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일원 옥계리와 상가리 방문
병계 선생은 1683년(숙종 9) 12월 5일 한양에서 태생하여 85세가 되던 1767년(영조 43) 11월 7일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서 종(終)하였다. 선생의 선대는 관향(貫鄕) 파주시 일원에서 여러 거주 흔적이 현존하며 선생부터 이하의 후손은 옥계리에서 거주함이 확인되고 있다. 왜 ? 선생께서 옥계리에 정착 거주한 연유에 대해서 직계후손, 파평윤씨 대종회, 소정공파 문중 관계자도 알 수 없다고 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 옥계리 배산(背山) 가야산(해발 677m) 지역은 풍수설에서 지형과 산수가 뛰어난 길지(吉地)이다. 가야산이 품고 있는 앞뒤의 서산, 해미, 태안, 면천, 당진, 홍주, 덕산, 예산, 신창 등 10고을 지역을 내포(內浦)라고 한다. 당대 육로 교통이 불편하였던 시절 내륙 깊숙이 올라온 바닷물에 의해 해상교통이 발달하였다. 서해안 뱃길을 이용 한양에 접근이 용이한 지역이라서 내포의 중심이 되는 진산(鎭山) 가야산 아래에 선생의 정착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또 다른 연유로는 선생의 파평윤씨 집안은 성리학 기호학파 이 이·성 혼~김장생~송시열~권상하~윤봉구 선생으로 이어지는 노론 계열이다. 특히 선생의 5대조 윤인함의 행장, 고조 윤홍립의 묘갈명, 조부 윤비경의 묘갈명·신도비명을 우암 송시열 선생이 찬(撰)하였다. 조부 윤비경은 우암 송시열 선생과는 지기로 1660년(현종1) 장령으로 있을 때, 효종 사후 대왕대비의 복제문제를 놓고 송시열 선생 등 서인의 1년설과 윤선도 등 남인의 3년설이 대립하자 윤선도의 상소를 예론에 거짓으로 의탁한 흉계라고 극론하며 국문할 것을 청(請)하였다. 또한 백부 윤명우와 선친 윤명운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문하생이다. 수암 권상하 선생은 한양 태생으로 부인이 파평윤씨이며, 선생의 선친 윤명운의 묘갈명을 찬(撰)하고 병계 선생의 학문 스승이다.
이중 우암 송시열 선생은 병계 선생의 조부 파원군 윤비경의 신도비명 찬(撰)에서 "公은 나보다 6개월 연장이며 또 두 집안이 통혼(通婚)한 친분으로 정의가 더욱 돈독하니 이제 신도비명을 지음에 의리상 사양할 수 없었다" 고 깊은 연(緣)을 기술(記述)하고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충남 회덕 출신으로 가야산 일원에서 기거한 사례가 많았다. 스승 수암 권상하는 만년(晩年)에 충청도 청풍(제천)의 황강 옆 한수재(寒水齋)에서 살아 병계 선생은 이러한 연유에서 옥계리 정착하였음이 추정된다.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와 가야산 상류지역 상가리 저수지 간은 약 3km이다.
이 구간 덕산천 계곡 일원에 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857~?) 선생, 죽천(竹泉)김진규(1658~1716) 등 선대 여러 문인들이 병계 선생이 정착하기 이전에 비경을 명명하고 바위에 글자를 새겨두었다. 문인들은 시가(詩歌)를 서로 주고받아 부르면서 풍류를 즐긴 장소이다. 특히 숙종 처남인 죽천 김진규 선생은 이곳에 유배와 비경 9곳을 관어대, 옥병계, 습운천, 석문담, 영화담, 탁석천, 와룡담, 고운벽, 옥량폭 이라고 명명하였다. 이중 옥병계, 석문담, 와룡담은 바위에 명칭의 글자를 새겨 놓았다. 병계 선생은 9곳을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가야산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아홉 곳을 "가야구곡(伽倻九谷)" 이라 명명하고 이곳의 지형에서 호(號)를 병계(屛溪)라 자호함이 전해지고 있다.
- 1곡 관어대(觀魚臺) : 덕산천(옥계)의 물이 한곳에 모이는 곳이다. 골짜기 입구의 청풍산 서쪽 아래에 있었으나 1957년 저수지 확장공사로 지금은 옥계저수지 물 속에 있다.
관어대는 낚시하는 자리라는 뜻이지만 옥계리 원래의 마을은 없어지고 선생의 시구만이 옛 경치를 말해주고 있다.
- 일곡무이상조선(一曲武夷上釣船) : 한 굽이 돌아서니 무이곡처럼 낚시배 떠있고
-휴언차곡지사천(休言此曲只沙川) : 사천의 이 계곡도 더할 나위 없네
- 어대기견서봉색(漁臺己見西峰色) : 어대 서쪽 봉우리 보노라니
- 수기창연쇄모연(秀氣蒼然鎖暮烟) : 푸른 봉우리에 걸린 저녁 연기 참으로 아름답구나.
- 2곡 옥병계(玉屛溪) : 덕산천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옥계저수지에 합류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세이암(洗耳嵓),
청송(聽松) 성수침(1493~1564) 선생의 수재대(水哉臺),
숙종 처남 죽천(竹泉) 김진규 선생의 옥병계(玉屛溪) 등
여러 문인들의 글자가 암벽에 남겨져 있다.
- 3곡 습운천(濕雲泉) : 옥병계에서 1Km 정도 위쪽에 있다.
작은 샘이 동북으로부터 옥계에 들어오는 곳이며 늘 신비로운 구름이 덮여있다.
- 4곡 석문담(石門潭) : 습운천에서 위쪽으로 500m 지점에 있으며, 이곳부터 상가리에 해당된다.
작은 폭포가 있고 우암 송시열 선생은 시문을 읊으며 "취석(醉石)" 글자를 바위에 새겨
남겼다. 병계 선생의 아우 윤봉오 선생은 이곳 석문에서 號를 따서 자호하였다.
- 5곡 영화담(暎花潭) : 상가리 버스승강장 맞은편 개천에 있다.
복숭아나무가 많고 꽃잎이 물속에 비춰져 경치가 좋다.
- 6곡 탁석천(卓錫川) : 상가저수지 밑에 있다.
가야사 스님들이 종이를 만들던 곳이다.
- 7곡 와룡담(臥龍潭) : 상가저수지 바로 위에 있다.
용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8곡 고운벽(孤雲壁) : 석문봉 등산로 밤밭 옆 기도터에 있다.
최치원 선생이 쉬웠다는 전설이 있어 그 호를 따서 고운벽이라 하였다.
- 9곡 옥량폭(玉梁瀑) : 석문봉 등산로 옥계천 끝지점에 있다.
존재 선생은 벽촌 장흥 천관산 아래 방촌리에서 예산 가야산 아래 옥계리까지 수회 오가면서 병계 선생의 학문을 수학하였다. 이 과정에서 스승 병계 선생이 가야산 자락 덕산천 계곡에 명명한 가야구곡을 보고 이와 유사한 형태로 고향 장흥 천관산 자락 장천동 계곡에 비경(祕境)을 제일 청풍벽(淸風壁), 제이 도화량(桃花梁), 제삼 운영기(雲影磯), 제사 세이담(洗耳潭), 제오 명봉암(鳴鳳巖), 제육 추월담(秋月潭), 제칠 탁영대(濯纓臺), 제팔 와룡홍(臥龍泓) 등 8곳을 장천팔경이라 명명하였다. 이중 도화량, 세이담, 탁영대, 와룡홍 4곳은 바위에 글자를 새겼다.
가야산 자락 상가리 5-29번지에는 흥선대원군 선친 남연군 이 구(李 球 1788~1836) 묘소가 위치한다.
남연군의 원래 묘소는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 대직동에 위치했었다. 흥선대원군은 가야사 자리로 옮기면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올 명당자리라는 풍수설을 믿고 가야사를 불태운 후 그 자리에 부친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였다. 이시기까지 가야산 자락에 위치한 병계 선생 묘소와 직계 후손의 거소도 봉산면 궁평리로 강제 옮겨지게 되었으며, 선생의 아우 윤봉오 선생 묘소와 후손들은 공주시 유구면으로 옮겨졌다. 이로인해 현재 가야산 아래 덕산면 옥계리와 상가리에는 병계 선생의 후손 거주자는 없고, 고택 흔적은 사라져 현재 거주민들조차 선생에 대해 잊혀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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