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재公은 장흥위씨 25세, 안항공파로 1704년 장흥출신이다. 아버지 삼족당公과 아들 존재公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에 그 존재가치가 크다 하겠다. 최초로 문회를 창설하고 장흥위씨 족보인 기묘초보를 처음 만든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장흥위씨요람(2019, 보정판)에서는 “충렬공 묘소를 1740년 장흥 북동쪽에 위치한 제암산(帝巖山) 기슭에서 찾았다. 이때를 계기로「문회(門會)」라는 이름의 조직을 출범시켜 도유사(都有司)를 맡은 것이다. 이후 1741년부터 시제를 지내고, 족보 발행에 따른 준비도 병행해 나갔다. 그리고 아들 존재로 하여금"화수종회규칙"도 마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