 뿌리를 찾아서, 문중을 빛낸 자랑스러운 선조 20분을 업적에 따라 세분화했다.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찾아서, 위문을 빛낸 주역들, 족보의 기원과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체계는 2009년판을 따랐으나「2019년판」은 회주사를 표지로 B5판형 기준 140쪽 분량이다. 내용은 경박단소(輕薄短小)한 글과 만화 및 에피소드 등을 첨가해 전체적으로 청소년들의 구미에 맞도록 편찬하면서 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했다.
10. 모선주역전기편찬
「대종회 모선주역 전기편찬회」는 2019년 3월에야 발족됐다. 일천하지만 상당한 성과물을 내놓고 있다. 편찬회는 “문중을 위해 헌신한 종친들의 빛나는 업적을 다룬 전기를 통해 영원히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것이다. 과문인지 모르나 명문에서도 없는 조직이라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이는 “문한의 전통을 잇는 한편 명문으로의 도약을 위한 포석”이다.
11. SNS를 통한 홍보강화
장흥 위씨 홈페이지 재개설, 장흥 위씨 밴드개설, 위씨네카페와 원산 위정철 카페를 개설, 씨족문화를 진작하고 있다.
D) 한중교류분야
12. 중국위씨와의 교류실현
거대한 중국은 한국과는 달랐다. 우여곡절 끝에 한 지역을 찾았다. 1차로 종친 21명이 2012년 10월 25일부터 4박 5일의 일정으로 위징(魏徵) 탄생지인 거록현을 방문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주운 듯 중국 위씨와 비로소 긴밀한 교류의 단초를 열었다. 2차는 2015년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4박 5일간 하남성 개봉(開封) 본촌을 다녀왔다. 3차는 2018년 9월 11일부터 4박 5일간 전국시대 위나라의 대량국(大梁國)의 수도와 정주(鄭州) 등을 답사했다.
E) 기타분야
13. 성자표기 통일원칙 마련,
한자의 성씨 표기는 보의론에 버금가는 논쟁거리였다. 붓이 아닌 컴퓨터로 워딩하는 세태에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여러 해에 걸쳐 도문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 서줄 것을 구했다. 그럼에도 요구에 응할 자세를 보이지 않자 씨족문화연구소장과 법조출신으로「성자표기 통일화 특별위원」을 위촉,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설문조사 등 여론을 집약하는 한편 魏字에 대한 자료수집, 조사, 분석,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표기를 확정했다.
14. 號 사용문화 정착
우리 문중은 종친마다 호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다. 회주사에 열린 도문회의 각종 회의에서도 사회자가 참석종친을 소개하는데 호를 앞세우고 뒤에 이름을 부른다. 다소 고리타분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선비문화라서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젊은 종친들도 싫지 않았던지 적지 않게 아호를 가지는 추세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문풍(門風)으로 자리 잡아도 결코 싫지 않은 정서다.
15. 코로나19사태 대처
코로나19사태로 문중의 모든 업무가 마비된 가운데 이를 타계하는 수단으로 하계수련회를 비대면 ZOOM영상으로 실시해 29명을 수료시켰다. 또한 제11대 대종회장 추대를 위해 불가피하게 개최해야 하는 운영위원회를 씨족 최초로 라이브영상을 송출해 “열린문중, 참여씨족”이라는 가치를 표방했다. <원산 위정철 전기편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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