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5 12:41
용강사(龍岡祠)는 장흥군 용산면 용안로 307-16에 위치한 영광金氏 사우이다. 舊)계산초등학교에서 용산면 소재지 방향으로 600여미터 가다보면 도로가 우측 숲속 개천 앞에 안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1882년(고종19) 향중 유림의 제발에 의해서 난옹(懶翁) 김광범(1571~1647), 우수(愚叟) 김상범(1583~1643), 뇌수당(牢垂堂) 김성범(1588~1666) 3형제를 배향하였다. 이후 1961년(辛丑) 광범의 손자 죽옹(竹翁) 김정서(1651~1732)와 1980년(庚申) 학남(學南) 김 우(1833~ 1910)를 추배하여 5位의 위폐를 봉안하고 있다. 용강사의 전체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로 후면의 높은 단에 사당을 배치하고 전면 아랫단에는 강당 월산재가 위치한다.
내삼문인 백원문(百源門)을 통하여 사당에 입실한다.
매년 음 9월 상정일에 지역 유림에서 제향을 주관 봉행한다. 소유 제위답은 12두락이며, 후손들은 주로 용산면 원등리·모산리, 부산면 내안리·자미리 태생이다.
성관(姓貫)은 영광金氏이다.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3세손으로 영광군(靈光君)에 훈봉된 문안(文安) 김심언(?~1018)이다. 고려 1014년(현종5) 내사시랑평장사와 서경유수를 역임하였다. 장흥파 1세조는 고려말 공조전서인 문경(文敬) 김태용이다.
3位의 효자는 중시조 문경의 9세손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지효하고 뛰어난 재기가 있어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장성하여서는 충성심도 남달랐다. 8세 때 양친이 중병에 들자 단지주혈(斷指注血)하고 효심이 지극정성, 신인(神人)을 만나 선약을 구하여 드리고 상분(嘗糞)하는 등 지극한 간병을 다하였다. 상(喪)을 당하면 3년 동안 시묘의 정성을 다하였다. 1624년(인조2) 이 괄의 난 때에는 병곡을 모으고 의병을 일의켜 충주까지 출전 평정케 되니 1661년(현종2) 3형제 모두 동몽교관 조봉대부에 증직되었다. 죽옹 김정서는 태어 난지 이듬해 부친을 여의고 조부 슬하에서 모친 봉양에 효성을 다하여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학남 김 우는 일찍 학문에 명성이 높아 남주고사(南州高士)라 일컬어지고 면암 최익현과 도의지교를 맺고 학문과 충절 유풍진작에 힘쓰다가 1910년(庚戌) 국치(國恥)의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 10여일만에 졸하였다.
월산재(月山재)는 용강사의 강당으로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 제 73호로 지정되었다. 앞의 산이 반월형 같다하여 山은 월산이요 川은 월내천이라 부르는데서 연유하여 월산재(月山齋), 월내서재 또는 낙영재(樂英齋)라고도 한다.경관이 수려한
이곳은 조선조 순조 때 任氏, 崔氏가 살던 곳이었으나, 1824년(甲申) 김몽흠, 김상철이 주도하여 매입 후 서재를 창건, 문중 및 향중 자제를 강학 영재가 배출되었다.
외삼문은 부강문(扶綱門)이다.
마당 중앙에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다. 전면에 6칸의 月山齋가 위치한다.
중앙 좌측 처마에는 樂英齋, 우측 처마에 月山齋 액호 편액이 걸려 있다.
우람한 현판으로 "忠孝節義"란 글귀가 크게 걸려 있어 교육관을 짐작하고도 남을 수 있다. 좌측에 창고, 우측에 관리사옥이 위치한다.
경내에는 시운 편액(扁額)글 6점과 주련(柱聯) 10점이 소장되어 있다.
1)낙영재기는 崇禎紀元後四甲午(1834년) 10월에 후손 김서국(1804~1859)이 근기(謹記)하다.
2)낙영재기는 지주천객 중암(重菴) 김평묵(청풍人 1819~1891)이 기(記)하다.
3)용강팔영은 丁巳 仲春(1857년 2월)에 후손 돈호산인(김서국 1804~1859)이 근고(謹稿)하다.
4)용강구곡운은 永曆二百三十九年乙酉春三月(1885년 3월)에 후손 학남거사 김 우(1833~1910)가 썼다.
5)낙영재중수상량문은 永曆二百四十四年庚寅復月一陽(1890년 11월 1일) 후손 김 우(1833~1910)가 근서(謹書)하다.
6)낙영재중수기는 崇禎五辛卯維夏(1891년 4월) 후손 김달현(1837~1905)이 근기(謹記)하다.
월산재 뒤 좌측에 충효지풍 산고수장(忠孝之風 山高水長)이라
표기된 석비가 세워져 있다. 이는 忠孝 집안과 君子나 仁者의 德이 후세에 길이길이 전함을 말한다. 후손의 강학 학훈을 뜻하여 숙연함이 베어난다
우측 앞쪽에는 1897년(丁亥) 김기현이 서재를 하고 있을 때 장흥부사 송기로(은진人 1830~1898)가 수회 내방하여
격려와 산수를음미하면서 우정의 표지석을 세워 내방 기념의 흔적을 남겼다.
월산재는 용강사가 건립된 후로 주로 후손들의 강학과 문중 행사 장소로 이용되었다. 1891년(辛卯)과 1936년(丙子) 중수하였다. 1995년(乙亥) 훼손되어가는 유적을 복원 보존코자 정부지원과 문원들의 헌성으로 중수하여 오늘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자문 : 13세손 김기홍(제 11대 장흥문화원장, 부산면 내안리 193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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